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2017년 05월

교부, 교회의 아버지들

흥미진진 교회사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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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을 만나다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해 갔다. 전 세계로 흩어진 교회는 조직을 이루었고, 교회를 이끄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교회 역사 초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회를 이끌고 지켜 냈던 이들을 ‘교부’(Church Fathers)라고 부른다. 수많은 교부들 가운데 주연급 교부 다섯 사람을 만나 보자. 첫 번째 교부를 만날 장소는 뜻밖에도 아프리카다.


용맹한 아프리카의 신학자, 터툴리안(150~220년)
로마가 세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북아프리카의 맹주인 카르타고를 꺾어야만 했다. 전통의 강호 카르타고와 새로운 강자 로마가 지중해의 지배권을 두고 치른 이 결전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비로소 로마는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전쟁 후 300년이 지난 주후 150년, 카르타고는 로마의 식민지였지만, 그 규모와 존재감은 여전히 로마와 맞설 만한 거대 도시였다. 터툴리안은 카르타고에 주둔했던 로마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최고의 도시에서 태어난 장교의 아들답게 당시 그리스와 로마의 최고 학문을 배우며 자랐다. 이 열정 넘치는 지식인은 기독교인이 된 후 교회를 향해 자신의 뜨거운 열정을 쏟아부었다.
‘삼위일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터툴리안은 거칠고 터프했던 성격처럼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플라톤의 사상에 심취해 있던 당대 지식인들과 철학의 전당이었던 아테네의 지성인들에게 쓴소리를 내뱉는다. “그리스도가 플라톤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향해 쏘아붙인다.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습니다!” 그는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과 논쟁할 때면, 화산처럼 폭발했고 거침 없는 풍자로 굴욕을 줬다. 터툴리안은 철학과 이단 사상들의 맹렬한 공격 속에서 교회와 신학을 지켜냈던 아프리카의 영적 전사였다.



열정적인 성경 해석자, 오리겐(185~253?년)
오리겐은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천재로 꼽힌다. 소년 시절에 성경 전체를 외웠으며 심오한 질문으로 어르들을 당황하게 했다. 아버지가 순교하고 재산을 몰수당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후원자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한 오리겐은 천재성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알렉산드리아 교리 문답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됐을 때 그는 18세였다! 오리겐의 명성은 멀리 이집트와 아라비아까지 퍼졌고 황실 귀족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그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는 학문적으로 뛰어났지만, 성경을 따라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오리겐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자적 의미뿐 아니라 더 깊이 숨어 있는 영적 의미를 찾는 풍유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식을 갖춘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원한 말씀에 이르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오리겐의 생각은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 철학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아 성직자 자격을 박탈당했고, 이단으로 여겨졌다. 오리겐은 교회를 사랑했고 헌신했지만, 그리스 철학을 벗어나지 못했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천재적인 성경 번역가, 제롬(346~420년)
이탈리아 국경 부근에서 태어난 제롬은 로마에서 공부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으며 세상의 학문에 심취했다.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그는 평생 학문에 매진했으며 420년에 베들레헴에 세운 수도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제롬은 그리스 철학과 문학에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그의 지식이 가장 아름답게 꽃피운 것은 성경 번역이었다.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 히브리어에 탁월했다. 헬라어가 통용되던 이 시기에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제롬은 탄탄한 히브리어 실력을 바탕으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405년, 평생의 대 역사가 완성됐다. ‘라틴 벌게이트’라고 불리는 이 성경은 로마 교회의 공식 성경(불가타, Vulgata)이 됐다.



황금의 입이라 불린 설교자, 크리소스톰(347?~407년)
그의 원래 이름은 요한이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설교에 감동을 받은 후손들은 그를 ‘크리소스톰’(황금의 입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처럼 그는 교회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설교가로 꼽힌다.
장교였던 아버지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성직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다. 고향 안디옥에서 뛰어난 웅변술과 인격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397년에는 세계 기독교계의 2인자인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됐다. 그러나 그의 거침 없는 설교는 권력자들에게 눈에 가시와 같았다. 결국 황실 귀족들과 시기하는 세력들의 모함으로 인해 교회에서 추방당했다. 407년, 600편이 넘는 설교문을 남긴 위대한 설교자는 유배지에서 그렇게 고요히 주님 품에 안겼다.
강단에서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뛰어난 설교자에게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환호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다. 그의 설교에 감동한 청중의 박수 소리가 너무 커서 설교를 중단하는 경우가 흔했다. 크리소스톰은 오리겐의 풍유적인 해석에 반대했다. 그는 성경의 문법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의미를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설교자의 자세라고 믿었다.



교회의 위대한 스승, 어거스틴(354~430년)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오늘날 알제리)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훗날 압도적으로 교회의 위대한 인물 순위 1위에 꼽히는 존재가 된다. 어거스틴이라 불리는 이 교부는 젊은 시절, 페르시아의 종교인 마니교에 빠졌다. 마니교는 빛과 어둠이라는 두 신을 믿었고, 악한 행위는 어둠의 산물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악이란 ‘선이 부족한 것’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니교와 철학에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집어 들고 읽어라”고 말하는 어린아이의 소리를 듣게 된다. 즉시 성경을 펴서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고민했던 진리의 문제, 선과 악의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더 읽고 싶지도, 읽을 필요도 없었다. 확신의 빛이 마음속으로 가득 밀려왔고, 의심의 어두움이 모두 사라졌다.” 교회 역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회심한 순간이었다. 이후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그는 히포의 주교로서 교회를 지키며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이단들과 싸웠다.
어거스틴이 자신의 회심, 신실했던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쓴 책 『참회록』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고전이 됐다. 그는 로마가 멸망하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세상의 왕국은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함을 깊이 있는 지식으로 풀어냈다. 성경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모든 믿음과 교리의 뿌리가 됐다.Q



참고자료 : 필립 샤프, <니케아 시대와 이후의 기독교> / 토니 레인, <기독교 인물 사상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