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이수영 기자>
<큐틴> 친구들이 가장 기다리는 소식은 뭐야? 최애 아이돌의 신곡 발표, 올해의 방학식 날짜, 갑자기 정해지는 임시 공휴일? 전자 기기에 관심 많은 친구는 새로운 기기가 발매되는 날 직접 매장에 찾아가서 만지고 체험해 보는 것도 큰 재미일 거야. 매장 안의 조명과 인테리어, 향기, 자연스럽게 체험을 유도하는 동선 등 모든 것이 나를 자극해 브랜드와 제품을 각인시키지. 이번 호에서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콘셉트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에 대해 알아보자!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삼성전자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하고 있어요.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는 보통 약자로 VMD라고 불려요. 우리말로 표현하면 ‘매장 연출 전문가’라고 하죠.
패션, 화장품, 식품, 전자 기기 등 기업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제품은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정말 많은 단계를 거쳐요. 시장 조사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량을 정한 후,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고 판매 방법을 계획하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머천다이징이라고 하는데, 비주얼 머천다이징은 이 중에서 판매 방법에 속하는 업무예요.
예전에는 제품을 보기 좋게 배열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경험을 매우 중시해요. 제품에 따라 특정한 테마를 기획하기도 하고, 식물이나 바닷속 세상 등 특별하게 꾸민 공간에 제품을 배치해 제품이 가진 장점과 특징을 극대화하기도 해요. 한편 제품을 뛰어넘어, 병원이나 식당, 백화점 등 서비스를 주고받는 모든 공간을 효율적으로 꾸미고 배치하는 일도 포함돼요. 백화점이나 마트의 제품도 의미 없이 배치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영역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고객의 구매 욕구가 상승하거나 하강하거든요.
저는 현재 비주얼 머천다이저로서, 전 세계 삼성전자 매장에 제품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정하는 디스플레이 가이드를 만들고 있어요. 각 나라마다 누적돼 온 문화와 관습은 모두 다르죠. 저는 이를 분석해서 우리 회사 제품이 고객의 삶을 얼마나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매장을 연출하기 위한 방침을 연구하고 정하고 있어요.
Q.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이때 가전제품 디자인, CMF 디자인(제품의 색-Color, 재질-Material, 마감재-Finishing 등을 조화롭게 조합하는 디자인 공정), 특허 신청을 할 때 필요한 선행 디자인 등을 담당했어요.
새로운 제품을 가장 먼저 상상하는 일이 디자인이라면, 비주얼 머천다이저는 제품이 어떻게 고객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구현하고 상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디자이너일 때 왜 이 제품을 만들었으며, 개발 과정에 이런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등의 스토리가 소비자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품에 가치 있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고객에게 더 큰 만족감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20년간 디자인 분야에서 다양하게 경험한 것을 마케팅에 잘 녹여내 고객과 소통하는 일을 하게 됐죠.
Q. 선생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께서는 잘하는 일을 하게 하실 때가 있고, 제가 잘하지 못하고 자신 없는 일을 하게 하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게는 디자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지금 하는 일이 자신 없는 일이었어요. 비주얼 머천다이저는 디자인보다 마케팅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처음 이 일을 하게 됐을 때 두려운 마음이 컸죠.
그런데 전자는 내가 잘한다는 교만이 틈타기 쉬운 위험한 길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물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안전한 길이라는 묵상을 하게 됐어요.
이 일을 한지 꽤 됐지만, 아직도 어렵고 낯설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잠언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판단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해요. 그러다 보면 어려운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게 되죠.
Q. 언제 보람을 느끼시나요?
팬데믹이 종료된 지금이 가장 즐겁고 보람돼요.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됐을 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고객에게 비대면으로 제품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금세 지루함을 느끼는 고객을 화면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참 쉽지 않았죠.
지금은 매장 체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요. 같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온라인 마켓이 있음에도 고객이 매장을 방문한다는 것은, 보다 차별화된 경험을 원한다는 뜻이죠. 이제는 매장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와 제품을 경험하는 공간이 된 거예요.
친구들도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매장에 더 관심이 생기고, 기꺼이 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나요? 매장을 이용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을 자연스럽게 고객과 공유하는 일은 참 매력적이죠. 필요에 의해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제품으로 완성시켜 나갈 고객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즐거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Q. 이 일은 어떤 자질을 갖추면 좋을까요?
이 일은 마케팅에 가깝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 능력이 있어야 해요. 내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거나, 효과적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하죠. 공간을 배치하고 디자인하는 능력도 필요해요. 최근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디자인이 대세죠. 다양한 매체를 복합적으로 활용, 접목하는 상상력과 기획력도 중요하고요.
Q.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 이미지를 만들고, 고객의 행동을 예측해 매장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에서 재미와 매력을 느껴요. 요리사가 음식을 내보내기 전 마지막 플레이팅에 정성을 쏟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비주얼 머천다이저는 제품과 제품의 마케팅 전략을, 매장이라는 접시에 가장 아름답고 먹기 좋게 플레이팅해서 고객이 자기 취향에 맞게 매장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진로를 고민하는 십대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요즘은 진로를 정할 때, 꿈을 꾸고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숙제하듯 빨리 선택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아요. 저는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한 사람이 경험하는 직업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유연하게 생각하며 경험을 소중히 쌓아 나가면, 그 경험이 여러분의 특화된 캐릭터를 만들어 줄 거예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 좋아 보이는 일보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으세요. 그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더라도 바로 포기하지 말고, 지혜와 겸손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아주 관심이 많으시고 함께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비주얼 머천다이저
하는 일
고객이 어떤 제품에 흥미를 느끼도록 매장 전시 콘셉트를 기획하고 구현함
업무 수행 능력
창의력, 디자인, 기획력, 분석력 등
되는 길
대학교에서 디자인이나 마케팅 관련 전공을 이수하고 관련 회사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음
지식
디자인, 마케팅, 경영, 심리 등
학과
산업 디자인학과, 시각 디자인학과, 경영학과, 심리학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