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상태 목사_ 화평교회
개척 교회라서 제자훈련이 안 되는 것인가, 전통 교회라서 안 되는 것인가?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만 제자훈련이 잘 되는가? 제자훈련은 개척 교회에서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도 다 잘 될 수 있다. 반면 모든 교회가 다 안 될 수도 있다.
담임목사가 어떤 목회철학과 교회론을 가지고 사역을 하느냐에 따라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하는 데 자원과 좋은 환경도 필요하지만, 훈련하고 인도하는 지도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제자훈련의 성패가 결정된다. 개척 교회이기에 인적 자원이 부족한 현실이 있지만 인내하며 훈련할 때 열매 맺는 그날은 반드시 온다.
첫 제자훈련, 준비된 자를 쓰신다
나는 개척 초기부터 교육과 훈련 목회에 집중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개척 교회를 시작한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경험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는 언제 마음껏 제자훈련을 해보나’, ‘언제 제자훈련 대상이 생길까?’ 등 훈련 대상자들을 찾아 전도도 해보고, 기다려도 봤지만 쉽지 않았다.
여자 성도들은 그런대로 훈련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으나 남자 성도를 대상으로 제자훈련 모집을 하니 지원자는 단지 3명뿐이었다. 자격 조건도 없었다. 그냥 내가 선택하고 본인이 원하면 참여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훈련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과제물은 물론 가르치고 나누는 것에 대해 잘 알아듣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고 해서 주일 오후에도 해보고, 새벽시간에도 해 봤다. 계속 간식과 식사는 내가 독차지해 훈련생을 대접해가며 인도해갔다. 2개월이 되었을 때 3명 중 가장 젊은 한 사람이 성남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훈련을 못 받겠다고 했다. 더 이상 권면하고 싶지가 않았다.
두 사람을 데리고 힘들게 진행하는데, 또 한 사람이 힘들고 바빠서 못하겠다고 말했다. 참 고민스러웠다. 이제 나이가 제일 많은 한 사람이 남았는데, ‘이 제자반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속으로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은 한 분은 제자훈련을 한다 해도 변화와 성숙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분에게 ‘성도님, 기회 되면 나중에 하시지요? 그때 제가 잘 섬겨드리겠습니다’라고 안심시키고, 첫 제자훈련을 실패로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에 포기한 그 사람은 10년이 지난 후 다시 제자반에 들어와 훈련받고,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또 가정교회 지도자로 섬기다가 지금은 은퇴했다. 간혹 사역자들에 따라 달리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제자훈련 받을 대상(자원)이 없다고 해서 아무나 선택해 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라고 생각한다. 개척 교회일수록 이런 유혹이 심하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 비전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선택해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 자발적으로 제자훈련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하는 헌신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자원이 없을 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준비된 지도자에게 그의 사랑하는 양떼들을 때가 되면 보내 주신다는 것을 나 역시 훗날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인류 역사 이래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자를 쓰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할 때 목회자로서 갖춰야 할 자세 몇 가지를 경험자로서 한번 짚어보고 싶다.
1. 내 제자가 아닌 주님 제자로
요즘 제자훈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함부로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제자훈련은 한물간 훈련이다’ ‘저물어가는 제자훈련’ ‘제자훈련은 머리만 커지게 한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제자를 사유화한다’ 등 말들이 많다. 나는 오랫동안 제자훈련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키운 내 제자로 누구한테 소개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으며,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 이유는 제자훈련이 목사의 제자를 만드는 훈련이 아닌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도자는 제자훈련을 하니까 훈련받은 성도가 말도 잘 듣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 봉사도 너무 잘한다고 자랑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제자훈련의 핵심 가치는 내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은가?
제자훈련을 하는 지도자는 세례 요한을 통해 제자도를 배워야 한다. 요한을 따라 다니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자 그에게로 몰려갔다. 그때 요한의 제자들은 불평했으나, 요한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쇠하고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나는 빛도 아니고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세인가?
이처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처럼 무익한 종의 자세를 지니고, 제자훈련을 한다면 제자훈련에 대한 오해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2. 맞춤식 제자훈련을 하라
훈련하는 소그룹 구성원이 12명 내외일 때 보통 세 부류로 나눠진다. 이미 젊은 시절부터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 모태 신앙으로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훈련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새가족반, 양육반 과정을 마치고 제자훈련의 외적 자격 조건이 되어 참여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성경 지식이 부족하고 훈련의 분위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다.
이럴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진행할지 매 훈련 시작할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나는 나름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무엇보다 훈련의 최우선을 초신자에게 역점을 둔다. 그리고 따라오지 못하는 훈련생은 사전에 훈련생들의 동의를 얻어 이해를 시킨다. 한 마디로 과제물이나 교과 내용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해도 봐주는 것이다.
대신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물을 개인적으로 내줘서 함께 나누도록 한다. 가령 독서 과제물을 감당 못하는 사람은 생활과제물을 줘서 발표하게 한다. 훈련생들끼리는 가족의식, 지체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쉽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경험이나 지식이 풍성한 훈련생들에게는 다른 훈련생들을 위해 어려운 책들을 읽고 준비해 발표하게 함으로써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제자훈련이 되게 한다.
