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철수 목사_ 천안장로교회
우스갯소리로 전도사는 ‘전부 도사’라는 말이 있다. 전도사 시절, 8~9년 차의 전도사님들을 보면 정말 ‘전부 도사’, ‘진짜 도사’처럼 보이곤 했다. 설교면 설교, 사역이면 사역, 운전이면 운전,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못 하는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설교와 심방, 행정은 목사로서 해내야 할 기본적인 일이다. 이와 더불어 다방면에서 탁월한 능력, 신앙과 시대적인 안목까지 갖춰야 한다. 나아가 탁월한 인격과 영성까지도 겸비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가 이렇다 보니 목회자들은 사역에 대한 무게와 부담감으로 인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고,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솔로몬이 왕이 된 후 가졌던 두려움과 부담감이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물론 그 규모나 책임의 경중을 감히 솔로몬 왕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가운데 말씀 선포자로 구별한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들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여러 연약함들이 기사화되고 드러나기도 하지만,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목회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이 돼 주길 기대한다.
하나님께 영적 분별력을 구하라
그렇다면 시대의 요구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시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범위를 좁혀 교회 내에서라도 실제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 한다. 솔로몬이 구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는 백성을 재판할 때, 하나님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목회자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올해 1월부터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목회자들이 세금을 내느냐 안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면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이 정부로부터 근로지원금을 비롯해,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자녀지원금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들의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근로지원금을 받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목회자들을 다른 근로자들과 똑같은 눈으로, 똑같은 잣대로 보게 될 것이고, 성도들도 점차 그런 시각에서 목회자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목회자 자신조차 자신을 근로자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성도를 돌아보고 교회 사역을 감당하며, 심지어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는 것에서부터 예배드리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까지도 노동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그러니 목회자들에게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읽어 내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목회자들은 세상 풍조를 아무 생각 없이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시대 속에서 목회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목회자들에게는 이단을 비롯한 안티 기독교 세력들의 도전이 있다. 기독교 안에서도 여러 가지 유혹들이 목회자들을 위협한다. 그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와 상황을 지혜롭게 판단하고 극복하며, 모든 과제를 능히 감당해 가기 위해서는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탁월한 해결책이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다.
과거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영적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교회의 부흥이 좌우됐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이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현대의 성도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갖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공동체가 그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구조를 기뻐하거나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목회자들에게는 더더욱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목회자에게 필요한 탁월한 안목은 다른 이들, 평범한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이 시대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합리적이고도 이성적 사고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부합하면서도 영적 진리에 기반을 둔 방향성과 방법론으로 무장된 비전과 사역들을 제시해 줘야 한다. 그럴 때 성도들은 목회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목자로서 따를 수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에 진정한 헌신을 하려 할 것이다.
성도들은 이제 목회자의 의견을 그저 한 사람의 의견으로 상대화해서 들으려 한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따라야만 하는 영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성도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함과 동시에, 단지 자신의 생각과 계획, 기대를 섣부른 권위의식으로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당회나 교역자 회의를 비롯한 리더 그룹과의 토론을 통해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 가운데 선한 뜻을 분별해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 마음과 뜻을 모아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 가는 것이, 목사 혼자 어떤 결정을 내리고 추진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이다. 이 시대는 융복합적 사고와 판단이 요구되는 시대로, 어떤 개인도 완전할 수 없다. 목회자가 단독으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추진하다가 일을 그르칠 경우, 그 책임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감당해야 한다. 이 시대의 성도들은 이런 과정 자체를 기뻐하지 않는다.
‘주의해서 듣는’ 지혜를 구하라
솔로몬은 재판을 할 때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그는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듣는 마음을 주시길 간구했다. 백성의 말과 간절한 호소, 간구를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귀, 그들을 진정 긍휼히 여기며, 그들의 말의 진정성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다. 다시 말해 솔로몬은 백성에게 진정으로 전심을 기울일 수 있는 집중력과 그럴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구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 필수 덕목이다. 목회자들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성도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의 관심과 헌신은 자신이 목양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만 성도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서 목회 방향이 바르게 설정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도들은 교회 생활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고, 목회자의 목회 방향과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협력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필요를 알게 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적인 목회에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목회 사역을 당회에서 논의할 때 부담스럽다. 장로들의 마음과 이해가 목회자와 다른 경우에 쉽게 동의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실제적인 사역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유익함도 있다. 당회에서 장로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기도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또 논의 과정에서 장로들로부터 경험과 지혜를 얻는 것은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우리 교회는 새해가 되면 ‘정책 당회’를 계획한다. 명목상이었던 정책 당회는 몇 해 전부터 실질적인 정책 당회가 됐다. 목회자가 사역 계획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로들이 교회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때도 있다. 그러면 제안된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때로는 아주 길고 긴 토론이 이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당회는 만장일치가 될 때에만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장시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면서 의견 대립에 마음이 상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주를 위하고, 교회와 성도를 위한 수고의 과정이라 여기며 인내함으로 임한다. 여러 가지 정책 문제를 놓고 몇 주 동안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하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목도하며,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성과도 얻는다.
하나님의 길, 제자의 길로만 걸으라
목회를 할 때에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센스는 어디서부터 생겨나는가? 타고나는 것도 있겠지만 노력에서 생겨난다. 말씀을 묵상하듯이 성도들을 묵상하고, 교회를 묵상할 때, 그만큼 집중할 수 있고 그 필요를 깨달을 수 있으며 그만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준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가 왜,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사역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참된 지혜고, 참된 능력이다. 여기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된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 시대에 목회자는 많지만 주의 진정한 제자는 많지 않다. 사도 바울처럼 진정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할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될까? 성도들이 목회 사역에 진정으로 헌신하고, 진정한 목회 동역자가 되는 것은 목회자를 마음 중심에서부터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사역이 아니라, 삶으로 먼저 인정받아야만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우리 목사님과 함께 가는 이 길이 맞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삶이 맞다’, ‘이 길이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광의 길, 면류관의 길이다’, ‘우리 교회가 살 길이고, 내 인생을 의미 있게 드릴 길이고, 영광스럽게 쓰임받을 길’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는 십자가요, 영광의 면류관이다
제자훈련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이 목회가 자신의 십자가요, 또한 자신의 영광이고 면류관인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제자로 서고,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스스로 져야 한다.
이는 목회자 스스로에게 큰 복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부담감이 자신의 마음과 삶을 지켜 주고, 목회를 든든히 세워 주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제자훈련의 수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을 동역자를 얻으면, 그들에게 목회와 사역을 이해시키고 헌신하게 하는 과정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훈련에 힘쓰는 많은 교회가 든든한 교회로 성장하며, 작은 예수의 제자들의 귀한 헌신 덕분에 건강한 부흥과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제자훈련 목회는 목회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 동역자들과 함께하는 목회다. 따라서 목회 사역 하나하나를 성도들과 함께 기대하고 꿈꾸며, 마음과 힘을 합해 이뤄 간다면 하나님께서 목회자 개인에게도 지혜를 주시지만, 그 공동체를 지혜롭게 하셔서 진정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지혜로 모든 사역을 아름답게 이뤄 가길 소망한다.
김철수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그리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Th. M.)을 졸업했다. 현재 천안장로교회 담임목사와 충청 CAL-NET 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