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야기 우은진 편집장
혼다 목사는 1965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도시바 사(社)를 다니다가 도쿄신학교에 진학해 1970년 졸업했다. 1970년부터 20년간 이 마이즈미기독복음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겼으며, 1990년부터 지금까지 삿포로 미나미복음교회에서 담임목사로 22년째 섬기고 있다. 1993년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수료한 뒤, 일본 삿포로 지역에서 제자훈련을 목회의 중심으로 붙잡고 사역하고 있다.
제자훈련의 불씨를 간직한 일본 노 목회자
도몬 후유지의 『불씨』라는 실화소설을 보면, 에도 막부의 요네자와 번(藩)은 파탄 직전이었을 때, 19살의 우에쓰기 요잔이라는 젊은 번주(藩主)와 그의 개혁에 동조하는 소수 젊은 지도자들이 이에 대한 개혁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불씨를 서로 나눠가진다. 심지어 그 불씨를 마을의 여러 주민들과 하나둘 나눠가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게 소중히 간직하고, 개혁이 성공할 때까지 지켜낸다. 그리고 마침내 에도 막부 요네자와 번은 재정적 궁핍을 탈피하고 부요한 번으로 거듭난다. 또 신분차별이 없는 좋은 인재들을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배출해 내고 세대를 계승하며 부요한 번으로 거듭난다.
요즘 일본 교회의 상황은 파탄 직전의 에도 막부와 비슷하다. 지난해 큰 지진으로 일본인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복음으로 위로하고 치유해야 마땅하지만, 일본 교회 역시 제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지난 20년간 일본 교회에 쏟아 부은 사랑의교회의 제자훈련 사역도 중간창구 역할을 했던 소목자훈련원 변재창 선교사의 스캔들로 인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이 사건은 일본 내 일반 언론에까지 오르내렸고, 이 때문에 제자훈련을 하던 많은 일본 목회자들이 훈련을 중단했으며, 일본 성도들 역시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즉 일본 교회 내에서 제자훈련 하면 바로 변 선교사의 스캔들이 연상되어 부정적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지진 이후 쓰나미처럼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자훈련의 불씨를 붙잡고, 그 불길을 계속 달구고 있는 일본 교회의 노 목회자가 있다. 바로 일본 북쪽에 위치한 삿포로 미나미복음교회가 그 불씨의 진원지이다. 미나미복음교회에서 제자훈련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정성과 열정을 다하고 있는 이는 바로 혼다 야수지 목사이다.
요네자와 번의 번주 요잔이 19살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면, 삿포로 미나미 지역에서 제자훈련의 불씨를 타오르게 하고 있는 혼다 목사는 60대 중반의 노 목회자이다. 말 그대로 노후를 대비하며 편안하게 목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을 목회 사역에 접목해 일주일 내내 쉴 틈 없이 일본 성도들을 말씀으로 깨우는 제자훈련 사역에 자신의 목회 생명을 걸고 있다. 어떻게 일본 교회 노 목회자가 제자훈련의 불씨를 품고, 지역 교회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동안 일본 교회 내에서 한국인 목회자가 제자훈련에 성공한 예는 찾을 수 있었어도, 일본 현지인 목회자가 제자훈련 사역을 성공한 예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혼다 목사는 일본인이 일본 교회에 제자훈련 사역을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 예다. 나이 많은 교인들이 대다수인 작은 교회, 미나미복음교회. 이 교회를 직접 찾아가 그 비결을 들으면서 다른 일본 교회에서도 제자훈련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교인들을 배려하는 좋은 교회로 입소문
미나미복음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일본 북쪽 홋카이도 근처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미나미복음교회의 첫 인상은 정말 너무 예쁜 교회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건축에 특별한 신경을 쓴 듯했다. 눈이 쌓이지 않도록 세모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고, 입구에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앴다. 2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한 것,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록 한 것 등에서 몸이 불편한 소수의 교인들까지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옷걸이와 모자를 두는 선반이 있는데, 이 역시 교인들을 배려하는 일본스러운 풍모가 엿보인다. 본당은 들어서자마자 ‘가와이’라는 말이 터질 정도로 심플하면서도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의자도 언제든지 이동이 가능해 본당 공간 활용도가 높다. 무엇보다 본당 나무바닥을 열면 침례를 할 수 있도록 욕조와 계절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냉온 수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혼다 목사가 얼마나 꼼꼼하게 목회를 하고 있는지 짐작되었다.
