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연말이 되면 교회는 새로운 사역지를 찾는 교역자들의 사임과 새로 온 교역자의 부임으로 분주하다. 부교역자를 면접할 때 담임목사로서 찾는 사역의 자세가 있다.
첫째, 은혜에 선봉장인 태도가 있는가?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경우에도 은혜의 주류에 서는 자세를 말한다. 어떤 사역자는 은혜의 기류를 느끼고, 은혜받는 일에는 무의식적으로 자석처럼 끌리는 본성을 갖고 있다.
목회자의 급선무는 어떡하든지 성도를 은혜의 자리에 서게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지나고 나면 부수적일 뿐이다. 은혜받는 일에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은혜받는 자세, 은혜받는 섬김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의 일에는 과불급(過不及)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찾는 일에는 결코 과불급이 없다.
둘째, 사역에 부흥의 역사가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한 꿈과 열정, 사명으로 충만한가? 가슴에 부흥을 품고 사는 사역자는 언행에도 그 기운이 묻어나게 돼 있다. 또 무엇으로 이것을 알 수 있을까? 그와 함께 있을 때, 영적인 기세와 신령한 열정을 느끼게 된다.
사역자의 심중에서 뿜어 나오는 부흥의 향기는 연인의 사랑처럼 숨길 수가 없다. 더불어 사역자의 언행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셋째, 목양에 영적인 센스가 있는가? 이것은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역자에게 영적인 센스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성장하는 목회, 부흥하는 목회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영적인 센스는 젊은 시절에 체질화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목회적인 경험이 축적돼 사역에서 세련미를 보일지는 모르나 영적인 센스는 그렇게 함양되지 않는다. 영적인 센스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젊을 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의 자세들을 생명의 역사로 펄떡이게 하고, 부흥으로 이끄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사역자의 ‘사명생 사명사’(使命生 使命死)의 심정이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제물처럼 드리는 사명 의식 없이는 사역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에서의 기적은 복음의 생명과 깊이 연결돼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에서 확증되는 진리다. 자유주의 목회자들의 사역에 큰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역이 복음의 생명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떤 목회자의 사역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목회자에게서는 기적의 열매가 없는가? 왜 어떤 사역자에게는 사역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어떤 사역자는 메마른 사역을 하는가? 신임 교역자에게 “사역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사역의 보람이나 영혼 구원이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기름부으심이 있는 사역에는 세상적인 상식이나 계산으로는 답할 수 없는 기적이 있어야 한다.
연말에 교회만 새로운 사역자를 찾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사명생 사명사’의 사역자를 찾고 계신다. 세상의 헤아림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을 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2023년 연말과 2024년 새해에 한국 교회와 사역자들의 삶이 다시금 ‘사명생 사명사’의 심장으로 뛰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교회 안팎의 냉소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조차 용광로처럼 태우고, 강력한 은혜의 주류로 휘몰아치는 ‘사명생 사명사’의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