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5년 01월

기획2 * 훈련의 성패, 시작 전에 결판난다!

기획 홍정기 목사_ 성남제일교회

과거 제자훈련 담당 교역자로 처음 선정됐을 때의 설렘이 기억난다. 와, 이제 드디어 제자훈련을 해보는구나! 한국 교회를 깨웠던 제자훈련, 사람을 바꾸는 제자훈련, 선배들이 뜨겁게 헌신했던 제자훈련을 나도 하게 되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시작하려고 보니 막상 두 가지가 걱정으로 다가왔다.
첫째는 받아든 훈련생들의 프로필이 대단했다. 대부분 나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삶의 경륜이 묻어나고, 왕성한 직장과 사회활동으로 인생의 정점에 선 분들이었다. 지적으로나 인생 경륜에 있어 저만치 앞서가신 분들인데, 내가 과연 훈련자로서 자격이 있나 의문이었다.
둘째는 손에 받아든 제자훈련 교재가 날카롭고 도전적이어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귀납적 방법에 따라 던지는 질문은 연역 사고에 익숙한 나에게 생소했다. 둘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나이와 연륜의 문제는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메꾼다지만, 교재 문제는 홀로 씨름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먼저 한 것이 있다.

 

먼저 훈련 교재를 정독하자
우리는 『태백산맥』 같은 재미있는 소설이나 역사물은 정독한다. 그것도 밤을 새워서. 하지만 제자훈련 교재는 문제집이나 수련장 정도로 취급한다. 그 결과 한과 한과를 분해해서 소화는 하지만, 교재 전체 구조와 흐름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작심하고 소설 읽듯이 교재를 받아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랬더니 흐름이 보였다. 1권에서는 하나님과 관계 맺기, 2권에서는 신앙체계의 수립, 3권에서는 성도의 생활방식 수립. 이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나온 윤곽이지만, 교재의 정독은 훈련자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초점이다.
교재와 인도자 가이드를 정독하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교재의 구조가 보인다. 질문의 패턴과 진행 방식, 그리고 질문을 통해 도달하려는 목표가 어렴풋이 보인다. 둘째는 나의 취약점이 보인다. 무엇을 좀 더 공부할지, 주제와 관련해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이 드러나 사전에 준비할 수 있고 당황치 않게 된다. 지도를 손에 쥔 여행가는 절대 방황하지 않는다. 제자훈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구슬 꿰기와 클라이맥스!
제자훈련은 30여 개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물론 과목마다 중요하지만 구슬도 일목요연하게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왜 그 과목이 거기 위치하게 됐는지를 묻고 배열을 검토해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별처럼 빛나는 구슬을 발견하게 된다. 보배 중의 보배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3권의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제자훈련의 총 주제로 삼고, 모든 과를 주재권을 중심으로 배열하고 해석했다. 사실 제자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린 사람이다. 묵상을 하고, 죄 용서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뻐 감사하고, 순종과 헌신,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 재정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결국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는 주재권의 형성이다.
30여 과목들을 이렇게 해석하고 나니, 주재권이 바로 제자훈련의 클라이맥스가 됐다. 이렇게 클라이맥스를 설정해야 훈련자와 훈련생 모두 길을 잃지 않고 훈련 내용도 파편화되지 않는다. 많은 내용을 배웠는데 마음과 몸에 새겨지지 않는다면, 훈련은 성경공부로 끝나게 된다.
나의 경우 제자훈련은 주재권, 사역훈련은 로마서 8장의 성령과 더불어 사는 나의 정체성, 교회론에서 세상에서 부름 받은 우리의 정체성, 소그룹과 성경은 리더십으로 핵심 키워드를 정리하고 있다. 3권으로 분리된 제자훈련 교재 자체가 벌써 고도로 기획된 프레임이 아닌가? 이 프레임 속엔 도입과 기초, 전개와 클라이맥스가 숨어 있다. 그것을 놓치면 교재 연구에서 이미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기승전결과 방점!
전체 구조에는 물론 각 과에도 문제 제기와 도입, 전개, 절정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이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훈련자가 자신이 은혜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두 가지 위험에 빠진다. 첫째, 일방적 성경공부나 간증이 된다. 둘째, 교재의 흐름을 깨뜨려 훈련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교재는 기차가 달리는 레일과 같아서 충실히 따라가면 수월하게 목표에 도달하지만, 무시하면 덜컹거리며 심한 소음이 일어난다. 따라서 교재가 탐색과 연구를 요청할 때, 진지하게 반응하면서 왜 이런 본문에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맥을 짚어 연구와 답변을 하고 훈련생들과 함께 고민할 때, 그들도 교재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질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반응하게 된다.
특히 2권 교리 부분은 뒤편에 배치된 교리 요약을 염두에 두고, 훈련에서 빠짐없이 다뤄야 한다. 교리 요약의 한 토막을 빠뜨리면 은혜롭게 마쳤어도 논쟁거리를 남겨두는 꼴이다. 그리고 각과의 핵심에 방점을 찍고, 무기 삼아 훈련생의 마음을 뒤집어엎는 폭탄으로 터뜨려야 한다. 밋밋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 가슴을 때리는 진동과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지 않겠는가! 이것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타고 가지 않으면 실상 어렵다.
이 정도면 교재에 대한 외형적 준비는 크게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주제를 다루는 훈련자의 신학적, 영적 준비와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고(故) 옥한흠 목사님이 언어 문제를 다루는 과에서 ‘재갈’이 무엇인지를 물으셨다. 그때 교역자 중 한 분이 재갈을 자갈로 오해(?)하고 답변한 사건이 있었다. 대로하신 목사님이 “너희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물으실 때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준비 부족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어찌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교재 준비를 논하면서 교역자 자신의 준비를 제외할 수 없다.

