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허선무 목사_ 동심교회
내가 만난 목회자들 가운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제자훈련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CAL세미나를 수료했지만 아예 시도도 안 해 본 목회자들과, 시작했다가 지금은 포기하고 제자훈련을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대다수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유를 말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개척 교회는 제자훈련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은 주로 중대형 교회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훈련을 하고 싶어도 훈련할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제자훈련도 결국 성경공부와 같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해도 변화가 없고, 오히려 성도들의 머리만 키운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다.
교회의 상황에 맞게 시작하라
제자훈련을 하나의 목회 프로그램이나 교회 부흥의 방편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제자훈련을 하기에 앞서 먼저 목회자의 목회철학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제자훈련의 본질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잠자는 평신도를 깨워 그들을 목회 동역자로 삼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적이다. 훈련되지 않은 열 명보다 잘 훈련된 한 사람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씀이 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하나님은 언제나 ‘준비된 소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이 확신없이는 절대 제자훈련을 할 수 없다.
개척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열악한 환경과 훈련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큰 교회는 제자훈련 지원자들이 넘쳐난다. 신청을 해도 인원이 차서 다음 기수로 넘어가고, 그 다음 해에나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학력과 나이도 제한을 받는다.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면, 과연 개척 교회에서 제자훈련 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개척 교회 제자훈련은 큰 교회의 기준에 맞출 수가 없다. 그 교회의 여건과 상황에 맞춰 시작하면 된다. 인원이 적으면 적은 대로, 수준이 낮으면 낮은 대로 시작하면 된다. 성령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들을 변화시켜 사용하실 것이다.
성도의 변화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동심교회는 1기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그리 많지 않은 교인들 중에서 사모와 집사 포함 총 6명이 지원해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물론 학력도, 신앙수준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각 1년씩 총 2년 동안 이어서 실시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훈련 시간 시간마다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렸다. 말씀 앞에 눈물바다를 이루며 눈물 콧물 닦느라 각 티슈 한통을 다 쓰던 그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제자훈련을 한다고 교회가 금방 부흥되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인내가 필요하다. 교회의 부흥보다 성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1기 제자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교회 사정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훈련생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다.
훈련을 통해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이해하고,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훈련한 결과 그들의 신앙관과 교회관 그리고 가치관이 모두 바뀌었다. 그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주변의 몇 사람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교인들도 도전을 받아 2기 제자훈련에 5명이 지원했다.
2기 제자훈련도 사역훈련까지 이어서 2년 동안 실시했다. 2기 훈련 때도 1기 때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제자훈련을 마치고 나니, 총 10명의 수료생이 배출되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사역을 분담하고, 그들을 리더로 세워 기존 구역을 목장 소그룹체제로 전환했다.
제자훈련을 시작한지 5년차 되던 해부터 교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목회자가 굳이 말을 안 해도 그들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스스로 그 일을 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일절 남의 말을 하거나 판단하는 일이 없어지고, 평안한 가운데 교회 분위기는 밝고 생동감이 넘쳐났다.
또한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지 130평에 건평이 약 300평 되는 4층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해 교회를 이전했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출석인원이 1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성장이나 부흥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제자훈련에 집중할 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 확신한다.
개척 교회 목회자가 훈련시 집중해야 할 자세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게 몇 가지 집중해야 할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첫째, 목회자가 제자훈련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먼저 목회자가 제자훈련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확신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목회자가 확신에 차 있을 때, 성도들이 믿고 따른다. 목회자의 눈빛만 봐도 성도들이 먼저 안다.
