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옥한흠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3~30)
이 본문은 제 목회에 꼭 필요한 진리의 빛을 비추는 말씀이 되었고, 또 교회 갱신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천국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것과 같다는 비유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조금 바꾸면 하나님 나라의 사정은 마치 이러이러하다는 말과 같고, 좀 더 좁게 이야기한다면 지상 교회는 사정이 이렇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지상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마귀의 아들들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는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교회 안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심어 놓은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 때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곡식과 가라지가 끝까지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섬뜩한 말씀입니다.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반문할 만큼 심각한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의 핵심을 가만히 보면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몇 가지 사항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지상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
첫째, 지상 교회는 완전할 수 없음을 본문을 통해서 배웁니다. 본래 교회의 본질은 좋은 씨앗들이 모이는 공동체, 천국의 아들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공동체에 악한 자의 아들, 마귀의 자식들이 섞여 있는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상에서 목회를 하면서 완전무결한 교회를 비전으로 삼으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지상의 교회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도 없고 무결할 수도 없다는 것, 마귀의 활동이 어느 정도 허용된 것이 지상의 교회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몬타누스 운동, 재세례파 운동, 우리나라의 재건파 운동 등 완전무결을 추구한 개혁 운동, 갱신 운동은 거의 다 한시적으로 끝나고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완전무결한 교회를 지나치게 지향하면 결국 그 교회 안의 사랑은 식어 버리며, 서로 관용하지 못하고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살벌한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자리를 잡기 쉽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서 배웁니다. 세상에서 교회가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아는 자가 목회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목회에 성공을 해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완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이상 교회는 부패할 여지를 언제든지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항상 깨어 있게 만듭니다. 두려워 떨게 만듭니다.
또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교회의 지도자가 가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십이 악한 자의 아들들의 손에 있을 때, 그 교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교회가 부패집단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치명적인 치부는 교권주의입니다. 역사를 보면 교파가 많이 나뉘고 교단이 난립함으로 교회의 건강과 성장에 기여한 것보다도 교회를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는 역기능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20세기 초에는 통계적으로 보면 개신교 교단이 1,900개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1세기가 지난 21세기에는 22,000개로 늘어났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그만큼 갈기갈기 찢겼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고 어떤 역사학자는 ‘역사적인 돌발사건’이라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신학적인 재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교권주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직이나 단체마다 힘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장난질을 시작하면 교권이 형성되고, 교권이 주어지면 거기에는 반드시 교회의 부패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패를 부추기는 중심에는 가라지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어두운 밀약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이여, 하늘에서 당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공회 교인인가요?” 그러니까 하늘에서 “아니다” 합니다. “그러면 장로교 교인인가요?” “아니다.” “그러면 독립교파 교인이나 감리교입니까?”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여, 누구를 데리고 계신 겁니까?” “여기서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인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교파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행함과 진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지상 교회는 끊임없이 갱신해야 한다
둘째, 지상 교회는 끊임없이 갱신해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면서 제가 가장 하기 싫어했던 일은 뜨거운 햇살 아래 논에 들어가 벼에 딱 붙어서 기생하는 피를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뿌리가 얼마나 강한지 뽑아내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뽑지 못해서 남아 있는 피는 곡식이 필 때 벼로 피지 않고 가라지로 피게 됩니다. 그러면 우선 가라지만 쑥쑥 뽑아내는 겁니다.
이처럼 타락한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갱신을 계속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좋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걸러내고 고치고 바로잡는 이 갱신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갱신은 곡식이 자랄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마음 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좋은 토양을 만드는 작업, 이것이 갱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묵은 땅을 갈아엎는 영적 몸부림입니다. 지상 교회에는 이런 작업이 계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개혁을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금언을 빌린다면 교회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오스 기니스가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이 세 단어를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첫 번째 용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두 번째 용어로 옮겨가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단어로 발전하면서 어떤 증상이 일어나느냐면 둘 중의 하나로 발전한다는 겁니다.
