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21년 10월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는 자 vs.말씀을 일상에 뿌린 자

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지금 우리는 기축이 흔들리는 위기 이후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는 ‘뉴 노멀’(New Noraml)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전에 기준으로 여겼던 것들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일례로 요즘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세계에 내 ‘아바타’가 활동함으로 오감으로 소통하는 세계다. 이전 세대들은 상상도 못 한 새로운 만남의 장과 삶을 구현하는 생태계다. 그래서 혹자는 머지않아 지금의 온라인 교회, 온라인 선교를 넘어 가상의 세계에서도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적 진리마저 용광로처럼 녹여 버리며 선택적 자유와 닫힌 진리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가득할 때 이를 생명의 빛으로 바꾼 것은 ‘말씀’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에 드리워진 영적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회복을 넘어 부흥이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뉴 노멀이다. 세상에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 기준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뉴 노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뉴 노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뉴 노멀이다. 지난 목회 40여 년을 돌아보면, 말씀을 가진 자를 넘어 말씀을 일상의 땅에 뿌린 자가 가정과 이웃을 진정으로 변화시켰다. 말씀을 가진 것과 말씀을 삶에 심는다는 것은 다르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슴에 새기게 한 사건이 있다.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후, 진리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는 광산 김씨의 종갓집 장손이었다. 제사를 책임져야 할 장손이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이 집안 전체를 뒤흔들었고, 유교를 종교처럼 여기며 제사 지내는 것을 가문의 명줄로 여겼던 어른들은 난리가 났다. 어느 날 소년을 붙잡아 윗옷을 벗겼다. 그리고 벌겋게 단 인두를 옆에 놓고서 “네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놓아 주겠지만, 그래도 예수를 믿는다면 인두로 지지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소년의 팔뚝은 인두로 지져졌고, 소년은 집에서 나와 선교사 집에서 자라게 됐다. 

나중에 전도사가 된 소년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집안 어른들은 교회를 개척하는 곳마다 찾아와서 집의 세간살이를 부쉈다. 그러나 소년은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그렇게 핍박하고 횡포를 부린 아버지가 아들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소년은 가슴에 담긴 말씀을 삶에 뿌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이 그의 인생은 물론이요, 가정과 이웃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뉴 노멀이 됐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영원한 뉴 노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작은 겨자씨 같고, 보이지 않는 누룩 같은 말씀은 이미 우리 가슴속에 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삶에 뿌려지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용기를 갖고 말씀을 일상의 땅에 뿌리고 심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