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7년 10월

교회가 살고, 교인이 사는 길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돌아보면 햇수로 5년이 지났다. 강남에서 서초 지역으로 예배당을 옮길 즈음에 일어난 일련의 파열음들은 목회 사역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을 움켜쥐고 내 속에서 태산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복음 전도로 귀결돼야 한다.”
용광로 속에서 순도 높게 정련되는 철처럼, 일련의 혹독한 과정은 교회의 체질을 바꾸는 연단과 하나님만 더욱 의지하는 겸손을 허락했다. 왜일까?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걸음을 방해하고 어렵게 한 세속적인 콜타르를 제거하고, 새로운 몸으로 비상하도록 하기 위해서일까? 물론 이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련의 결과라면 하나님의 의도를 너무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어느 때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주의 몸 된 교회가 살고, 교인들이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실까? 교회의 시련을 통해 붙잡은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 14절이다.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교회가 사는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다.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무신론적 프레임의 온갖 방식을 작동시켜 복음의 활동력을 옭아매는 데 혈안이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특별하거나 심지어 이상한 일이 돼 버리고, 신자들이 복음을 들고 나서는 것을 낯선 것으로 여기게 됐다. 세속의 무신론적 프레임은 시간이 갈수록 기승을 부릴 것이다. 세상은 때로는 교활하게, 때로는 천박하게, 때로는 너무도 거칠게, 무신론적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뉴스나 신문, 인터넷이나 드라마조차 편하게 볼 수 없도록 우리 교회와 교인들, 자녀들을 겁박할 것이다.
여기저기 올무처럼 놓여 있는 세상의 덫에 갇히지 않는 길은 그것을 마냥 피하거나 조심하는 데 있지 않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프레임의 덫을 피하기보다는 그 덫을 해체시키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주일예배에서만 잠시 교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잠시 보듬어 주고는, 다시 혹독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한 주간을 세상의 조롱과 비판을 견뎌 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복음에 집중하고, 복음으로 교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며, 불신자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교인들이 세상의 무신론적 덫에 갇히지 않고 살아남는 유일한 생존법이다. 이것이 지난 4~5년간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시련을 감내하는 동안 처절하게 배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