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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책을 읽다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을 “양서류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필립 얀시의 글도 그중 하나다. 양서류는 물에서도 살고 뭍에서도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런 양서류는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품격과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 양차원적 존재다. 양서류와 차이가 있다면 양서류는 물과 뭍에 사는 것이 본능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죄성을 가졌기에 거듭난 후에는 본능을 넘어 반드시 영적인 의지를 수반해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올곧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팎에서 위협하고 공격하는 죄의 본성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풍성함을 지니고 살 수 있을까?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사랑의교회 강단에서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강해를 통해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살아갈 동력, 즉 거룩한 의지(意志)를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확장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제자훈련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내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그 삶을 위해 거룩한 의지를 확장시키는 자각 시스템을 우리 몸에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죄의 유혹과 세상의 중력이 나를 건드릴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경보를 크게 울리지 못한다면, 또 울린다고 해도 그것을 따라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거룩한 의지가 없다면, 백만 파수꾼이 나를 지킨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몇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크게 넘어지고, 때론 신앙의 마지노선이 깨지는 것을 보면, 강단이나 다락방, 교회 공동체에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고, 그것이 우리 본능에까지 새겨지도록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절감한다. 이런 점에서 제자훈련의 목적은 내 속에 거룩한 의지를 굳히고 두텁게 해 그것을 삶의 영역에까지 튼실하게 확장하는 데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세상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거룩한 의지를 늘리는 것 외에는 첩경이 없다. 인간은 죄성을 타고났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적절한 영적 자극과 경보시스템을 구축하기만 하면,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거룩한 의지를 작동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제자훈련하는 교회가, 목회자가, 신앙 공동체가 신자에게 줄 수 있는 특권이자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