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이수영 기자>
포근한 침대, 냉장고 속 맛있는 간식, 때로 따끔하게 혼내시지만 나의 짜증을 모른 척 받아 주시는 부모님, 투닥거리다가도 치킨 앞에서 대동단결하는 형제자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는 가정이 따스한 휴식처가 되지 못하지. 심지어 학대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는 아동의 이야기를 친구들도 여러 번 들었을 거야.
오늘은 어려움에 처한 아동의 편에 서서 이들의 건강한 회복을 위해 힘쓰며, 함께 미래를 꿈꾸는 허애지 사회 복지사 선생님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 보자!
Q. 현재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저는 대전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복지법 제45조에 의해 설치되는데, 신체와 정서, 성적으로 학대받거나 방임으로 피해를 입은 18세 미만 아동의 회복과 재학대 방지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어요. 피해 아동과 가족, 학대 행위자에게 상담과 의료를 제공해 심리를 치료하고 회복하도록 도우며, 가정이 회복되고 가족 기능이 강화되도록 교육하고 있죠. 또한 피해 아동의 안전 점검 및 교육을 통해 재학대를 예방하는 일을 해요.
우리 기관에 소속된 사회 복지사는 사례 관리 및 예방 교육, 전문 상담사는 상담 및 치료, 임상 심리사는 심리 평가 업무를 수행해요.
Q.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됐나요?
YWCA에서 청소년부 간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지도사가 됐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곳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 청소년들을 만나고 부모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동 학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고요. 이 일을 꼭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게 됐죠.
Q. 지금까지 일하시며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나눠 주세요~
제가 지금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 은혜예요. 피해 아동을 비롯해 그 가정의 기능이 회복되도록 돕는 것은 결코 쉽지 않거든요. 수많은 저항과 거부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힘이소진될 때도 많고요.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업무를 해 왔다는 것은 날마다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죠. 기관 특성상 학대나 폭력, 우울, 자해, 자살, 중독, 도박 등 무겁고 심각한 사례를 많이 다루는 데도 제 마음과 일상이 건강한 것은 정말 큰 은혜예요.
처음 이 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가해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폭언이었어요. 때려서라도 내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들이 저를 심리적으로 압박했어요. 그래도 저는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만, 아이들은 이 지옥 같은 집에서 견뎌야 하는 거죠.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만 났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계속 물었어요. 가능하다면 저도 피하고 싶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 아이들을 향한 주님의 긍휼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셨고,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지금은 이 말씀을 통해 절망 속에 있는 아이들이 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힘차게 일하고 있어요.
Q.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어요. 친부의 학대로 가정에서 지낼 수 없어 ‘학대피해아동쉼터’로 분리, 보호된 아이였죠. 아이는 친모의 사망과 친부의 학대로 깊은 좌절 속에 있었고 미래를 그릴 의지도 없는 상태였어요. 사실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회복 탄력성이 높아져요. 힘든 상황에서도 즐겁게 미래를 꿈꾸며 견딜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그런 자원이 전무했어요. 그래서 변화가 굉장히 더디게 진행됐죠. 하지만 저와 꾸준히 만나면서 관심 있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됐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어떤 아이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또 어떤 아이는 느리죠. 그러나 결국 이렇게 변화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죠. 목회자인 남편이 제게 “당신이 더 어려운 현장에서 실질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남편은 늘 제게 큰 힘이 되는데, 특히 저 말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됐어요.
Q. 이 일은 어떤 소양을 갖추면 좋을까요?
사회 복지사든 상담사든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내 작은 관심과 노력이 아동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만나는 순간마다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어요. 감정적인 친밀함도 중요하지만 사실 사례를 관리하고 분석해,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피해 아동을 위한 일이에요. 이 일의 목표는 결국 피해 아동이 건강하게 변화돼,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으니까요.
한편 아동 학대는 사회적 관심과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예요.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갖추면 더 좋겠죠?
Q.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있는 아동에게 한 줄기 희망이 돼 줄 수 있어요. 흔히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하죠. 저는 여기에 ‘아동의 행복이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말을 더하고 싶어요. 모두의 노력이 더해져 한 아이가 변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큰 기쁨이에요.
Q. 고민하는 십대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분명히 있음을 믿으세요. 저는 찬양 사역자가 되고 싶어 기도하면서 준비했는데,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성대 결절이 발견됐어요. 내게 주신 달란트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곳에서 아동과 청소년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죠. 그래서 아동 및 청소년 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 일에 전문가가 됐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반드시 나를 사용하세요. 내가 꿈꿔 온 미래와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현실 너머에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니까요.
Q.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나눠 주세요
저는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늘 걸어야 할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비전이고 사명이에요. 만일 내일 제게 다른 일을 맡기신다 해도 저는 그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갈 거예요.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사명자의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