사실 이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치가 좋은 강원도와 비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도쿄 등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50, 6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나미복음교회 역시 교인 대부분이 40~70대층이다. 이런 장년층 40여 명의 교인이 모이는 미나미복음교회가 이처럼 좋은 시설을 갖춘 건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나 교인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1기 제자훈련 이후 성도들 20명이 떠나가고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혼다 목사는 기도 중에 주님께서 ‘내 영으로 할 테니 교회를 증축하라’(슥 4:6)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는 그저 조금만 교회를 증축할 예정이었으나 주님은 그에게 많은 방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 결과 지금은 방이 모자랄 정도로 교인 수가 회복되었고 소그룹 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이 교회에는 바르나바, 만나, 가라시다네, 엔젤, 장년모임 등 5개의 소그룹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도에 은사가 있는 소그룹은 전도할 사람을 데려와 다양한 취미와 문화활동을 병행한다. 때로는 음식을 만들면서 잠깐 성경을 보기도 한다. 한글을 가르치는 소그룹도 있다. 일단 교회 자체가 예쁘기 때문에 신자가 아닌 사람도 거부감 없이 드나들고, 또 지역문화활동을 하는 소그룹으로 모이다 보니 지속적인 만남이 이어진다. 이 소그룹의 리더들은 모두 제자훈련을 이수한 자들로서 이 소그룹은 말씀 셀 소그룹과 별개로 또 다른 사역의 장인 셈이다.
더구나 말씀으로 성도들을 제자훈련 하며 그 어떤 일본 목회자들보다 일주일 내내 바쁜 목회 일정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성도들 역시 평일에도 교회를 왕래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제자훈련으로 변화를 경험한 미나미복음교회 성도들의 삶은 인근 지역 교회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이념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교회’이다.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으로 변화된 성도들을 통해 미나미 지역에 복음의 기쁨을 전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일본의 한 지역 교회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제자훈련에 반대하던 교인들과의 갈등에 대해 오직 제자훈련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사역이야말로 목회의 본질이다’라고 굳게 붙잡고 불씨를 태운 혼다 목사의 의지, 그리고 말씀으로 인격과 가정의 변화를 체험한 미나미복음교회 성도들의 은혜가 함께하고 있었다.
교회 핵심 멤버들이 떠난 1기 제자훈련
사랑의교회는 1989년 일본 목회자를 위한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열었다. 당시 일본 내의 소목자훈련원을 통해 제자훈련 사역이 보급됐었고, 많은 일본 목회자들이 제자훈련 사역에 도전을 받았다. 이는 소목자훈련원이 일본 교회에 끼친 빛의 역할이었다. 옥한흠 목사는 소수의 교인들과 복음을 붙잡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일본 목회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혼다 목사 역시 제자훈련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1993년 직접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몇몇 뜻을 같이하는 일본 목회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의 광인론에 매료되어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자신의 목회 인생의 큰 화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미나미복음교회에서 제자훈련이 정착되는 데는 한 차례 홍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1기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교회 핵심 멤버들이 제자훈련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미나미교회에 혼다 목사가 부임했을 때, 이 교회는 율법적이고 인간적인 교인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하자 더 극심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때 교회의 기존 핵심 멤버 20여 명이 제자훈련에 반대하며 교회를 떠났다. 안 그래도 교인이 적은 일본 교회 현실에서 교회 존립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었다. 일본 교인 20여 명은 한국 교회로 치면 100여 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혼다 목사의 제자훈련 사역에 반기를 들었고, 제자훈련에 참여하는 성도들과 부딪혔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1기 중 혼다 목사의 사모와 가와무라 상 2명만이 수료를 할 수 있었다.
