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디렉터)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들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착한 안내 멘트가 나오고 열차가 도착한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밀려들어가는 사람들. 다시 문이 닫히고 덜컹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지하철. 어둠 속 터널을 따라 쉴 새 없이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이곳은 지하철역이다. 서울 지하철 노선의 총 거리는 331.9㎞로 지하철의 본고장 런던, 뉴욕, 도쿄, 파리 메트로와 맞먹는 수준이다.
서울 중심가인 2호선 강남역은 하루 평균 유동 인구가 무려 21만 명이고, 주변이 휑한 부산의 석대역은 하루 평균 120명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대구 반월당역은 출구가 23개나 있는가 하면 수도권 6호선 독바위역은 출구가 달랑 하나다. 신촌, 강남, 압구정 등 도심은 물론 인천 공항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충청남도 온양까지 안 가는 곳 없고, 못 가는 곳 없는 대중교통의 끝판왕! 아무리 길치라도 일단 지하철역에만 도착하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고, 요금마저 착한 대한민국 지하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들의 친구다.
지하도시, 어디까지 가 봤니?
각국 대도시의 지하철은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분주한 출근길 직장인에게도, 낯선 도시를 찾아온 여행자에게도, 복잡한 도시 아래로 연결된 지하철은 땅 아래의 또 다른 세계로 가는 진입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속 깊이 있는 부산의 만덕역은 지하 76m라고 하니 9층짜리 건물을 땅속에 거꾸로 세워놓은 셈이고,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북한의 평양 지하철은 무려 110m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깊은 땅속에 터널을 파고 선로를 놓고 전기를 연결해 열차를 달리게 하다니! 땅 위의 사람들이 땅 아래로 내려가서도 불편함이 없도록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카페, 도서관, 공연장, 분실물센터에 패션몰, 식당까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지하철은 현대의 첨단 기술로 이뤄낸 어메이징한 지하도시(Underground City)다.
땅속 마을, 복음을 간직하다
터키 갑바도기아는 용암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수려한 장관으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곳에 ‘데린구유’라 불리는 지하도시가 있다. 2천 년 전, 로마의 박해를 피해 성도들이 이주해서 살던 곳이다.
기독교를 싫어했던 로마! 네로 황제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까지 약 250년간 계속된 핍박을 피해 그리스도인들은 땅속 20층 깊이인 85m까지 굴을 파 내려가야 했다. 그 깊은 지하에 방, 부엌, 곡물 저장소뿐 아니라 예배 장소와 신학교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콘스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기까지 300년이나 이 지하도시가 유지됐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지하도시의 삶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지상의 박해자들로 인해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던 지하도시는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지상의 핍박을 피해 건설한 지하도시는 칼과 창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가 아니었을까? 땅 위의 자유로운 공기와 밝은 햇빛을 포기했기에 땅 아래에서 진정한 영혼의 자유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믿음 따라 지은 지하도시처럼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 팔짱 끼고 주무시는 아저씨, 이어폰을 꽂고 카톡을 보내는 학생. 이 익숙한 지하철 풍경 속에서 복음과 진리를 외치는 전도자를 봤던 기억이 있다.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얼굴은 빛나던 그 전도자를 따라 내려,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 있다. 21세기 지하도시인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비난과 외면 속에서도 꿋꿋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의 모습은 1세기 지하도시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핍박을 견뎌낸 지하도시 성도들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오늘, 우리도 매일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땅속 마을 주민으로서 땅 위의 소란함과 복잡함을 잠시 떠나 순수한 믿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땅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그 옛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땅 아래에 도시를 건설했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의 오염된 생각들이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땅 아래 도시에 진리의 빛이 비춰지길 바라는 지하철 복음 전도자들처럼, 우리의 마음도 복음으로 뜨거워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을 태우고 오늘도 달려 다오. 지하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