 

30시간 설교 준비, 그렇다면 제자훈련 준비는?
영화 <제자 옥한흠>에서는 옥 목사님이 설교 한편에 30시간 준비하셨다는 증언이 나온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으니 고개가 숙여진다. 그분의 영성과 리더십이 어디서 왔을까? 30시간 준비로 무장된 강단이었다.
그럼 제자훈련을 위해선 시간을 얼마나 투자해야 할까? 30시간 투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훈련도 시간 싸움이다. 교재 준비를 위해 사전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지혜다. 훈련 목회를 하면 다른 일은 거의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렇게 제안한다.


각 과목에 해당하는 선행 독서
제자훈련 중에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이 있다. 교회마다 책의 종류와 분량이 다르겠지만, 제자훈련 사전 준비는 필독서를 읽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과거 옥 목사님은 “교리를 다룰 땐 능숙하지 못한 성도를 위해 훈련 중에 특강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렇다면 특강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읽고 숙지해야 한다. 미리 읽지 않는다면 영향력 있는 지도가 불가능하다.
또 옥 목사님의 당부가 있다. “좋은 설교는 꾸준한 독서에서 나온다네. 그러니 기독교 교리와 역사를 하루에 조금씩 읽어두게!” 목사님 자신은 필립 샤프의 『교회사』와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을 꾸준히 읽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은 나의 독서 방향에 큰 지침이 됐다.
월간 <디사이플>에 소개됐던 ‘목양실 인터뷰’의 독서 안내도 참고할만하다. 개인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가 오늘의 영성을 만든 숨은 발자취를 더듬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각 과를 질문과 토론으로 용의주도하게 다뤄가는 것은 사전 독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설교와 연동해 역추적해보라!
교재를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다. 교재의 출처가 어디일까? 어떤 자료를 근거로 교재를 만들었을까 묻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옥 목사님의 설교가 뿌리일 거라고 확신한다. 목사님의 설교는 본문에서 제기된 문제를 끌어안고, 질문하고, 해답하며, 치열하게 씨름한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에 호소하는 구조로 돼 있다. 거기서 회중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흡인력이 나왔다.
교재의 문항들을 다루는 방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아니, 그렇게 다뤄야 한다. 답 달기식의 훈련은 단순한 성경공부로 흘러가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교재 연구는 그 과와 관련된 옥 목사님의 본문 설교와 연동될 때 더 풍성한 은혜를 길어올릴 수 있다. 교재를 다룰 때 뿌리가 되는 설교를 역추적해 참고한다면 의외로 쉽고 재미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고민을 훈련생들과 펼쳐놓고 난상토론을 하고 주의 뜻을 발견해간다면, 훈련 현장도 사자후를 토하는 강단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강력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부채 접기 요약하기!
교재는 많은 토의 주제를 끊임없이 던진다. 논의를 활성화하고 펼쳐가기 위함이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처럼 교재 앞으로 끌려온 훈련생들에게 부채 접기 요약은 지적인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만약 이런 과정을 생략하면, 주제와 초점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교재가 부채를 펼쳤다면 훈련자는 부채를 접듯이 그 내용을 요약·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아직 준비 부족으로 진단해도 틀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2시간 이상 서로 나눈 이야기를 풀어놓고 요약 없이 마무리한다면, 머릿속만 복잡하게 헝클어 놓는 게 아닌가? 교리 부분에 요약이 있듯이 모든 과에도 부채 접기 요약이 필요하다.

