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조성민 목사_ 상도제일교회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누군가가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 중에 고(故) 옥한흠 목사께 질문했다. “목사님! 제자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옥 목사는 고심하시다가 “훈련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선발하느냐에 따라 제자훈련의 성패가 갈립니다”라고 답하셨다. 그분의 답은 사실 상식을 깨트리는 답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재를 충실히 준비하고, 훈련생들의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해야 합니다.’ 아니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좀 고차원적인(?) 답이 나와야 수긍할 수 있는데 “훈련생 선발이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훈련생을 선발하기 위해 기도하고 고심해야 합니다”라는 제자훈련의 대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CAL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때 옥 목사의 말씀이 57년 된 전통 교회에서 담임하고 있는 내게 큰 가르침이 됐음을 알았다.
골짜기가 깊어야 봉우리가 높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CAL세미나를 마치거나 혹은 담임목사가 되면 제자훈련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른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올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목회자라면 제자훈련에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골짜기가 깊어야 봉우리가 높은 법이다. 제자훈련이라는 봉우리에 깃발을 꽂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먼저 그 산에 어떤 문제의 골짜기가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문제를 살피는 첫 단추는 바로 “누구를 제자훈련 1기생으로 그 산에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은 반드시 틀어지게 된다. 그래서 빨리 가려고 하는 조급증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늦게 가는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가야 한다. 제대로 가려면 제대로 선발해야 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어떻게 하면 1기 훈련생을 잘 선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를 풀어 가 보자.
전통 교회에서 1기생을 선발하는 경우
전통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하려는 목회자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 전통을 파괴하면서 제자훈련을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인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의 전통을 인정해야 한다. 전통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려는 목회자들은 ‘제자훈련을 어떻게 할까?’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먼저 내게 맡기신 교회의 전통을 인정하고, 전통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여러분들의 땀과 헌신으로 세운 교회의 전통을 인정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라는 자세를 보여 줘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마치 점령군(?)처럼 제자훈련이라는 무기로 밀어붙이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CAL세미나를 마치고 바로 제자훈련을 할 필요도 없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현장을 이해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현장의 토양을 알지 못하면서 내가 가져온 나무를 무조건 심겠다는 것은 떼쓰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다. 그러면 필히 교회 중직자들은 이런 목회자에 우려를 표명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의 연소함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통 교회에서 제자훈련 1기생을 선발하기 전에는 무엇보다도 토양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훈련을 받는 성도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토양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바로 예배를 통해서다. 성령께서는 예배를 통해 굳어 있던 성도들의 마음을 녹여 주신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예배를 잘 준비해야 한다. 예배의 흐름, 설교 진행, 기도 자세, 심지어 찬송가를 뽑는 것까지 세밀히 신경 써야 한다.
예배를 통해 토양이 변화되면 그때 1기생을 선발해야 하는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발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선발하는 것과 선발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달될 때 누가 제일 반대했는가?
바로 베드로다. 그는 교회의 수장이었고,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초대 교회 안에서 베드로가 반대하는 일은 사실상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의 환상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 고넬료 사건 이후 베드로는 마음이 변했고,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전통 교회의 1기생들은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발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선발되도록 해야 하는가? 단언컨대 장로들이다. 이들은 목회자와 평생을 함께 일할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나이가 많든지, 학벌이 약하든지, 경제 능력이 부족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내가 그곳에 부임 전에 세우신 분들이다. 반대로 목회자보다 똑똑하고 세상에서 직급이 높고 목회자에게 부담이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그곳에 부임 전에 세우신 분들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장로들이 1기생으로 선발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전통 교회 제자훈련에서의 첫 단추다.
인생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설득’이 아닐까 싶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어쩌면 목회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장로들을 생소한 제자훈련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담임목사가 져야 할 십자가다. 다른 사람이 설득할 수 없다. 설득에는 지혜와 함께 목숨을 걸 각오도 필요하다.
