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5년 04월

기획3 * CAL세미나와 다른 세미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획 임종구 목사_ 대구 푸른초장교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사적인 순간과 조우할 때가 있다. 가령 광복 100주년(2045년)이라든가, 종교개혁 500주년(2017년)이라든가, 혹은 교회 설립 100주년 같은 경우다. 동양에서는 희수(77세), 미수(88세), 백수(99세)의 생일을, 서양에서는 은혼(25주년), 금혼(50주년)과 같은 결혼기념일을 중요한 기념일로 여긴다. 내 경우 교회 설립 100주년(2096년)까지 함께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광복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가능할 것(?)같다. 그리고 CAL세미나가 계속 순항해서, CAL세미나 200회(2046년)를 맞게 되기를 꿈꿔 본다.
1986년 개최된 제1회 CAL세미나는 75개 교회에서 83명의 목회자가 참석해,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나는 1999년, 제40회 CAL세미나를 수료했다. 2009년부터는 제자훈련 목회 철학으로 목회하는 제자훈련 목회자 네크워크(CAL-NET)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CAL세미나가 100회를 맞은 것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갖는다. 1986년에 시작된 ‘CAL세미나’가 세계적인 세미나로 기념되고 조명돼야 할 시점에, CAL세미나가 여타 다른 국내 세미나와 다른 점과 그 특징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목회 철학을 다루는 세미나다

오늘날은 세미나와 워크숍, 컨벤션, 콘퍼런스 등 여러 가지 훈련이 난무한다. 그만큼 길을 찾기 어렵고, 또 길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개 다른 세미나들의 경우 기교와 기술을 다루고, 방법을 전수하고 자료를 공개한다. 그러나 CAL세미나는 목회 철학을 다룬다. CAL세미나를 수료한 분들의 일성(一聲)은 제자훈련은 ‘목회 철학’이라는 것이다.
첫날 ‘광인론’과 ‘온전론’으로 정도(正道)를 이탈한 목회 현장과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자신의 목회 여정과 목회 현장에 대해 겸허히 숙고하게 된다. 내 경우 교회를 개척하고 3년 동안 성도 수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구제금융사태로 인해 예배드릴 처소마저 잃어, 기도원으로 올라가서 떡갈나무 아래 모여 예배드렸다.
돌이켜 보면 CAL세미나는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을 순(?)하게 다루는 세미나가 결코 아니다. 기존 목회에 대해 강력한 딴지를 걸고 자신의 목회에 대해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드는 세미나다. 나 역시 첫 시간부터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었던 진퇴양난의 목회, 그때 당시 나는 그야말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의 심정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하나하나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받았는데, 그 중심에는 ‘교회론’과 ‘제자도’에 대한 집중 강의가 있었다. 이 강의는 목회 기술이 아닌 목회 철학을 다루는 시간이었다. 그 어떤 세미나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심도 깊은 강의는 목회의 방법만 찾던 목회자들을 다시금 본질로 돌아서게 한다.
고(故) 옥한흠 목사님이 칠순이실 때, 병환이 깊으셔서 칠순잔치란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보다 못한 CAL-NET 목사님들이 옥 목사님을 위해 조촐한 칠순 자리를 마련했다. 병환 중에 식당으로 잠시 나오신 목사님은 우리를 보자 아주 격하게 꾸짖으셨다.
옥 목사님은 우리에게 “돌아다니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제자훈련하기 바쁠 텐데 왜 돌아다니느냐? 제자훈련은 부교역자들에게 맡기고, 부흥회나 다니는 목회자가 되지 말라”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후, “보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안아 주셨다. 나는 그날이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뵙는 순간이었다.
기술을 가진 자는 기교는 뛰어날 수 있지만, 장벽을 만나면 기존의 기술을 버리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철학을 가진 자는 기술은 부족할지 모르나, 본질을 붙들고 하루 종일 밭을 간다. 남명 조 식 선생이 학문을 다하고 벼슬길을 떠나는 제자 정탁에게 소우(牛) 자를 써 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자 정탁은 훗날 좌의정에 올라 당시 스승의 가르침을 회고했다. 나 역시 지금 그렇게 소처럼 묵묵히 제자훈련이라는 밭을 갈고 있다.
CAL-NET의 목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도 우보천리(牛步千里)다. 기교를 가진 자는 십 리를 갈 수 있지만, 철학을 가진 자는 천리를 가기 때문이다. 또 ‘마행처우역거’(馬行處牛亦去)라는 한자성어도 생각난다. 이 한자는 ‘말 가는 곳이면 소도 간다’라고 해서 느리지만 언젠가는 이룬다는 뜻이다. 제자훈련은 비록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천리를 가는 힘을 갖고 있다. 격동의 시대에도 철학을 가진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세미나다