둘째, 소그룹 인도법을 확실히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성경공부가 아니다. 질문과 토의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말씀을 나누며, 함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 부분에서 실패하는 것 같다. 질문보다는 설명을 많이 하고, 가르치려고 든다. 그러면 제자훈련이 아닌 성경공부가 되어버리고,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받는 제자훈련은 실패하게 된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부분이 제자훈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인도자가 얼마만큼 소그룹 인도법을 이해하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훈련생들의 마음에 있는 것을 끌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시중에 소그룹 인도법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셋째, 훈련 중에 외부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할 때는 목회자가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부활동이 잦아지면 마음이 분산되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제자훈련 감각을 잃게 된다. 그럴 경우 제자훈련이 성경공부가 될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훈련생들이 입게 된다. 그 정도 희생 없이 열매를 따겠는가?
사랑 없는 제자훈련은 변화가 없다
그럼 이제부터 실제적으로 제자훈련생 모집부터 제자훈련 수료식까지 유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훈련 전 개척 교회 상황에 맞는 토양 작업이 필요하다. 주보에 제자훈련 광고를 게재하거나 설교를 통해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성도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야 한다. 최소한 3개월 이상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자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배출하는 과정이다. 신앙의 기초가 너무 없으면 제자훈련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기초 교리공부나 성경공부 1년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둘째, 개척 교회 상황에 맞게 훈련생을 모집한다. 훈련생 모집은 공개적으로 하되, 교회 사정에 맞는 지원 자격을 정해서 모집한다. 그리고 반드시 자필로 직접 훈련지원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억지로 하는 제자훈련은 중도에 포기할 위험성이 높다.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목회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개별 접촉을 통해 지원하도록 설득한다. 제자훈련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교회의 비전과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이해시켜 자원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6~7명이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알차고 유익한 것 같다. 개척 교회에 사람이 없다면 2~3명이라도 괜찮을 듯하다.
셋째, 본격적인 제자반 진행 노하우가 필요하다. 제자훈련은 장거리 경주와 같다. 너무 조급하게 변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오래된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목회자가 훈련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만약에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사랑 없는 제자훈련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말은 안 해도 그들이 먼저 안다.
또 원칙을 세우면 고수하는 것이 유익하다. 제자훈련은 숙제가 많다. 때로는 훈련생들이 힘들어하고, 심지어 훈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목회자의 마음이 약해지기 쉽다. 최근에 훈련했던 제자반이 있는데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직장에 나가고, 숙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런 이유로 웬만한 숙제는 안 해와도 슬쩍 눈감아 주고, 개인 일이 생기면 훈련 날짜를 변경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는 별로 신통치가 못했다. 강한 군사를 키우려면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라. 훈련은 엄격해야 하지만 때로는 칭찬을 아끼지 말고,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훈련 전에 인도자가 기도와 예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 예습을 통해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훈련 감각이 떨어지고, 깊이 있고 알찬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제자반 시간은 정한 시간에 끝나도록 시간을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한다. 또 훈련생들과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도 중요하다. 관계가 잘 되었을 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고된 훈련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제자훈련 수료식 이후 후속 관리가 중요하다. 수료식은 교회의 중요한 행사가 되어야 한다.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전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지는 것이 유익하다. 수료식을 통해 수료생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고, 교인들에게는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수료식을 잘 하면 다음 훈련생 모집이 용이해진다.
수료생들에게 수료증과 더불어 담임목사의 선물을 준비하여 전달하고, 교인들에게는 꽃다발을 준비시킨다. 제자훈련 수료식이 교회의 축제가 되도록 한다. 수료 후에 후속 관리가 중요하다.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신앙이 해이해지기 쉽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서로 소통하고 은혜를 나눠야 한다.
개척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자훈련이 목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 물론 제자훈련을 해도 그중에는 실망스런 사람들도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가룟 유다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교회가 제자 삼는 일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기에 모든 교회가 순종해야 되지 않겠는가? 또한 제자훈련이 조금 힘들고 고달프다고 해도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교인 수를 자랑하지만 정작 일을 하려면 일꾼이 모자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 앞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국 교회 안에 싸구려 교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로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허선무 목사는 총회 신학 대학원을 졸업해 미국 사우스웨스턴 신학교 목회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현재 대전 동심교회를 개척해 20년째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