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양승언 목사 _ 국제제자훈련원
모든 교회가 마찬가지겠지만, 기성 교회의 경우 제자훈련을 접목할 때 문화적 충돌이 심할 수밖에 없다. 제자훈련은 전통적인 신앙관과 교회관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나 문화와의 대립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심지어 이로 인해 제자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충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기성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접목함에 있어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성 교회에 제자훈련을 접목할 때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을 다섯가지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속도의 충돌 : 한 발만 앞서 변화를 준비하라
기성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접목함에 있어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속도의 충돌이다. 기성 교회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특히 교회의 역사가 길면 길수록, 규모가 크면 클수록, 성도들의 연령층이 높으면 높을수록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조급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데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CAL세미나 후 제자훈련에 대한 기대와 의욕이 앞서 현장에 돌아가서 바로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제자훈련을 접목한 후에도 곧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만큼 빠르게 변하거나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이런 현실과 목회자의 인식 차이는 목회자를 지치게 만들어 제자훈련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강남교회 송태근 목사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40년의 역사를 지닌 강남교회에 부임할 당시, 송 목사는 젊은 나이에 외국 유학까지 마친 터라, 아무래도 의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임 전 옥한흠 목사로부터 “1년 동안은 주보 한 줄, 의자 줄 하나 바꾸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그 조언이야말로 당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만약 그때 자신이 조급하게 변화를 시도했다면, 지금의 강남교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성 교회에 제자훈련을 접목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지도자는 사람들보다 한 발만 앞서가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2. 경험의 충돌 : 과거의 헌신을 이해하라
기성 교회는 낡은 피아노 하나, 투박한 강대상 하나, 의자 하나에도 과거가 담겨 있다. 비록 지금은 변화의 대상이 되었더라도, 그 속에는 숨겨진 과거의 헌신이 있으며,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변화는 자칫하면 이러한 과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이럴 경우 과거의 헌신을 경험했던 이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따라서 새롭게 부임한 목회자라면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과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헌신을 존중하며 변화를 추구할 때, 불필요한 충돌과 아픔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울산교회의 정근두 목사는 부임 후 어느 날 장로들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A4용지 4~5분량의 건의서를 받았는데, 건의서의 주된 내용은 자신들이 들었던 방식으로 설교하고, 자신들이 경험했던 방식으로 목회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건의서 내용에는 설교에 대한 것이 가장 많았는데, 유학 가서 설교학을 전공하고, 당시 설교에 있어서 손꼽히는 강사였던 그에게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는 “투박했지만 이러한 부딪힘 역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새로운 친구가 이사를 오면, 으레 또래 중 한 명과 싸운 후에야 서로 친해지는 것처럼, 시골에서 자란 이들 역시 사귐의 과정으로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정 목사가 이들의 과거를 이해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처했다면 오늘의 울산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3. 형식의 충돌 : 비본질적인 싸움은 피하라
모든 변화는 내용과 형식,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데 기성 교회에 제자훈련을 접목함에 있어, 내용이 아니라 소그룹의 명칭 등 형식의 변화부터 시작하고 집중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싸움은 내용의 문제이고, 내용이 변화되면 형식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때로는 의도적으로 형식의 변화를 가져옴으로, 교회가 변화의 시점에 와 있음을 전 성도에게 도전할 수 있다.
또한 어느 시점이 지나면 형식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내용이 담기지 않은 형식의 변화는 불필요한 문화적 충돌을 야기한다.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변화의 현장에 뛰어들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식의 변화로 인한 비본질적인 싸움은 되도록 피하고, 내용의 변화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장충교회 남창우 목사는 “늘 열에 서넛은 장로들에게 져 주라”고 권면한다. 정말 양보할 수 없는 본질적인 부분은 더디 가더라도 양보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장로들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첫 장로 제자반 수료식 때 장로 한 분은 “나는 언제나 선거 때면 1번만 뽑아 온 사람입니다. 그만큼 변화를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2번도 뽑으라면 뽑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간증했다고 한다. 형식을 양보하고, 내용에 집중한 결과가 낳은 변화인 것이다.
4. 대상의 충돌 : 침묵하는 다수를 주목하라
모든 변화에 대한 반응은 적극적 수용자와 반대자,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한다. 변화를 도입할 때, 우선 주의해야 할 대상은 적극적 수용자이다. 목회자가 이들에게 집중하여 변화를 추구한다면, 변화를 빨리 추구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심한 반발도 겪게 된다. 따라서 기성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접목하고자 하는 목회자는 이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이뤄 가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들에게 인내하며 기다려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주의할 대상은 적극적 반대자이다. 아무리 좋은 변화라도 적극적 반대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들은 주로 기득권을 가진 기존의 지도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들의 반대가 실제보다는 크게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가 이들에게 집중하게 되면, 변화를 포기하거나 반대자의 의견에 대응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돼서 훈련접목이 제 시기에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이들을 변화의 옹호자로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먼저 훈련을 받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변화에 대한 암묵적 지지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변화는 적극적 수용자나 반대자가 아닌, 침묵하는 다수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에 대해 집중하고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인식의 충돌 : 문화는 전염병이다
기성 교회에서 변화를 추구할 때,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목회자와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상황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교나, 핵심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독서 토론회나 중직자 기도모임, 개인적인 만남 등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모델 교회를 탐방하여 직접 눈으로 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전염병과 같다. 사람에 의해서 사람에게로 옮겨지며, 처음에는 소수에게 옮겨지다가 나중에는 다수에게 급속도로 확장된다. 그런데 그 시작이 바로 목회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이 제자훈련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갖고,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변화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이 마치 전염병과 같이 교회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성산교회는 최승국 목사가 부임할 당시, 장로들이 워낙 고령인데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 장로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제자훈련을 시킬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들 수준에 맞춰 제자훈련을 실시했다. 결국 장로 제자반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 목사의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목회자에 대한 불신으로 지역 내에서 목사 내쫓기로 유명했던 성산교회가 지금은 목사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돕게 됐습니다”라고 성산교회 장로들은 고백한다. 아무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목회자가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할 때, 그가 변화의 동인이 되어 교회문화 전반을 바꾸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양승언 목사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랑의교회 부교역자이며,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사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