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이승찬 목사(상하이한인연합교회)
사랑하는 <큐틴> 친구들! 오늘부터는 중세 시대를 살펴볼게요. 중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한 가지는 바로 ‘교황 제도’의 탄생이에요. ‘교황’(pope, ‘아버지’라는 뜻)은 본래 각 지역의 교회를 담당하는 감독을 부르는 말이었어요. 따라서 여러 명의 교황이 존재했죠. 그런데 점차 교황들 사이에 우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큰 도시의 교황이 다른 교황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더니, 마침내 로마 교황이 가장 높은 지위로 인정됐어요.
이후 교황이라는 단어는 오직 로마 교황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고, 로마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가 됐어요. 이 교황 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1대 교황은 베드로?
왜 로마의 감독이 유일한 교황이 됐을까요? 로마 교회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는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모든 교회를 다스리는 1대 교황으로 세우셨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베드로는 로마에 와서 순교했기 때문에, 로마의 감독이 베드로의 뒤를 이어 교황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 주장은 한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그레고리우스 1세가 로마의 감독이 되면서부터 힘이 실리게 됐어요.
하지만 우리가 믿는 개신교 신앙에서는 이 교황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첫째,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한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해석이 잘못됐고 둘째, 성경 그 어디에서도 특정 직위에 권한을 부여한 일이 없으며 셋째, 예수님께서 지도자는 낮은 자세로 다른 사람을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교황은 오히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가 됐죠.
교황 vs 황제
교황의 힘이 점차 강해지자 세상의 권력과 충돌하기 시작했어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죠. 이로 인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와 갈등이 생겼어요. 당시 성직자 임명은 왕의 권한이었는데, 그레고리우스는 이것이 교황의 권한이라고 선언했어요. 그러자 하인리히는 교황을 폐위시키고자 했고, 교황은 이에 맞서 하인리히를 파문한다고 발표했어요. 당시 백성은 왕보다 교황의 편이었어요.
불리한 상황에 처한 하인리히는 어쩔 수 없이 1077년 1월 겨울, 눈이 덮인 카노사의 성 앞에서 맨발로 무릎을 꿇고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빌었어요. 이를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해요.
한편 이로부터 200여 년 뒤에는 도리어 왕의 권위가 더욱 높아져서 프랑스 왕의 명령에 따라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 지역으로 옮기는 ‘아비뇽 유수’가 벌어지기도 해요. 이후로도 교황 제도는 여러 사건을 통해 흥망성쇠를 겪으며 오늘날에 이르게 돼죠.
다스림과 섬김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교회의 권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을 섬기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에요. 질서를 위한 제도는 분명 필요하지만, 교황 제도처럼 한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고민해 보기로 해요.
언제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