우선 먼저는 인격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점점 변질되어 나중에는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인격이며 생명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던 것들이 다 연결이 안 되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기독교, 즉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종교로 발전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참신하고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제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타락해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참신합니다. 그리스도는 인격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에는 참신함이 많이 퇴색되지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통해서는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만나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다가 그것이 기독교로 바뀌면 제도적으로 굳어지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드러나고 영광을 받으시던 공동체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모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어떤 지도자가 우상이 되는 공동체로 변질되고, 그것이 큰 교회 집단으로 발전하면 큰 사이즈의 건물, 대단한 헌금, 요란한 이벤트성 사역이 되고, 결국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단체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점점 질적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거나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갱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향적인 변화는 죄가 현존하는 세상에서 시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지상 교회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좋은 것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개혁도 오래가면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아무리 영적인 운동이라 할지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형식주의가 되어버리고 일상화된 습관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는 자유롭고 신선한 반면에, 기독교는 형식적이고 더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떤 사람이 티셔츠에 이런 말을 새겨서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추종자들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소서.” 이 말은 예수님은 좋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못살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문제의식을 마음속에 가지고 목회하고 교회를 보아야 됩니다.
지상 교회는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
셋째, 가라지가 힘을 쓰지 못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자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분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제자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란 예수를 배우고 따르고 닮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가라지한테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님이 명령하신 것을 지킬 때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지킬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말씀이 인격화되고 체화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간다고 말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수준에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 공부와는 다르고, 예배자가 되는 것과도 다르며, 열심히 기도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물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지만, 그의 인격과 삶에 말씀이 녹아서 순종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만들라고 하는 거지요.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가라지를 알곡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곡식을 강건하게 세워서 가라지가 함부로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견제 작용을 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좋은 토양을 만드는 데는 제자훈련만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를 묶어놓는 방법이 뭐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것은 알곡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입니다. 알곡이 건강하게 자라면 가라지가 힘을 못 쓰게 됩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해서 가라지가 알곡처럼 행세하지 못하도록 필터링을 하는 장치가 여러분 교회 안에 있습니까? 가라지가 예배에 더 충실하게 출석합니다. 자기 마음에 음흉한 계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가장 충성되고, 목사에게 순종 잘하고, 또 모든 일에서 모범이 되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라지를 구별해서 견제하고,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필터링을 하는 장치가 뭐냐는 겁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그 필터링이 가능한 방법은 제자훈련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잘못 만나면 목회자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가라지가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는 제자훈련을 안 받으며, 아니 또 받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곡식은 안 됩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한 마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작은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기 예수가 걸어간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작은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그는 단언합니다.
또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두신 이유는 사람들을 인도해서 작은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만약 교회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 건물도, 교역자도, 설교와 선교도, 심지어 성경까지도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은 그리스도를 만드는 데 왜 훈련을 시켜야 합니까? 달라스 윌라드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 치고 훈련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적인 삶도 훈련 없이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훈련 없이는 삶의 만족감과 품위를 전혀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불상사는 그 불상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이 없다면 무엇으로도 만회할 길이 없다. 은혜와 함께 훈련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결실을 맺게 된다. 정작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모를 때가 너무 많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을 개발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설교로 제자를 만들지 못합니다. 감동은 줄 수 있지요. 사람들을 위로도 할 수 있어요. 진리를 깨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에 마음이 기뻐서 돌아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을 바꾸거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주님은 설교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훈련입니다.
한때 매스컴에서 주목을 받은 지광 스님은 저보다 한 12살쯤 아래인데, 제가 직접 교제한 일은 없어도 굉장히 가까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교회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그 사람의 능인선원이 개척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최근에 자신의 학위가 엉터리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 지광 스님은 오늘날 불교계에서 제일 큰 사찰을 갖고 있습니다. 신도가 20여만 명입니다. 그 사람이 어느 모임에서 그 비결을 얘기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능인선원 옆에 사랑의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활기가 넘치고, 주중에도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성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사방에 퍼지는데 무슨 비결이 있어서 저러는가 하고 관심을 갖고 들여다봤더니, 그 교회의 특징이 제자훈련이라는 것이었답니다. 성경을 열심히 가르쳐서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들이 활기가 넘치는 것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는 앞으로 불교가 살려면 불경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사랑의교회를 벤치마킹해서 불교대학을 오픈했습니다.