이처럼 소그룹 제자훈련의 강점은 함께 배우며 함께 자라가는 성숙함에 있다. 그리고 훈련 받는 동안 훈련생들에게 은사에 맞게 역할 분담을 시킨다. 매일 기도, 전도, 간식, 찬양담당 등을 맡기면 이러한 섬김을 통해 훈련생들이 놀라운 의식 변화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훈련 대상에 맞춰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임을 잊지 말자.
3. 균형 있는 제자훈련을 하라
제자훈련을 받았다는 사람들 가운데 편협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제자훈련을 하면서 훈련생들에게 크게 세 가지 면을 강조한다.
첫째, 생활 면에서의 균형이다. 매주 생활과제를 주어 가정과 교회, 직장생활의 균형 잡힌 삶을 살도록 가르친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때와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 지켜 나가도록 강조한다. 주님의 일과 일상적인 일을 분리시켜 살지 않도록 하며,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선순위와 균형을 잘 지켜 나가도록 교육한다.
둘째, 교재 내용 면에서 보완한다.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교재 내용이 대상에 잘 맞지 않는 부분, 또는 더 보충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교재 중심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내용이 부실하고 빈약한 부분은 특강이나 테스트 또는 독서과제 발표를 통해 보완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제자훈련 교재들이 성경신학이나 교의신학적 측면에서 볼 때 아쉬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셋째, 가족과 함께 즐겁게 훈련받도록 한다. 생활과제나 독서과제를 가족과 함께 나누고, 적용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독서과제를 가족과 함께 나눈 후, 느낀 점을 훈련생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가족모임 갖기, 큐티 나누기, 새벽기도회 참석하기 등이다. 제자훈련은 훈련생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참여와 지지 속에서 변화와 성숙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핑계 삼아 소원했던 부부 사이, 부모자녀 사이에 생활과제를 실천해 보고, 새로운 시도와 격려를 통해 가족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가정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을 목격했다.
제자훈련의 장벽 넘기
개척 교회 제자훈련에 있어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훈련을 인도하는 지도자다. 나는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주님께 무릎 꿇고 엎드린다. ‘나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나를 살려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과 백성, 공동체를 위해 힘과 지혜를 주소서’라고 간구하면서 위기를 넘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제자훈련 중 훈련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제점과 크고 작은 장벽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잘 넘어야 한다.
첫째, 훈련에 충실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간이나 자기관리에 충실하지 못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 훈련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에 개인적으로 메일이나 문자 혹은 만남을 통해 권면한다. 다른 훈련생들에게 끼치는 악영향과 본인 자신을 위해 안 좋은 습관을 고칠 것을 사랑으로 요구할 때 상당히 변화될 것이다.
둘째,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다. 훈련받는 중에 어떤 사람은 과제물도 잘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하지만 전혀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종교인처럼 뺀질뺀질한 사람이다. 헌신과 섬김도 없다. 다른 구성원들이 가까이하기조차 싫어한다. 더군다나 신앙의 경륜까지 가지고 있다. 해결책으로는 그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기는 것이다. 반장, 혹은 총무 그렇지 않으면 매일 간식 담당을 섬기도록 한다. 사람은 사역을 하면서 많이 변화된다. 이렇게 섬김의 훈련을 쌓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제자반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남을 섬길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셋째,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제자반에 들어왔을 때, 또 중간에 예상치 않은 일로 훈련을 계속 받을 수 없을 때 훈련 포기자가 생길 수 있다. 훈련을 받다가 중도하차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까지 멀리 할 수 있고, 심지어는 교회를 옮기는 일까지 벌어진다. 또 본인의 믿음까지도 비탈길로 미끄러져 오랫동안 허우적거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중도포기 하려는 훈련생이 생기면 지도자와 훈련생들이 잘 붙들어 주고, 함께 완주하도록 기도하고 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 기회에 훈련받도록 하거나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잘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마치고 훈련반에 들어왔지만, 따라오기 힘든 훈련생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훈련생들의 동의를 얻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큼 실천하게 하면 된다. 가령 독서과제나 큐티 같은 과제를 못하는 상황이면, 생활과제를 내준다든지 성구암송을 대신 써오도록 한다. 시간이 없어 못해오는 경우, 성경 읽는 것을 절반으로 줄여준다든지 훈련이 잘 된 탁월한 사람을 붙여줘서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무슨 사역을 하든지, 갈등과 어려움은 있다. 본질적인 사역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개척 교회이기에 더욱 제자훈련에 집중할 수 있고, 개척 교회이기에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도 웃고 나중에도 웃게 되는 것이 개척 교회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을 포기하면 지금도 울고, 나중에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제자훈련은 준비된 지도자가 중요하고, 구성원이 중요하며 환경이 중요하다. 결국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최상태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과 풀러신학교(D. Min.)를 졸업하고, 일산 화평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시무 중이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겸임교수와 경기지역 CAL-NET 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