CAL세미나의 두 번째 특징은 현장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세미나의 경우 이론과 기술을 전달하고 현장을 보여 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만, 세미나 참석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이 배운 것을 직접 실습해 보는 것은 흔치 않다. 몇몇 전도훈련의 경우 훈련을 받고 현장에 나가 실습하는 사례가 있지만, 세미나는 소규모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사백 명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삼사백 개의 현장을 오픈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CAL세미나에 사백 명이 참석한 경우, 소그룹 다락방도 육백 개가 오픈되는데, 그 다락방에 참석한 사람을 다섯 명으로 잡아도, 삼천 명이 소그룹 실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의 참관과 한 번의 실습에 연인원 삼천여 명이 참여하게 된다.
CAL세미나의 흐름을 보면, 귀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첫날 저녁 집회를 통해 문제 제기와 기존 목회에 대해 관찰하고, ‘교회론’과 ‘제자도’를 다루면서 연구와 묵상이 이뤄진다. 그리고 소그룹 현장 실습을 통해 느낀 점과 제자훈련의 실제와 운영을 배워, 결단과 적용에 이르게 된다. 첫날 저녁 집회를 통해 강력한 도전을 받고, 현장 실습에서 두 번째 도전을 받는다.
물론 각기 다른 목회 환경에 있는 참가자들이 서울 강남의 소그룹을 체험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다소 이질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지도자들이 소그룹을 이끌어 가는 것을 참관하고, 또 자신이 직접 소그룹을 인도해 보는 것은 분명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제자반과 순장반까지 참관함으로, 결국 CAL세미나는 제자훈련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보여 주는 셈이다.
CAL세미나가 100기를 맞게 된 것은 바로 이처럼 치밀한 이론과 실제의 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가르치고 현장을 오픈함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의 목회 현장에 제자훈련을 적용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는다.


셋째, 한 번의 세미나로 끝나지 않는 세미나다

CAL세미나의 강점은 후속 기능이 강하다는 것이다. CAL세미나는 제자훈련이라는 목회 철학으로 한 송이 꽃을 피우려는 목회자들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세미나다.
초기에는 세이레모임을 통해 CAL세미나를 수료한 목회자들을 지역의 제자훈련 모델 교회로 초청해 다시 도전하고, 구체적인 컨설팅을 해 줬다. 현재 세이레모임은 CAL세미나 기간에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각 지역의 CAL-NET 목회자들은 세미나에 참석해, 특송도 하고 세미나와 지역 모임을 연결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제자훈련원은 체험학교와 각종 양육체계를 위한 큐티, 교리, 성경과 관련한 세미나는 물론 새가족, 대각성전도집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또 CAL세미나를 수료한 목회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을 위한 제자훈련 평신도지도자 컨벤션도 개최한다.
CAL세미나의 가장 큰 변화는 CAL-NET이 결성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이다. CAL-NET은 이른바, CAL세미나 수료생들이 모인 제자훈련 학교의 총 동창회격이다. CAL-NET은 모교인 국제제자훈련원과 손을 잡고 제자훈련을 위해 함께 뛰고 있다. 지역마다 지역 CAL-NET 포럼을 개최하고, 국제 CAL-NET 포럼과 CAL-NET 정책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CAL-NET 제자훈련 목회자들에게는 동지의식이 있다. 비록 교단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며, 목회 현장은 다르지만, 같은 목회 철학을 가졌다는 것이 이들을 강하게 묶는다. 최근에는 지역 CAL-NET이 활성화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가령, 지역 제자훈련 교회들이 연합으로 수료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서로의 현장을 오픈하고 지역 제자훈련 목회자들의 수련회도 자체적으로 여는 것이다.