제자훈련에 반대하던 교인들이 떠나고 남은 교인들은 아직 제자훈련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들이어서, 1기에 이어 제자훈련 2기, 3기를 계속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혼다 목사는 “비록 제자훈련 접목 초창기에 많은 교인들이 떠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을 반추해 보니 제자훈련 사역이 교회에 정착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 오히려 꼭 통과했어야만 했던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회고한다.
제자훈련에 대한 거부감과 가능성
그렇다면 미나미교회에서 제자훈련에 반대한 교인들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제자훈련’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거부감이 일본인들에게는 크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의 GT(Growth Together)나, 담임목사나 특정 개인의 제자를 만드는 훈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주의 제자훈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모 교회의 이단 문제와 소목자훈련원 변 선교사의 스캔들로 인해 제자훈련이 어떤 특정한 리더의 제자로 만든다는 컬트(cult) 제자훈련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한다. 이는 소목자훈련원이 일본 교회에 끼친 그림자의 역할이다.
또 하나는 마음을 오픈해야 하는 제자훈련의 특성이 자신의 속마음을 남 앞에서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에게는 낯설고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하겠다고 시작한 교회들도 여기서 일단 막혀버려, 훈련은 하지만 전혀 변화가 없는 훈련생만 양산해 버려 끝내 제자훈련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출신 목회자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면서 사랑으로 섬겨주고 경청해주었을 때, 제자훈련을 통해 한국 교회와 같은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자훈련의 본질은 문화를 넘어 보편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국민성은 다르다 하더라도 성경의 본질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본인 목회자가 사역하는 일본 교회에서도 서서히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나미복음교회가 그런 예 중 하나다. 여기서 일본 교회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일본 교회도 제자훈련을 하면 성도들의 삶과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고, 느리지만 건강하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혼다 목사 역시 1기 제자훈련 이후 제자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자훈련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교인들이 상처를 받고 민감해한다는 사실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님께 계속 물으며 기도했다. 그러나 기도할수록 제자훈련에 대한 확신이 커져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제자훈련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준비했다. 그러나 한 번 중단되었던 훈련이기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2기는 1기 때처럼 강하게 훈련하기보다는 조금씩 쉽게 훈련하면서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세워가도록 하였고, 점차 혼다 목사의 목회철학에 동조하는 교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혼다 목사는 지금도 자신의 목회철학에 교인들이 100% 동의해서 제자훈련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훈련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한다. 혼다 목사의 부임 전에는 교인들끼리 싸움이 잦았던 미나미복음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성경 말씀이 들어가니 한 사람 한 사람씩 변화되고, 그 현장을 서로가 목격하면서 제자훈련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교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성경공부가 아닌 인격과 삶의 변화로
교인들에게 제자훈련 이후 어떻게 교회가 변화되었느냐고 물으면 “우리 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로 변했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이 교회는 말씀훈련이 많다. 새신자교육과 제자훈련 입문코스, 그리고 제자훈련과 리더훈련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원의 확신, 기초 큐티 생활의 실천, 기본적인 기독교 생활과 교리를 배우게 된다.
미나미복음교회 소그룹은 아직까지는 새신자와 말씀에 기초가 없는 성도들을 양육하거나 전도할 상황이 못 된다. 그래서 셀 소그룹 안에서는 찬양을 부른 후 설교나 큐티를 가볍게 나누며 소그룹 모임을 진행한다. 요즘은 요한복음을 귀납적 성경공부로 인도하는데, 혼다 목사가 리더 모임에서 먼저 가르친 후, 리더들이 다시 셀 소그룹에서 성도들을 가르친다. 사랑의교회의 순장 시스템과 비슷한 것이다.
