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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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표류를 시작하다
로마 황제는 세계의 지배자인 자신에게 무릎 꿇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싫어했다. 이스라엘의 종교인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기독교가 싫었다. 그러나 아무리 겁을 주고 권력을 행사해도, 법으로 규제해도 교회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거센 바람 때문에 진압할 수 없이 번져가는 산불처럼, 우산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여름날의 폭우처럼,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쏟아 넣은 팝콘 옥수수 알갱이처럼,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그때 교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난다.
순교의 첫 열매
야고보는 형제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야고보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됐다. 종교의 자유를 가진 나라에 태어난 우리는 종교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국가 권력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충성스러운 제자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었던 신실한 사도 야고보는 비열한 로마 정치 지도자 헤롯의 칼날에 생을 마감했다. 야고보는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순교 사도로서 2천년 교회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교회를 이끌었던 사도들은 야고보의 뒤를 이어 차례로 순교의 잔을 마셔야 했다. 지도자를 잃은 교회는 마치 선장을 잃은 배와 같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교회, 암초를 만나다
설상가상으로 교회는 이단이라는 이름의 암초를 만난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예수님께 직접 배웠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봤던 사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바울의 후계자를 자청했던 마르키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저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키온이 이끌었던 이 위험한 사상을 영지주의라고 부른다.
이들은 구원을 얻는 비밀한 지식은 오직 선택된 자신들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지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모든 것들을 악한 것으로 여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만을 선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몸은 결코 선할 수 없었다. 거룩한 신적 존재가 거룩하지 않은 인간의 몸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은 인간이 될 수도 없고, 되신 적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거짓 주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몸, 죽으심과 부활과 같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교회는 혼란스러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63년부터 계속된 심상치 않은 지진은 다가올 재앙의 전조였다.
폼페이 최후의 날
나폴리 남동부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 폼페이는 로마의 번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AD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 대 폭발은 인구 3만 명을 자랑하던 이 평화로운 도시를 한순간에 죽음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이 인근 도시 폼페이로 쏟아져 내렸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온 가스와 뜨거운 구름으로 인해 죽었다.
“별과 달이 없는 밤의 어두움이 아니라 막힌 방 안에 불을 끈 것과 같은 암흑이었다. 아낙네의 비명, 아이의 울음소리, 사내들의 고함이 들렸다. 부모를 찾고 자녀를 찾고, 남편을 찾고 아내를 찾는 목소리가 서로를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못 이겨 오히려 죽음을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 플리니우스
화산재에 뒤덮여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폼페이는 그 후 1천 년이 지나서야 발굴돼 세상에 알려졌다. AD 1세기, 지진과 화산 폭발, 흑사병과 같은 자연재해가 이어지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세상을 외면하고 영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영지주의자의 주장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교회는 소란스럽고 무질서해졌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주장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지도자의 부재와 이단이라는 암초에 부딪힌 교회는 좌초돼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위기였다.
책 이상의 책
이 혼란과 위기의 순간에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준’이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진리의 전달자인지, 누가 사탄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했다. 교회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믿어서는 안 되는지 분별할 기준이 필요했다.
믿을 만한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해야 했다. 그것은 말이 아닌 문자로 기록돼야 했다. 교회는 책이 필요했다. 흩어져 있는 수많은 교회에 비해 지도자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교회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더더욱 필요했다. 라틴어 캐논(Canon)은 ‘기준’이라는 뜻으로, 곧은 막대기, 자, 표준, 척도, 규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기준’이 되는 책,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책, 한자로 정경(正經)이라고 불리는 책, 책 이상의 책인 신약성경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해서 사도들과 사도적 인물들은 성령의 특별한 감화와 인도하에 스물일곱 권을 기록하게 되었다.” - 필립 샤프
위기에 처한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극적 개입이었다.
교회, 성경을 가지다
AD 90년 얌니아 회의를 통해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확정하고, AD 397년 카르타고 공회를 통해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해, 66권의 정경이 완성됐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말씀이자, 기록된 문서로서의 성경을 소유하게 됐다. 66권의 정경은 교회의 영원한 기준이 돼 지도자를 잃고 흔들리던 교회의 방향타로 사용됐고, 이단으로 인해 혼란스럽던 교회를 지키는 규범이 됐다. 기준이 기준될 수 있는 조건은 변치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치 않는 기준인 성경은 현악기를 조율할 때 쓰는 소리굽쇠와 같이 우리의 삶을 조율하고 우리의 생각을 조절한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평균 태양시를 기준으로 전 세계의 시간을 맞추듯, 성경은 변치 않는 기준으로 우리의 판단을 규정한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이제 성도들은 무엇이 진리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이 영원한 진리라고 고백하는 자를 성도라고 부르며, 오직 성경만이 변치 않는 진리라고 고백하는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