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1년 10월

청출어람이 청어람

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 _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최근에 방문한 몇몇 선교 현지에서 20여 년 동안 사역해온 베테랑 선교사들에게 현재 당면한 가장 시급한 이슈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에 공통점이 있었다. 오랫동안 사역을 해오면서 키워온 현지 사역자들에게 사역을 이양해야 하는데 위임할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선교사는 첫 번째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성급하게 사역을 위임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쯤이면 준비가 되었다 싶어서 현지 사역자에게 교회를 맡기고 자신은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이양이 쉽지 않았다. 결국에는 첫 번째 텀(term) 동안에 세워놓은 교회가 와해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주님의 위임명령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해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진정한 제자훈련의 열매는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근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세습이다.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세습을 감행하는 목회자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주변에 쓸만한 인물이 없다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참모는 많지만 교회를 이어받을 장군감을 준비해 놓지 못한 것이다. 사람을 세우는 데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다.
제자훈련의 핵심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진정한 제자훈련의 정신을 가진 지도자라면 자신보다 나은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다. 그저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는 참모를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서 더 훌륭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제자훈련가이다.
파이디온선교회에서 어린이 사역자를 키워내는 바나나농장에서는 좋은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을 쓸만한 도끼 한 자루 준비하는 것에 비유한다. 굵은 통나무를 찍어낼 수 있는 좋은 도끼는 날이 날카로워야 한다. 하지만 날카로운 날만으로 통나무를 찍어낼 수 없다. 도끼날이 나무를 파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무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시에 적당한 크기의 도끼여야 나무를 팰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도끼머리가 괜찮아도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으면 나무를 찍어낼 수 없다.
이런 도끼의 모습을 다음 세대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에 비유해보자. 날카로운 날은 사역의 기술과 역량이라고 하자. 도끼의 무게는 사역자의 인격과 영성으로 비유할 수 있다. 도끼의 크기는 사역의 비전과 필요한 사역의 정보라고 할 수 있고, 도끼의 손잡이는 인간관계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쓸만한 도끼라고 말할 수 없다.
답답한 것은 많은 한국 교회에서 쓸만한 도끼를 준비하는 것처럼 제대로 된 후계자를 준비하고 세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다음 세대에 있다. 나보다 더 훌륭한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 제자훈련의 정신이다.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고 하지 않는가? 푸른색 물감의 원료로 쪽이라는 풀을 사용하지만 풀 색깔보다 물감의 색깔이 더 푸르다는 의미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함을 뜻하는 이 말이야말로 오늘 지도자들이 마음에 새겨둬야 할 고사성어가 아닐까 싶다. 쓸 만한 도끼 한 자루 장만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세워가는 수직적 제자훈련.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수행되고 있는지 점검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