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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정식 목사_ 인천 은혜의교회
학익동은 인천의 변방이라 해도 결코 과하지 않았다. 이곳은 개발의 혜택이 전혀 미치지 못한 소외된 지역이었다. 교도소, 사창가와 더불어 일제 때부터 존재하던 판자촌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논, 밭, 산과 어우러진, 그야말로 문화의 그림자조차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싶은 열망으로 시작
10여 분을 걸어나가야만 주안역으로 가는 노선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그것도 단 한 대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천막 교회와 여름이면 매일 몇 개의 양동이에 가득 차는 물을 퍼내야 했던 지하실을 전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남의 땅을 빌려 가건물 예배당을 짓고 나서부터 유독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것은 ‘다음 세대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었다.
당시 내 아이들은 유치원을 고사하고 선교원조차 보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빈궁한 성도들의 삶을 바라보며 부모의 가난이 대물림되는 그 고리를 끊고 싶다는 대책 없는 갈망이 차올랐다.
그래서 상가 2층으로 교회를 이전하자마자, 미취학 아동을 위한 선교원을 시작했다. 3년을 꼬박 내가 오전과 오후에 차량을 운행해야 했기에, 제자훈련이나 교회 사역 이외에는 인천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30여 명의 원생 중에서 25,000원의 선교원 비용을 제대로 내는 가정은 반도 되지 않았다. 재정적으로 항상 궁핍하다 보니, 사례금도 못 받는 우리 가정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빚으로 채워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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