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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터키 여행 중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그것은 웅장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탄성을 지르는 아야 소피아성당도,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소금산 같았던 파묵칼레도, 신비한 기암괴석들로 둘러싸인 카파도키아도 아니다. 이스탄불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창밖으로 쳐다본 그 장면은 기억의 창고에서 자주 소환된다.
그것은 한 중년의 터키인 아버지가 어린아이 네 명과 함께 급하게 블루모스크로 예배드리러 뛰어가는 모습이었다. 이슬람교 신자로서 예배에 늦지 않기 위해 가장 어린 자녀들은 양손으로 잡고, 큰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의 옆을 부지런히 뒤따라 뛰었다. 옆에 있던 한 지인은 이미 유럽은 이슬람교에 넘어갔다며, 유치원 원복을 입은 예쁜 아이들을 가리켜 “저 아이들이 크면 기독교의 대적 세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이 기독교의 대적 세력이라니...’
한 이슬람교 가정의 예배드리러 뛰어가는 모습이 주일날 예배드리러 교회로 향하는 우리의 느슨한 모습과 오버랩 됐다. 요즘 어느 교회나 현관문 앞에 “예배 시작 10분 전에 오십시오”라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 주일날 예배 시작 찬양이 끝난 후 대표 기도자의 기도가 중간쯤 흘렀을 때 몸을 숙이며 들어오는 사람들과 축도가 채 끝나기 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이제 “예배가 모두 끝난 다음에 나가십시오”라는 홍보문구까지 붙여야 할 상황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두 모습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의 신에게 예배를 하기 위해 터키인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뛰게 만든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정체성’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b)라고 했고,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요 1:23)라며,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 다니는 성전, 즉 교회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해야 한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은 자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디사이플> 12월호에서는 ‘교회와 성도의 변화, 어떻게 이끌 것인가?’라는 기획주제를 통해 생명의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우리가 교회입니다’를 소개한다. 실제 지난해 봄 사랑의교회에서 전개한 40일 캠페인은 변화가 필요한 사랑의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도전과 열매를 가져다줬다. 예배자, 훈련자, 전도자, 치료자, 화해자, 소명자라는 정체성을 심어 줬고, 예배와 사역, 소그룹에도 열심을 내게 했다. 이에 이번 기획을 통해 같은 고민을 하는 교회에도 “우리는 교회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