혼다 목사는 이런 리더모임과 셀 소그룹의 나눔을 통해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셀 리더들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래도 말씀을 자주 접하고, 그 배운 말씀을 다시 성도들에게 가르치며 섬기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성숙이 눈에 띄게 나타났던 것이다.
제자훈련 1기를 실패한 후, 2기는 1년 과정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그만큼 제자훈련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긴 훈련 기간 동안 교인들 간의 ‘끼리끼리’ 문화가 없어지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제자훈련 2기의 큰 성과라고 혼다 목사는 말한다.
2기를 마치고 3기까지 끝낸 지금, 미나미복음교회에서는 초창기에 제자훈련을 성경공부로 여겼던 성도들이 ‘성도들의 삶과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진짜 제자훈련이다’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혼다 목사 역시 “제자훈련 초기에는 나 자신이 성숙되지 못해 성경공부에 그쳤다. 그러나 삿포로 제자훈련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제자훈련이 삶과 인격의 변화를 중심에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의 제자로 세워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은 에베소서 4장 11~13절의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말씀처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데 역점을 두고 훈련 중이다.
즉,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보다 제자훈련을 통해 삶과 인격의 변화를 둔 제자들을 배출하고, 그들이 리더가 되어 소그룹을 맡도록 한다. 평신도 지도자들로 세운 것이다. 지금은 두 명의 성도들과 함께 리더훈련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 사람 철학, 일본 교회에 가장 적합한 사역
처음 혼다 목사가 제자훈련을 시도할 무렵에는 율법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성도들이 교회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1기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숙되어 부각되자 율법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던 사람들이 ‘제자훈련은 목사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같은 경계심은 2기 제자훈련을 할 때까지도 기존 성도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 이때 혼다 목사는 강하게 성도들을 이끌려 하기보다 제자훈련을 쉽게 지도했다. 그러자 1, 2기 모두 영적으로 성숙되어 교회 안의 여러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결국 제자훈련을 반대하던 그룹은 모두 교회를 떠났다.
그 이후 3년 정도 셀 소그룹에 집중하면서 교회 리더들이 많은 치유의 기회를 만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말씀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할 기회만을 노렸다. 말씀으로 훈련된 사람만이 소그룹 리더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2, 3기 제자훈련은 5년 이상 길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점차 교회 운영위원회도 제자훈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에서 벗어나 가장 좋은 협력자가 되었다.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 도중 목사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인정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인도자는 모든 면에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변화시키시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먼저 변화되어야지, 독재자처럼 권위를 부리면 안 된다”며 목회자가 변할 때 평신도들도 따라오게 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제자훈련은 한 사람 철학이다. 일본 교회처럼 성도 수가 많지 않는 상황에서 제자훈련의 한 사람 철학이야말로 일본 교회에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하며, “10여 명도 안 되는 교인들로 교회를 지키고 있는 일본 교회의 상황은 그 자체로 순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수를 대상으로 제자훈련 하면 죽었던 교회가 살아나게 될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미나미복음교회는 정말 제자훈련을 통해 소수를 정예화했다. 그리고 그 소수가 변하자 교회 전체 성도들을 제자화하는 비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혼다 목사는 한 사람과의 교제 역시 소중히 여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주면서 목회자 역시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즉 제자훈련 사역은 목회자만 행복해지는 사역도 아니고 평신도만 행복해지는 사역도 아닌,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배우고 회개하며 성장해가는 동반의 시너지 효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혼다 목사는 “나 역시 제자훈련을 인도하며 많이 변했다. 내 주변의 목사들도 혼다 목사가 제자훈련을 하면서 정말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 동료들에게 변하고 싶으면 제자훈련을 하라고 말할 정도다”라고 웃음 짓는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가르치면서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씀을 인도자 자신에게 적용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제자훈련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때부터 내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게 되었고,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큰 변화를 체험했다. 그러면서 교단과 교파를 뛰어넘게 되었고, 마음에 포용력과 편안함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삶의 변화를 간증하는 미나미복음교회 성도들
이런 과정 속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직접 그들을 만나 제자훈련이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력과 변화에 대해 들어보았다.
