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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십대, 도망쳐라! Run away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때로는 도망쳐도 괜찮다!

“목사님! 너무 억울하고 힘들어서 도저히 못 버티겠어요”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남자아이가 퉁퉁 부은 얼굴로 찾아왔다. 한쪽 눈은 퍼런색으로 물들었고, 오른쪽 입술은 부어 있었다. 들어 보니 학교에서 몇몇 아이들이 이 불쌍한 중딩을 왕따시키고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괴롭힘에 이유가 없었다. 더 억울한 것은 괴롭힘을 당하는데, 주변 어른들은 이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무조건 참고, 괴롭히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십대는 그 나이만으로도 버겁도 힘들다.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고, 비교당하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참기 힘들다. 이렇게 지치고 버거운 짐을 지고 있는 십대에게 온 힘을 다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도망쳐!” 

 

영적 삼십육계(三十六計) 전술을 익히다

《삼십육계》는 총 36개의 전술을 엮은 중국의 병법서이다. 이 책은 청나라 초기에 수집해 1941년에 출간된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손자병법》과 함께 유명한 병법서다. 전술 중에 ‘36계 주위상’(走爲上)이란 전술이 있다. 이 전술은 뜻하지 않게 강한 적을 만났을 때는 도망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격할 기회를 준비하는 것은 군사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대는 창피한 것이 죽기보다 싫은 나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은 고도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더 큰 승리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며 전술이다. 일단 위험을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싸우는 것도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십대에게 꼭 필요하다.

 

제자들도, 예수님도 도망가셨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

예수님께서 잡히셨다.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달려드는 군사들을 피해 도망갔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예수님을 두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 14:6~7).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도망쳤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자신만 살기 위해 도망쳤던 그때의 제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두 사도는 루스드라와 더베 근방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하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지역 사람들을 선동해 그들을 돌로 치려고 달려들게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그곳에서 도망쳤고, 다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 복음 전파를 위한 두 사도의 위대한 도망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웅장하게 한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마 12:14~15).

예수님도 도망치셨다. 이번에 문제는 바리새인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마른 자, 즉 손이 오그라들어 불편함을 가진 사람을 고치셨다는 것에 분노하며 고소했다. 선한 일을 한다고 다 존중받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채워 놓은 분노와 비난에서 도망치셨다. 

제자들도 예수님도 모두 도망친 경험이 있다. 물론 그것이 선한 일을 위할 때도 있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망쳐야 할 때는 도망치는 것이 맞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위해 도망치셨다. 예수님께서 모든 숨을 마치시고, 숨을 거두셔야 할 곳은 바로 십자가이기 때문이었다. 

십대도 도망쳐야 한다. 그것이 자기 보호나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것이 선한 일 가운데 나타나는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십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잘 도망치는 사람에게 위대한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십대여, 도망쳐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