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A to Z 소문수 목사 (사랑의교회)
‘거룩’이 뭔지 알아?
‘거룩’은 히브리어로는 ‘카다쉬’(), 헬라어로는 ‘하기오스’()라고 표기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다른 것들과 분리돼 하나님께 드려지는 물건이나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안식을 지키는 것, 제사를 지낼 때 흠이 없는 제물을 드리는 것,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 것과 헛된 것을 향해 절하지 말라는 것들이 거룩의 개념이다.
레위기 19장은 ‘거룩’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본문에 따르면, 추수할 때 네 귀퉁이를 베지 않는 것과 포도원 열매를 다 따지 말 것, 그리고 장사꾼의 저울을 속이지 않는 것도 거룩이며, 재판을 할 때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를 공평하게 판단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 원수를 갚지 않는 것도 거룩의 범주에 속한다. 그 밖에도 거룩에 관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레위기 19장 18절을 통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이로 보건대 성경이 말하는 진짜 거룩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신앙의 양심이나 종교적 의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약자를 향한 배려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마음가짐에서 거룩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난다. 이를 토대로 ‘거룩’의 개념을 정리해 보자.
거룩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길 원하신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말씀 묵상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신앙적인 일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기는 것을 통해서도 거룩을 이룰 수 있다.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베지 않고 남겨 놓은 논밭의 귀퉁이가 거룩이고, 배고픈 자들이 지나가다 먹을 수 있도록 열매를 남겨 놓는 것이 거룩이다.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장사하지 않는 것이 거룩이고, 재판장에서의 공정한 판결이 거룩이다.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때, 학교나 학원, 집 등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거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은 시간에서 시작한다
‘거룩’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창세기 2장 3절이다. 창세기에서는 이 단어가 딱 한 번, 이곳에서 사용된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거룩하게 삼으신 것은 일곱째 날이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장소, 혹은 바르고 남다른 행동을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은 시간이다. 따라서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거룩한 시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즉, 우리의 몸이나 공간이 거룩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한 시간 안에 머물러야 거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공간이 아닌 시간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간적 개념에서의 거룩이 아닌, 시간적 개념에서의 거룩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적 개념으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은 거룩하게 구별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찬양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며, 교회에서 봉사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믿는 자들과 교제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어떤 시간으로 보내지고 있는지를 더욱 생각해 봐야 한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닿으면 항상 정한 것이 부정해졌다. 그런데 정반대의 경우가 있다. 바로 예수님과의 접촉이다. 예수님과 접촉하자 ‘불가촉 죄인’이었던 혈루병 여인이 깨끗해졌고,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나았다. 불의한 자가 회개했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 주인공이 됐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룩의 시간으로 초청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초대에 응답할 차례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그 거룩한 시간 안에 머물러 거룩을 이뤄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