미나미복음교회 성도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미모의 사사끼 미요 상이다. 그녀는 “혼다 목사님이 제자훈련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두 반 중 한 반에 들어갔다. 훈련받기 전에는 감정의 기복도 심했고 실망의 파도도 컸다. 그러나 지금은 말씀을 보면서 영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라고 고백한다.
현재 그녀는 셀 소그룹에서 말씀 사역과 교회의 모든 봉사에 소리 없이 섬기고 있다. 이 교회 성도들은 그녀가 자신의 고민을 끝까지 잘 들어주고, 무엇을 이야기하든지 경청하며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조언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중보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가’라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목자’인 그녀는 이 교회 제자훈련의 성공적인 열매 중 한 사람이다.
제자훈련을 수료한 카와무라 성도 역시 이 교회의 자랑스러운 평신도 리더다. 그는 “훈련받기 전에는 교회가 여러 가지 인간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율법적인 것에 매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훈련 이후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매일 살게 된 것이다.
이치가와 성도는 제자훈련과 사역훈련까지 수료하고, 지금은 소그룹 리더로 섬기고 있다. 그녀는 2기로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목사님이 강하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3기로 제자훈련을 또 받고 있다. 훈련받으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그녀는 단기선교로 이곳에 왔던 사랑의교회 대학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한 대학부 학생이 미나미복음교회의 제자훈련을 보면서 오히려 “나도 사랑의교회에 가면 제자훈련을 받아야겠다”고 고백해 웃은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7년 전 이 교회에 왔던 사이또 성도는 3년 전부터 제자훈련을 리더코스로 연결해 같이 받고 있는데, 자신감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한다. 큐티를 통해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게 되었으며, 신앙의 시야가 넓어져 교회와 세계 전체를 보며 중보기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야시 성도는 전에는 세례를 받고도 죄와 구원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훈련 이후 죄와 용서함에 대해 깨닫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녀들에게 화를 잘 냈었는데 훈련 이후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아들과 남편도 전도하여 남편은 제자훈련까지 받았고, 지금은 함께 찬양대 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제자훈련이 개인의 영성과 동시에 가정의 화목까지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카와무라 성도는 제일 처음 사모와 같이 제자훈련을 받았고, 지금은 소그룹 리더로 섬기고 있다. 1기 때까지만 해도 교회 전체적으로 친한 사람과만 친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2기생부터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교회의 상황을 전했다.
나오꼬 성도는 훈련받고 나서의 가장 큰 변화는 성경을 스스로 읽게 됐다는 점이며, 아들과 언니, 언니 딸도 모두 전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었는데, 훈련 이후 많이 밝아졌다고 한다.
제자훈련 동역자들과 교제하라
교인 20여 명이 대거 떠나는 큰 아픔을 겪으면서도 혼다 목사가 제자훈련의 불씨를 계속 붙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자훈련 동역자들과의 교제, 제자훈련에 대한 성경적 확신, 사랑의교회의 지속적인 지원,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을 시작한 후 어려움에 직면했다. 교회 안으로는 제자훈련을 반대하던 교인들이 떠났고, 교회 밖으로는 소목자훈련원의 사건이 터져 제자훈련을 이단시하는 분위기가 일본 교회 내에 퍼졌던 것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붙잡아주었던 것은 삿포로 지구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들 간의 교제였다고 그는 강조한다.
삿포로 지역에서 함께 교제하던 제자훈련 목회자들은 국제복음그리스도교회 이수구 목사, 레인보우교회 시타미찌 목사, 헤이와노복음교회 소마 목사 등으로, 이들은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 참석 이후 지난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부모임을 가지면서 서로의 제자훈련 사역을 격려해왔다. 지금은 세월의 흐름과 같이 모두 60대 중후반, 70대 초반의 노인이 되어 있다.
