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2017년 09월

비잔틴 제국; 로마의 영광, 다시 한 번!

흥미진진 교회사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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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등장
서로마가 무너진 자리에는 게르만 족이 세운 왕국이 들어섰다. 서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 반달 왕국, 부르군트 왕국, 프랑크 왕국 등이 유럽 곳곳에 세워졌다. 여기에 유럽의 북방에서는 로마의 빈 자리를 노리는 또 다른 이민족의 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큰 키에 금발과 파란 눈, 머리와 꼬리 부분이 휘어진 모양의 빠른 배를 타고 바다와 강을 누비던 이들은 일명 ‘바이킹’이라 불렸다. 9세기가 되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어업과 상업을 하던 노르만 족이 인구가 늘어나자 유럽 내륙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킹’들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동쪽으로 슬라브 족을 공격해 러시아의 조상이 된다. 남아 있던 노르만의 후손들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을 세워 북유럽의 기초를 완성했다.




동방의 로마, 비잔틴 제국
유럽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출현한 이슬람교가 위협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교회는 유지될 수 있었을까? 제국의 동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도시 콘스탄티노플이 제국의 동방에서 수도 역할을 든든히 감당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건재했던 동로마 제국은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원래 이름이 비잔티움이었기 때문에 ‘비잔틴 제국’이라고 불렸다. 이제 비잔틴 제국의 히어로를 만날 차례다.


로마의 영광을 꿈꾼 황제
527년, 비잔틴의 영웅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다. 동로마 황제로서 그의 관심은 빼앗긴 로마의 영토를 되찾는 것이었다. 황제는 이민족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북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던 반달 족과의 전쟁을 통해 반달 왕국을 무너뜨리고, 두 번의 원정 끝에 이탈리아의 동고트 족을 섬멸했다. 여세를 몰아 서고트 족이 지배하던 히스파니아를 침공했다. 수 차례에 걸친 이민족과의 전쟁 끝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히스파니아에 이르기까지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대부분 되찾았다.
529년, 황제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했다.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된 『로마법 대전』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라고도 불린다. 그렇게 잠시나마 옛 로마의 영광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이민족들은 다시 세력을 되찾았고, 제국은 혼란스러워졌다. 황제는 과거 로마의 부활을 꿈꿨지만,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흘러갔다.



동서양 문화의 콜라보레이션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문명의 중심지였다. 지리적인 영향 속에 동서양 문화가 만나 비잔틴 문화가 꽃피었다. 서양 문명의 뿌리인 그리스의 문화를 기초로 하고, 로마의 발달된 학문이 더해졌으며, 동방 세계의 신비한 사상이 합쳐졌다. 이렇게 탄생한 비잔틴 문화는 서유럽과 이슬람 문화 발전의 모판이 됐고, 훗날 르네상스의 기초가 됐다. 비잔틴의 부와 화려함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외형은 서로마 양식의 특징인 아치와 돔 형식이고, 건물 내부 장식은 동방 건축의 특징인 화려한 색감과 모자이크로 채워졌다.



역사를 간직한 성 소피아 성당


현대 건축가들도 감탄하는 성 소피아 성당은 터키 이스탄불의 관광 명소다. 건물 전체의 길이는 100m, 내부 넓이 7,570㎡에 이른다. 건물 전체에는 107개의 기둥이 있는데, 건물 중앙의 웅장한 둥근 천장은 기둥 없이 펼쳐져 있어 마치 하늘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이 거대한 둥근 천장은 정사각형 벽체에 원형 천장을 얹는 신기술 방식으로 설계됐다. 교회의 내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황금 모자이크와 은장식, 나일 강에서 가져온 검붉은 대리석, 금빛의 리비아산 대리석과 화려한 조각들로 장식됐다.
그중 성당 벽면의 모자이크 벽화 ‘디시스’(Deesis)는 비잔틴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예수님과 마리아, 세례 요한이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의 아랫부분은 회색으로 덧칠돼 있는데, 이것은 훗날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이슬람 군사들이 기독교 성화를 훼손시키기 위해 회칠한 것이라고 한다. 성 소피아 성당은 916년간 동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사용되다가,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빼앗긴 이후 1931년까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터키 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겪은 갈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비운의 도시, 콘스탄티노플
로마 최초의 기독교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초를 놓았고,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콘스탄티노플은 6세기 교회 역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7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은 이슬람에 공격을 당했고, 13세기에는 십자군에 정복당한 후 결국 145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멸망당한다.
교회의 역사를 회복하는 길은 영토의 확장도 아름다운 교회의 건축도 아니었다. 정치와 연결된 교회는 점점 더 권력화됐다. 교회의 권력과 국가의 권력은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Q


참고 자료 : 필립 샤프, 『교회사전집 3, 니케아 시대와 이후의 기독교』/ 이강무,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