장로들을 1기생으로 선택하고 설득해야 하는 이유
중직자들 중에 장로들을 1기생으로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변화시켜 진정한 일꾼으로 만드는 목적도 있지만, 훈련을 통해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엄청난 분량의 예습과 암송 등을 제시하면, 이들은 제자훈련의 반감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제자훈련을 통해 장로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아~ 제자훈련이 이런 것이구나. 참 좋은 훈련이구나! 나는 이 나이에 훈련받지만 성도들은 좀 더 일찍 받았으면 좋겠다. 배움에 이런 기쁨이 있을 줄이야!”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2기생들을 모집할 때 이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제자훈련을 반대하지 않는다. 담임목사는 싫든 좋든 장로들을 1기생으로 세워야 한다. 장로들이 제자훈련을 반대하지 않는 것만 해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다.
우리 교회의 경우 전임 목사님이 제자훈련을 하다가 중지하셨고, 이후 내가 부임을 했다. 제자훈련을 경험한 교회에 부임했으니 장로들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제자훈련을 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연말 당회를 통해 제자훈련을 제안할 때 “네! 말씀만 하옵소서 주의 종들이 신청하겠나이다”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목사님, 저희는 제자훈련을 다 받았습니다. 그것도 옥한흠 목사님의 교재를 가지고 말입니다.”
다들 순순히 따라오실 줄 알았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한다면 서로 간에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3년 동안 토양 작업을 다시 했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제자훈련 카드를 꺼냈다. 안 되면 목양지를 옮기리라는 각오로 말이다. 그러자 주의 은혜로 장로들이 새로운 담임목사의 제자훈련 1기생이 되겠다고 자원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그것이 나를 돌아보게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 장로들이 1기생이 되니, 그다음으로 안수집사들과 시무권사들의 마음 문이 쉽게 열렸다. 지금은 집사들의 마음 문까지 열렸다. 만약 그때 장로들의 반대에 수긍했다면 지금의 기수는 없었을 것이고, 목회 생활도 어려웠을 것이다. 전통 교회에서는 당회 동역자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목회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진다.
개척 교회와 비 전통 교회에서 1기생을 선발하는 경우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의 차이점을 알고 있는가? 제자훈련은 나를 세우는 것이고, 사역훈련은 세워진 나를 통해 남을 세우는 것이다. 결국 제자훈련은 훈련받은 이들로 하여금 교회의 작은 목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훈련받은 이들에게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몇 가지 욕심을 내려놓고 훈련생들을 선발해야 한다.
첫째, 12명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기에 12명이 한 팀이 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집착이다. 숫자를 줄이는 것이 좋다.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하는 것도 좋지만, 그다음 기수, 그다음 기수가 생겨야 하는데, 없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인원을 줄여라. 이때 중요한 것은 제자훈련을 하는 다른 교회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비교 의식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꼭 12명이 아니고 인원이 적더라도, 내가 제자훈련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둘째, 다른 요인에 휘둘리지 말라. 1기 제자훈련생을 선발할 때 누구나 갖는 욕심이 좋은 훈련생을 선발하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을 평가하게 되는데,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다른 요인에 의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경제 능력, 신앙 경력, 관계의 정도, 직장 수준 등의 요인으로 훈련생들을 선발하게 되면 반드시 그 요인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 같은 요인을 생각하고 선발하면 훈련생들을 향한 기대치가 높아,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실족하고 만다. 이것만 생각하라.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작은 목사로 세위질 수 있는가?”
셋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은데, 훈련생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나를 통해 배출되는 훈련생들이 최고의 훈련생이 돼 세상에서 승리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거룩한 욕심일 수 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훈련생들이 질려서 훈련을 포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제자훈련을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할 때가 많다. 그러면 그 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여기서 꼭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 식사 대접을 통해 섬김이라든지 준비라든지 훈련의 다른 요소들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스러워 훈련을 포기하려 한다면 그 부담의 벽을 낮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통 교회든 개척 교회든 중형 혹은 대형 교회든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에는 누가 1기 제자훈련생이 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1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 기수들의 질과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목회자가 1기 제자훈련생의 선발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성민 목사는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13년간 교회학교와 청년부를 담당한 후, 2008년부터 서울 상도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현재 교회갱신협의회 임원과 전국 CAL-NET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