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십대는 부끄럼쟁이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말을 잘 못하겠어요. 제게 무슨 병이 있는 걸까요?”
집에서는 그렇게 말을 잘하던 십대가 이상하게 다른 사람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는다.
“입을 옷이 없어요. 친구들과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지 못하면 제가 초라해 보여요.”
십대는 친구들과 같은 스타일의 옷과 신발이 없으면 부끄러워 밖을 나갈 수가 없다.
어른들은 십대가 어느 곳에서나 모여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근자감’에 휩싸여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세대라는 편견은 잘못이다. 대부분의 십대는 ‘부끄럼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 과격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주변을 살피지 않는 십대는 극소수다.
십대, 수치심에 자신을 잃다!
심리학자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는 ‘수치심’이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모든 느낌과, 다른 사람과 관계된 그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심의 경험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족함이나 열등감 혹은 무가치함을 느낄 때 일어난다. 수치심은 죄책감에서 나타나는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수치심만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십대에게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다.
제임스 파울러(James W. Fowler)에 따르면 십대는 발달 단계상, 가정을 벗어나 학교나 교회의 또래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는 감정 조절 능력과 이성적 판단 등이 있다. 하지만 뇌 과학은 이러한 기능을 관장하는 십대의 전두엽이 아직 미완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십대는 새로운 환경 가운데서 죄책감과 상관없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치심은 십대의 생활 모든 곳에 등장한다. 마치 옷을 입지 않고 많은 사람 앞에 선 느낌이다. 이러한 수치심이 해결되지 않으면, 십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십대는 자신 안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이해함과 동시에 보호받아야 한다. 십대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수치심에 옷을 입히신 하나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했다. 죽음에 이르는 첫 번째 결과는 부끄러움, 수치심이었다.
“이에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6).
분명 죄를 범하기 전 아담과 그의 아내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성경은 죄에 대한 결과로 부끄러움, 수치심을 언급한다. 다시 말해, 죄인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 수치심, 부끄러움이다. 죄가 들어온 세상은 더 많은 수치심을 생산한다. 죄로 가득한 세상은 수치심을 만들어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곤 한다. 십대는 더 자주 그 함정에 빠질 때가 많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십자가는 당시 죄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유대 사회에서 십자가는 저주받은 처형 방법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며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와 부끄러움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수치를 당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죄를 범한 인류는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 수고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보호하고 지키기 원하셨기에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그리고 지금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부터 사랑하는 십대들을 지키고 싶어 하신다. 십대여, 하나님의 옷을 입자!Q
참고 자료:
《부끄럽지 않은 수치심》, 제프리 피터슨, 동연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