처음에는 소목자훈련원에서의 세미나를 계기로 10여 명의 일본 목회자들이 모여 신학과 제자훈련을 공부했지만, 몇 년 후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가 삿포로 지역 4명의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1년에 4번 모임을 갖고 교제하며, 친형제와 같은 동지애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공동으로 주관하여 한국 교회의 여러 목회 프로그램을 개최하기도 했지만, 제자훈련 사역이야말로 일본 교회에 가장 필요한 사역이라는 데 공감하고, 각자가 경험한 제자훈련 사역의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특히 미나미복음교회의 교인 20여 명이 제자훈련에 반대하고 떠났을 때도 그들은 혼다 목사를 위로하고, 다시 제자훈련 사역을 붙잡을 수 있도록 여러 모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제자훈련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과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나누며 힘을 회복했다.
혼다 목사는 그때 제자훈련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쉽게 제자훈련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일본 교회에서 제자훈련 사역을 끝까지 지속하는 목회자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삿포로 제자훈련 목회자 모임은 혼다 목사가 제자훈련의 불씨를 계속 피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 가면 멀리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방 지치게 되고, 여럿이 함께 가면 조금은 더딜지라도 오래 갈 수 있다.
제자훈련에 대한 성경적 확신을 가져라
혼다 목사는 자신이 제자훈련을 계속 끝까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성경 말씀에 기초했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제자훈련이 좋다고 말해도 제자훈련 사역을 할 당사자가 성경적 확신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 손해를 보더라도 그에 대한 공부와 노력 그리고 열정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에베소서 4장 11절의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와 빌립보서 3장 12절의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는 말씀을 언급하면서, 성도를 세우는 제자훈련이야말로 목회자가 생명을 걸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때론 제자훈련에 대한 교인들의 반대도 있었고 떠난 교인들도 있었지만, 그 과정 중에 미나미복음교회 체질 개선이 이뤄진 것은 오직 성경 말씀과, 성령님이 교인들의 마음을 바꾸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말씀이 미나미복음교회 성도들을 바꾸어 놓았다.
혼다 목사는 “일본의 다른 교회들 중에는 목회자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목회 현장을 떠나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며 “나 역시 과거에는 별 소망 없이 무능력하게 고통을 당했지만, 지금은 고통이 다가와도 소망이 있고, 목회본질을 확실히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몸부림과 노력이 금방 결실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소망 중에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한다.
사랑의교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혼다 목사와 미나미복음교회에 사랑의교회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꽃처럼,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이 있으면 황무지에서도 꽃이 피게 마련인 것이다. 더구나 생명력이 충만한 주님의 교회와 창조주의 손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이다. 그 관심과 사랑, 그리고 지원이 오늘날 미나미복음교회를 만든 것이다.
