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0년 04월

기획4ㅣ뿌리 깊은 나무 같은 동역자들, 위기 때마다 교회를 지킨다

기획 조현용 목사 _ 빛과소금교회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험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만, 어떤 경험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방금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생각할수록 새로운 감동과 기쁨으로 되살아난다.
주님을 따라 변화산에 올라갔던 제자들이 그곳에서 주님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지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16절과 마태복음 17장 5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목사의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라
나는 제7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에 참석해서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을 들으며 전율을 느끼고 가슴이 불처럼 뜨거워지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목사인 내가 먼저 주님의 제자되는 일과 평신도를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사역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새로워진다. 이 감동은 지난 20년 동안 뜨거운 가슴으로 제자훈련을 계속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해마다 제자훈련을 새로 시작할 때면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목사인 나의 제자를 세우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제자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다. 제자훈련 오리엔테이션 시간과 훈련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여러분은 목사의 제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철저히 주지시킨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수료 후에도 제○기 훈련생이라는 명칭과 별도의 모임을 아예 갖지 못하게 한다. 훈련이 끝남과 동시에 훈련생 때의 모든 모임은 자동적으로 종료하게 한다. 훈련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섬김과 모범의 신앙생활로 증인의 삶을 사는 제자가 되게 하는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훈련을 마치면 새로운 섬김의 사역 현장에서 녹아지는 소금처럼 좋은 평신도 동역자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꾼 될 것을 강조한다.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든든한 동역자들
CAL세미나 수료 후, 제자훈련을 하려면 최소한 3년 동안은 고개도 들지 말고 오직 제자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신 옥한흠 목사님 말씀을 따라 모든 외부 일을 피하고 오직 제자훈련에 몰입하였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를 믿고 열심히 훈련에 전념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는 나를 보고 어떤 선배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평신도를 너무 가르치면 안 돼! 꼭 그런 교인이 나중에 목사 괴롭히고 힘들게 해요. 그렇게 죽자 살자 고생하며 목회하다 자네 병들어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국 남 좋은 일 하는 것이네.”이런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번 들었었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하신 말이지만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구별하지 못한 말씀이었다. 제자훈련을 통해 변화된 성도들의 삶이 교회에 활력소가 되었고, 신앙생활의 모범이 된 훈련생들의 영향력이 눈에 띠게 교회에 나타나면서 담임목사의 리더십은 견실해졌다. 교회는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변화되었고, 갱신과 전도의 열매로 교회는 부흥되어 예배 참석율과 예산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잘 준비하지 못하고 강하게 추진했던 제자훈련이 훈련받을 수 없거나 훈련받지 않는 교우들이 일으키는 역풍에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창립멤버 몇 명이 교회의 이런 급격한 변화를 보면서 어느 날 새벽에 예배당 출입문에 못을 박아 교우들의 출입을 못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담임목사인 나에게는 “목사님이 제자훈련을 해서 모든 교인들이 목사님의 말만 듣고 창립멤버인 우리들의 뜻을 따르지 않아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 책임이 목사님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았다. 말없이 예배당을 나와 아직도 어두운 새벽하늘을 쳐다보는데 하늘에서 “조 목사야! 사람을 보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는 주님 음성이 마음에 들려왔다.
교회 개척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교회 부흥을 위해 목사와 훈련생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섬기다가 일어난 일이어서, 개척 교회를 할 수 있는 땅 한평이나 작은 공간을 빌릴 돈 한 푼이 없는 상황이었다. 
갈등과 내분의 과정이 거의 없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을 겪게 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그 당시 조그만 아파트(당시 주공 13평)인 목사 사택 거실에서 제자훈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개척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일이 돌아오자 할 수 없이 교인 집 아파트 거실에 몇몇 교우들과 함께 모여 주일 낮 예배만 드렸는데, 한 달 정도 되자 이웃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교인 집 단층 슬래브 지붕 위에 빚을 얻어 조립식 18평의 예배당을 짓고 교회를 시작했다.
빚 가운데 시작한 개척 교회였지만 개척을 시작한 첫 달 농촌 미자립 두 교회를 후원하였고, 둘째 달에는 두 교회를 추가해 지원했으며, 셋째 달에는 해외 선교사 후원을 시작하면서 선교지를 늘려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들이 담임목사와 비전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척 1년이 될 때 장년 출석교인이 100명 이상이 되어 더 이상 그곳에 모일 수 없게 되자 후미진 주택가 쓰레기장 부지를 임대하여 150평 조립식 예배당을 건축하여 이전했다. 개척 5년이 되었을 때 장년 출석 교인이 300명 정도가 되었고, 교인들의 자발적인 계획과 헌금으로 도시 중심지에 3,700평의 성전 건축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기 집 지붕 위에 조립식 예배당을 건축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집사님은 ‘천사표’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교우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시무장로가 되어 재정위원장, 교회학교 부장, 다락방 순장 등 중요한 봉사를 하면서 담임목사의 동역자로 교회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장로님이 담임목사인 나를 찾아와 “목사님! 우리 교회에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내 영혼 살기 위해 다른 교회로 출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이 일로 교회가 요동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장로님, 영혼이 살 수 있는 교회로 옮기셔야지요.”
