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자랑스러운 십대?
“목사님! 어떡하면 좋아요. 이번 시험 완전히 망했어요.”
밤낮없이 공부해 오던 고딩 친구가 중간고사를 망쳤단다. 망쳐 버린 성적표에 자존심이 상하고,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십대는 전화로 ‘한숨’을 내쉰다.
“목사님! 내일 너무너무 중요한 시험인데요. 두렵고 떨려요. 기도해 주세요.”
휴대폰 너머로 전해 오는 십대 소녀의 떨림은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왜 자신은 매번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고 울며 기도를 요청하는 친구에게 너털웃음밖에 줄 게 없다. 시험을 잘 봐서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딸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매번 불효자 같은 성적표 때문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도만 나온다.
‘사랑스러운 십대’는 ‘자랑스러운 십대’가 되기를 갈망하며 오늘도 아프다!
#2. 자존감과 자존심 사이에 서다!
‘자존감’(Self-Esteem)이란 단어는 1890년대 철학자이며 의사인 윌리엄 제임스가 처음 사용했다. 사회복지학사전에서는 ‘자존감’을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옥스퍼드대 역사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그의 아내 조애나는 ‘자존감은 인격적 용인 가능성과 사랑받을 가치에 대한 포괄적 평가 또는 판단으로 구성되며, 거기에는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이 수반된다. 자존감은 삶 속에서 중요한 타인들에 의해 지각된 자신에 대한 시각과 깊은 관계가 있다’라고 말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홍균 원장은 그의 책 《자존감 수업》에서 자존감에는 세 가지 기본축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효능감’으로,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학교를 다니거나, 좋은 성적을 받는 것으로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하는 ‘자기 조절감’이다. 세 번째는 ‘자기 안전감’이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나다. 이 세 가지가 자존감을 형성하는 기본축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에 십대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십대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사이 어디선가에서 매우 불편하다.
#3.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평안하라!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삼상 21:13~14).
다윗은 목숨의 위협을 받아 적의 땅 블레셋 가드로 도망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사울왕의 살해 협박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국의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와 그의 신하 앞에서 미치광이가 돼야 했다. 믿었던 사울에게 배신당한 다윗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 체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런 다윗을 살게 했을까? 어떻게 사람들의 배신과 모욕, 수치를 견뎌 낼 수 있었을까?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행 2:25).
다윗은 영적 자존감이 충만했다. 특별히 ‘자기 안전감’이 특별했다. 세상의 비난 앞에서도 그는 영적 안전감을 느꼈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함으로 누리는 평안을 선포했다. 그리고 시편 16편 9절에서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라고 고백했다.
다윗은 세상의 어떤 배신과 위험, 시험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으로 누리는 영적 자기 안전감을 가지고 있는 영적 거인이었다. 그리고 평안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십대에게도 이 영적 안전감을 허락하셨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십대여,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평안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