미나미복음교회 교인들은 2006년 사랑의교회를 방문해 순장반을 방문하기도 하고, 사랑의교회 다락방도 참관하면서 평신도들이 목회자처럼 말씀을 가르치고 성령 충만한 모습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또한 국제제자훈련원의 스태프들이 미나미복음교회에 와서 제자훈련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가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옥한흠 목사 소천 1주기 때 사랑의교회를 다시 방문한 혼다 목사는 옥한흠 목사가 20여 년 동안 일본 땅에 뿌린 헌신과 사랑을 되새기면서, 제자훈련을 잘 감당해나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제자훈련으로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본 땅에 제자훈련의 씨앗이 뿌려진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제자훈련 모델 교회 하나 없는 것이 늘 가슴이 아팠다”며, “삿포로 지역 목회자들과 교제하면서 우리만이라도 제자훈련을 끝까지 붙들고,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훈련 모델 교회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하곤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미나미복음교회는 매년 사랑의교회 청년부와 대학부, 그리고 일본어예배부에서 단기선교를 오는 것이 제자훈련 사역을 이어가는 데 큰 활력이 된다고 한다. 50, 60대의 교인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지난 4년간 사랑의교회 청년들의 다방면에 걸친 사역 지원과 교제는 미나미복음교회 청년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혼다 목사는 이런 젊은이들을 보면서 미나미복음교회의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한 사역을 준비했다. 이에 동조하는 성도들 역시 자원하여 10명도 안 되는 청년들을 위해 집에 있는 드럼과 기타, 신디사이저 등을 기증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찬양과 악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청년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일예배도 첫째 주와 셋째 주는 전통 예배로 드리고, 둘째 주와 넷째 주는 워십예배로 드린다. 올해 이 교회의 표어는 “다음 세대에 전하라”(시 78:4)이다. 젊은이들을 준비하지 않고는 교회의 생명력이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한국에 가면 사랑의교회 일본어예배부나 청년부를 방문해 단기선교 참가자들과 교류의 끈을 이어간다. 심지어 최근 혼다 목사의 아들이 결혼할 때 일본어예배팀에서 일부러 일본을 방문할 정도로 그 친분이 두터워졌다.
혼다 목사는 “제자훈련의 근원지인 사랑의교회 목회자들이나 젊은이들과의 교제와 섬김을 통해 제자훈련을 보게 되었고, 듣게 되었으며, 느끼게 되면서 제자훈련의 모습이 나 자신과 교인들에게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교제는 혼다 목사 자신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제자훈련에 대해 조금씩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의 제자훈련 모델 교회로 성장해나가고자 하는 거룩한 긴장감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땅에 제자훈련 모델 교회를 세우자
지난 2월 일본 삿포로에서는 일본 제자훈련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는 1992년에 일본 제자훈련 컨벤션이 시작되어 2008년을 끝으로 중단된 이후 4년 만에 일본 목회자들의 자체 노력에 의해 재개된 것이었다. 제자훈련으로 받은 상처를 다시 제자훈련으로 회복하고 치유하자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를 계기로 제자훈련을 잠시 중단했던 목회자들은 다시 시작할 것을 다짐했고, 계속 제자훈련을 지속해오던 몇몇 목회자들은 이제 일본 교회에서도 한국 교회나 브라질 교회처럼 제자훈련 모델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미나미복음교회는 일본 교회 제자훈련 모델 교회로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제자훈련을 통해 인격과 삶의 변화를 경험한 평신도 헌신자들이 나오고, 전도를 통해 재생산까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역의 섬김이 아직은 교회 안에 집중되어 있고 재생산도 아직은 미비하지만, 이만큼의 성장과 변화는 지난 20년 간 옥한흠 목사가 일본 땅에 뿌린 희생과 헌신의 열매가 아닌가 싶어 감사했다.
혼다 목사는 “아직도 일본에는 제자훈련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는 교회가 많지만,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스스로에게 제자훈련이 무엇이었나를 묻고, 일본에서 행해진 제자훈련이 과연 성경에 바탕을 둔 제자훈련이었는지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본 교회의 제자훈련을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고 지적한다. 회개의 문이 열릴 때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미나미복음교회의 제자훈련 열매는 이제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더 많은 일본 교회에서 제자훈련 사역으로 건강한 모델 교회들이 나올 것을 미나미복음교회와 삿포로 제자훈련 동역자들의 교회를 통해 즐겁게 예측해 본다. 그들은 큰 기관을 만들기보다 그들의 교회 현장과 지역 안에서 동역자들과의 친밀한 모임을 통해 한 발자국씩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서로에게 격려의 불씨가 되어 주고, 희망의 불씨가 되어 주는 이들을 통해 일본 교회의 제자훈련은 계속 타오를 것이며, 일본 복음화는 제자훈련 하는 일본 교회에 의해 번져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우은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