그 다음 주일부터 장로님과 그의 가족들은 어느 교회로 옮겼는지 출석하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하고 텅 빈 것 같고 그동안의 사역을 생각하니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기도하면서 그 장로가 인도하다가 떠나간 다락방 순장을 다른 이로 세우고 몇 주일이 지나갔다. 자기 영혼 살겠다고 떠나간 이에게 돌아오라 권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어 전화도 심방도 권면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교회 개척 후 처음 겪는 일로 교회가 크게 흔들리거나 많은 교우들이 교회를 옮겨갈 것으로 사람들은 예상했고, 이 일은 주변에 여러 교회의 관심사가 되었다. 담임목사인 나 역시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 나름대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예상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분을 사랑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 기도는 하였지만, 단 한 사람의 교인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교회가 더욱 하나로 단단히 뭉치는 것을 모든 교인들이 느낄 정도로 결속되었다. 그가 인도하던 다락방조차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임목사인 나를 격려하고 끝까지 충성스럽게 주님을 위해 일하는 동역자가 되겠다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위기 앞에 십자가를 함께 지는 훈련
뿌리 깊은 나무는 큰 바람을 맞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교회는 위기를 만날 때에 누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진정한 동역자요 참된 제자인지 알 수 있다. 위기 때일수록 교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담임목사인 나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어떻게 하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제직들이 중심이 되어, 온 교회가 영적으로 바짝 긴장하여 담임목사와 교회를 지키려고 손에 손을 맞잡고 인간사슬 띠로 똘똘 뭉쳐서 밀려오는 적들을 대항하는 것처럼, 서로가 기도하고 격려하며 영적으로 달아올랐던 것이다.
아무도 옳고 그름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목사를 격려하며 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교회가 하나의 영적 끈으로 맺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얼마나 중요한 영적 동역자인지를 실감하게 됐다. 그러면서 제자훈련이 왜 목회의 본질이며, 우리 주님께서 왜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깨닫게 되었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이 우려하거나 염려하는 것처럼 제자훈련은 단순히 평신도들의 머리를 키워 목회의 비판 세력을 만드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맹종하는 목사의 우군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성도)를 사랑하고 세우기 위하여 교회의 위기 앞에 말없이 일어나 십자가를 함께 지는 평신도 동역자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훈련인 것이다. 나는 이 점을 피부로 체험했다.
교회의 기둥 노릇을 하다가 자기 영혼이 살아야겠다고 다른 교회로 떠나갔던 그 장로가 목사와 교회에 대해 매우 섭섭해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앞장서서 교회를 섬겨온 장로가 교회를 옮긴다 해도 목사가 붙들지도 않고, 교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너무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예수 잘 믿고 살아가도록 기도만 했다.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다가 내 눈을 의심하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던 그 장로 부부가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 후 나를 찾아 온 장로 부부는 목사님과 교회에 누를 끼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교회에서 받아주시면 죽도록 충성하겠노라고 용서를 구했다.
그래서 나는 목사님의 좋은 동역자로 충성해야 할 장로님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잘못과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할 장로 순장이 도리어 순원들과 교인들을 근심케 하고 실덕한 잘못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징계를 받고 근신하든지 아니면 교회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든지 분명히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라고 말했다.
그 장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벌을 달게 받고 회개하며 겸손히 살겠다고 했다. 절차를 따라 진심으로 회개하며 충성을 다짐하는 그에게 관용을 베풀어 장로 휴무 6개월간 징계를 하기로 결정하고, 교회 앞에 공포(公布)하였다. 그 후 그는 책벌을 달게 받고 근신하면서 전보다 더욱 진실하고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모범을 보임으로, 다시 교우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전화위복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비전과 목회철학을 공유하며, 좋은 평신도 동역자가 되어 교회를 모범적으로 섬겨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훈련시켜 목회의 동역자로 삼아 교회를 올바로 섬기는 가장 본질적인 목회사역인 것이다. 이 사역의 열매와 은혜를 한국 교회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현용 목사는 호남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미국 하워드신학대학원(D.Min.)을 졸업했다. 빛과소금교회를 개척하여 21년째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빛과소금 사회복지법인 이사장, 학교법인 호남신학대학교 이사, 목포 성서신학원 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