저도 한 번씩 보았는데 부인들이 보살들이 입는 바지를 입고, 바인더를 끼고 끊임없이 그 상가를 드나들었습니다. 별난 사찰도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불교대학이었어요. 나중에는 그 사찰이 크게 부흥했습니다. 날마다 손만 비비면 되는 줄 알던 이들에게 불경을 가르쳐 놓으니까 얼굴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성령님도 없고 하나님 말씀도 없는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자훈련 열심히 한 것이 불교를 부흥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저의 양심에 가책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이 목회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까? 주님 말씀대로 하세요. 만들고 훈련시켜야 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 교회는 반드시 승리한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놓고 매우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가라지가 보이자 하인들이 와서 뽑을지를 물으니까 주님이 “그만둬라, 그것 뽑다가 곡식까지 다친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 가야지 할 수 없지. 하나님의 나라가 가라지 얼마 때문에 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내버려 둬라” 하고는 태연히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주님은 낙관적으로 보십니다. 심판 때에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영원히 갈라서게 될 그날을 주님은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2절에 풀무불에 던져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교회의 영광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천국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광을 믿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가 좀 있다고 해서 주님은 그것 때문에 고민하시지도 않고, 낙망하시지도 않고, 비관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가라지의 존재를 보고,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낙관적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고 힘들고 마귀가 이리저리 공격을 해도 우리는 껄껄 웃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목회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진리입니다.
7년 동안 함께 사역하던 최홍준 목사님을 부산의 호산나교회로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를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형편은 정말로 최악이었습니다. 바닥을 몇 번 친 교회였습니다. 기성 교회로서 완전히 생명력이 떠난 교회였습니다. 목사가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교회였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가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한 명 한 명 제자훈련을 통해서 바로 키우고 열매를 맺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그 교회는 반드시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나중에 간이 부어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당회를 하다가 나와서 화장실에 가서 실컷 울고 나오기도 하고,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런데도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면서 제자훈련 수료식을 했습니다. 이건 무엇을 말합니까? “난 제자훈련에 생명을 건 목사다. 당신들도 그걸 알아라.” 그러니까 성도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지역은 변두리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인데 교회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지금처럼 6천여 명이 모이게 된 이유는 뭘까요? 제자훈련입니다. 교회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제자훈련을 합니다.
오정호 목사님이 대전에 갈 때 그 교회도 바닥을 친 교회였습니다. 해묵은 오랜 교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된 교회였죠. 어떻게 된 것인지 전임자가 나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장로님 한 분이 와서 목사를 자꾸 추천해 달라고 해서 미국에서 공부 중인 오정호 목사를 데려가라고 했지요. 오겠습니까? 안 오지요. 그래서 제가 장로님한테 미국에 가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당신을 지극히 모시겠다고 사정을 하면 올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미국에 가서 같이 왔어요.
정말 희망이 없어 보이는 교회인데 왜 가라고 했겠습니까? 거기서 나는 뭔가를 보았습니다. 제자훈련으로 철저하게 목회를 바로 하고자 하는 목사를 보내면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잘 자라도록 하면 그 교회는 회복이 됩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키우다 보니까 오늘의 새로남교회가 된 것입니다.
강남교회도 진짜 바닥을 친 교회였습니다. 저는 강남교회를 개척하신 훌륭하신 목사님은 알고 있어도 그분이 은퇴하고 나서 교회가 그렇게 엉망이 된 것은 몰랐습니다. 젊은이들은 다 빠져나가고 당회원 중에는 칼부림을 하는 장로도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누가 갑니까? 송태근 목사님이 저를 찾아왔기에 원칙만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주시는 목회의 원칙을 따르면 됩니다.
감사하게도 송태근 목사님이 그대로 했어요. 그러는 과정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1년 정도 지나서 저에게 두툼한 편지를 보냈어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가라지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 장로들이 가라지가 아니었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회복하니까 가라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강남교회가 있기까지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헌신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런 예를 들라면 20개, 30개도 들 수 있습니다.
시간은 아무에게나 똑같이 흐릅니다. 그저 설교만 하고 심방하며 쉽게 목회하는 사람도 10년이 금방 지나가고, 제자훈련 하느라고 입에 단내가 나고 몸에 병이 들 정도로 고생을 한 사람에게도 10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10년 후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미래를 바로 보고 싶습니까? 목회를 바로 하세요.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목회를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서 자기 교회의 목회가 앞으로 발전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갱신을 원합니까? 여러분의 교회부터 갱신하세요. 가라지가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세요.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주셔서 새롭게 각오하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붙들고 실천하면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한국 교회를 바로잡아 주시고 21세기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글은 2007년 8월 22일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영성수련회 폐회예배에서 옥한흠 목사의 <가라지가 섞인 교회> 주제 설교를 정리한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12년 동안 교갱협 대표를 맡았었지만, 교갱협 집회에서 공식적으로 제자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였고, 제자훈련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엄청난 대가 지불이 요구되기 때문에 CAL세미나에서만 강도 높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07년 교갱협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교갱협 마지막 설교시간에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