 

질문·예화 Box 만들기
관련 서적을 읽고 연구와 묵상을 통해 얻은 열매들을 모아 질문 Box를 만들어 놓을 필요도 있다. 그래야 더 예리하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주제를 더욱 쉽게 이해하게 돕는 예화도 수집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교재를 공부하는 선 이해를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훈련 중에 나올 수 있는 가상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주어진 주제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옥 목사님 설교 한편에 질문은 적어도 5개, 예화는 많을 때 10여 개를 웃돈다. 주제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계속 질문하고, 예화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설교가 대단히 논리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듯이 환한 분위기의 설교가 이어진다. 질문·예화 Box도 마찬가지다. 토론이 느슨해지고 논의가 지루해져 길을 잃을 때 필요한 것이 질문과 예화이다. 질문·예화 Box가 훈련에 생기와 활력을 줄 것이다.

 

교역자의 확신이 훈련의 신뢰도를 높인다
개인적으로 훈련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바로 ‘논증’과 ‘간증’이다. 왜 논증과 간증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훈련자의 확신 때문이다. 확신을 취약하고 무른 땅에 세울 수는 없다. 든든한 바탕을 세우려면 토대가 필요한데, 그 토대가 바로 논증과 간증이다. 논증이 객관적인 토대라면 간증은 개인적 토대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와 훈련자 개인의 삶에서 검증된 개인적 토대가 있다면, 훈련자가 전하는 영적 진리가 사람을 바꾸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훈련생들이 흔쾌히 훈련자의 확신에 동의하며 자신의 고집과 쓸데없는 소신을 내려놓게 된다. 훈련의 침투력이 강해지고 훈련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그런데 이 확신이 목소리를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전에 교재를 준비하며 마음에 두고 깊이 묵상해야 가능하다. 제자훈련은 강의가 아니라 믿는바 확신의 전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훈련생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라! 
훈련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훈련은 영적 전쟁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성도가 훈련에 입문하는 것을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장애물을 만들고 위기의식을 조장한다. 이때 훈련자는 사전에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깊이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뜻밖에 훈련을 포기해야 할 이유와 조건들이 생겨난다. 하나님께서는 훈련생들을 위한 훈련자의 기도를 어떤 기도보다 앞서 들으신다.
또한 기도를 해야만 훈련 첫날 만났을 때 초면의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랜 친구처럼, 아이처럼 친밀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이란 불이 쇠를 달구듯이 기도로 영혼을 뜨겁게 달구고 말씀의 망치로 다듬어 주님을 닮는 제자로 바꿔가는 것이다. 철공소는 항상 풍로로 쇠를 녹여서 낫도, 칼도 만든다. 사람을 작은 예수로 짓겠다고 나선 훈련자가 어찌 영혼을 달구는 기도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

 

낫을 갈고 소를 살 찌워라
지혜로운 농부는 농한기에 소를 살찌우고 쉬면서 낫을 간다. 뜨거운 뙤약볕에서 수고의 땀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곧 새해가 되고 새로운 훈련이 시작될 텐데 우리도 사전에 낫을 갈고 소를 살 찌워야 하지 않겠는가? 교재 연구는 낫을 가는 것이고, 훈련자 자신의 영성을 돌보는 것은 소를 살찌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훈련의 성패는 시작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준비한 만큼 얻고, 연구한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동역자 여러분의 분투를 빈다. 샬롬!

 

 


홍정기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랑의교회에서 교육담당 사역자로 섬겼다. 현재 성남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