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78세)는 한 TV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젊을 때는 예쁜 꽃을 보면 꺾어 오지만 나이가 들면 꽃을 그 자리에 둔다. 그리고 보고 싶을 때 다시 가서 본다.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또 인생의 선배로서 모든 애환을 겪고 난 후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그는 무명 배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가 현재 활짝 만개한 화양연화(花洋年華)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아름다운 꽃을 꺾어 내 것으로 만들기보다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고 싶을 때만 와서 보면 된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줘 많은 이에게 감동의 여운을 전해줬다.
과학, 요리, 스포츠, 영화, IT 분야 등에는 모두 롤 모델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 적을 두면 누군가를 롤 모델로 정하고, 그를 본받고자 한다. 그런데 아마 가장 따라 하기 힘든 롤 모델을 제시한 분야가 제자훈련이 아닌가 싶다.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는 매년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자”, “예수님처럼 되자”, “작은 예수가 되자”, “예수님을 닮아 가자” 등 감히 발끝이라도 따라가기 힘든 롤 모델인 예수님을 목표로 설정하고, 닮아 가는 수준을 넘어 “예수님처럼 되자”라며 수많은 평신도를 인도해야 한다.
2005년 <디사이플> 4월호 칼럼에서 고(故) 옥한흠 목사는 어느 날부터 자신도 모르게 제자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졌다고 말한다. “예수님처럼 되자”라는 말을 되뇌이는 자신이 너무 위선자처럼 보여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제자훈련에 모든 것을 걸고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훈련을 하지 못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이런 반갑지 않은 내적 갈등과 고민에 대해 옥 목사는 스스로 ‘제자훈련 우울증’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이고, 양심을 가진 제자훈련 목회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라고 평가했다. 제자훈련의 첫 번째 훈련 대상은 바로 인도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옥 목사는 ‘제자훈련 우울증’에서 벗어났는데, 그 이유는 인격이 완전한 자리에 올라서라기보다는 “예수님처럼 되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만의 감격과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다. 이런 감격과 행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면 좋겠다. 욕심내 꽃을 꺾지 않아도, 내 소유물로 만들지 않아도, 보고 싶을 때 그 자리로 걸어가서 꽃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게 된다면, 왠지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미소 지으실 것 같다.
이에 <디사이플> 2월호에서는 ‘제자훈련 목회자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라는 다소 어려운 기획 주제를 통해 ‘예수님처럼 되자’, ‘작은 예수가 되자’라는 말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제자훈련 목회자에게 숙명처럼 다가오는 좌절감과 내적 갈등을 담아 보았다. 제자훈련 목회를 사명감으로 붙들 때, 연약함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던 목회자, 또 겉으로는 한 영혼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대형 교회를 꿈꾸는 위장된 욕망에서 다시 본질을 붙잡았던 제자훈련 목회자, “self-제자훈련”을 통해서라도 참된 제자로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목회자, 가장 많이 부딪히는 부교역자를 생활숙제의 대상으로 삼고, 관계의 훈련을 스스로 다짐하는 목회자의 영적 몸부림까지 살펴보며, 참된 목회자상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