넷째, 다양한 목회 환경을 수용하는 세미나다

CAL세미나는 다양한 목회 환경을 이해하고, 목회의 상황에 제자훈련이 적합하도록 돕는다. 신학생들을 위한 CAL세미나를 개최하는가 하면, 개척 교회 목회자 부부를 초청해서 무료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 평택대광교회를 중심으로 중소도시 목회자들을 위한 제자훈련세미나, 그리고 고성삼산교회를 중심으로 한 농어촌 목회자 초청 제자훈련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또 각 신학대학원생들의 제자훈련 동아리(VIP)가 조직돼 활동하고 있고, 해외 CAL세미나도 개최되고 있다.
해외 CAL세미나는 미주지역 CAL세미나를 비롯해 브라질, 일본, 대만에서 개최되고 있고, 비정기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도 열리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다양한 목회적 환경에서 제자훈련이 잘 접목되고 있다는 사례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이다. 전통 교회, 개척 교회, 농어촌 교회, 해외에서 제자훈련이 결국 옳았다는 승전보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다섯째, 전문적인 연구 기관이 있다

CAL세미나가 지속적이면서도 풍성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제자훈련원(DMI)이라는 전문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40여 명의 전문 사역자들이 단 하나의 철학과 목표를 품고 달려온 결과가 오늘의 100기 CAL세미나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숨은 공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CAL-NET의 사무총장으로서 아낌없는 박수와 치하를 보낸다. 국제제자훈련원은 모든 제자훈련 목회자들의 모교이면서,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고향이다.
특히 <디사이플>은 전 세계 한어권 제자훈련 목회자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해 왔다. 이 매거진을 매달 받아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특정 세미나가 100회를 맞은 것도 경이로운 일이지만, 이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결속해 주고 지원해 주는 전문 매거진이 있다는 것은 CAL세미나가 여타 세미나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외에도 제자훈련을 돕는 큐티지 발행을 비롯해, 제자훈련과 관련한 다양한 도서 출판은 왜 CAL세미나가 100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제시한다.


100기를 맞은 CAL세미나!

CAL세미나는 지난 30여 년의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200회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응답해야 하고, 또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도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도전에 앞서 CAL세미나의 원천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자훈련의 원천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다.
에라스무스는 중세의 혼돈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그는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 읽다가 우연히 그리스어로 번역된 신약성서를 보게 됐다. 여기서 그는 라틴어 번역의 오류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4장 17절의 라틴어 번역은 ‘고해성사하라’였는데, 그것의 그리스어 번역은 ‘회개하라’였다. 중세의 세계관을 형성한 성경을 재해석한 에라스무스의 ‘ad fontes’(원천으로)라는 표현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끈 정신이다. ‘ad fontes’는 원래 시편 42편 1절에 등장하는 “목마른 사슴이 샘물들을 향해 헤매듯이, 내 영혼이 당신을 향해 있습니다”에서 ‘샘물들을 향해’라는 라틴어 표현이다.
이제 우리는 목회 성공을 찾아 헤매는 자들이 아니라,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목회의 방법을 찾고 길을 발견하는 자들이 돼야 할 것이다.


임종구 목사는 대구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해 제자훈련 목회철학으로 섬기고 있다. 대신대학교를 거쳐 총신대 일반대학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전국 CAL-NET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