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5년 03월

성령 충만한 제자훈련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2월 초에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 지역 교회들의 모임인 CAL-NET의 주도 아래 사랑의교회에서 CAL-NET 전국 평신도지도자 컨벤션을 개최했다. 교단을 초월해 제주도에서부터 전국 각처에서 5천 명 이상의 순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자훈련을 통한 복음의 혈연을 거듭 확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0여 년 전에 시작된 제자훈련이 이처럼 각 지역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얼굴을 마주했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지역적, 환경적 차이를 뒤로하고 오직 예수님 때문에 전국의 순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말씀을 듣고 나누는 것을 보면서 한국 교회 초기의 전통이 다시금 떠올랐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증언처럼 사경회가 열리면 전국 각처에서 며칠씩 걸어와서 모였고, 열흘 이상씩 성경을 가르치고 배웠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배운 것을 토대로 소규모 사경회를 열었다. 북부의 어느 선교지에서는 1년 동안 소규모 말씀 사경회를 192회나 실시해 연인원 1만 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만큼 믿음의 선배들은 배운 말씀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나누는 일에 열심이었다. 
제자훈련 속에는 이미 한국 교회 초기 때부터 심겨진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DNA가 내재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 충만한 제자훈련의 본질이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시작된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이 행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사역이었고, 교인들은 이를 배우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했다(행 2:42). 사도들은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포했고(케루소), 이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말씀을 교훈했다(디다케). 누가가 초대 교회에 성령 충만을 언급하면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자세히 기록한 것은 성령 충만의 본질이며, 제자도의 핵심임을 일깨워 주고자 의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한 제자훈련을 위해서는 효율성을 중시하고, 조속한 과실을 중시하는 현대의 미덕을 돌파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 교회 초대 교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생업을 내려놓고, 걸어가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열흘 이상씩 시간을 쏟은 것을 낭비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니 그것은 거룩한 낭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해 한국 교회에 부흥의 씨앗이 뿌려졌으니 말이다. 교회 내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은 언제나 격려되고 지속돼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내의 모임이 사교적인 성격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제자훈련은 세속적 교제를 차단하고, 영적 교제(코이노니아)의 산실로 만들어야 한다. 또 이것이 섬김(디아코니아)으로 열매 맺도록 감독하며,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성령 충만한 제자훈련의 뼈대는 선포하고(케루소), 가르치고 배우며(디다케), 코이노니아에서 디아코니아의 섬김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제자훈련과 순장 사역에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 길을 가는 순례자에게 주시는 “축적의 은혜”가 있다. 매일 큐티하고, 매 주일 말씀을 듣고, 다락방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이 미약해 보이지만, 작은 물방울들이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내듯이 꾸준한 말씀 공부와 나눔은 우리 영혼의 폐부를 찔러 영적인 건강을 세운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제자훈련의 진면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