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2016년 05월

해외 제자훈련 * 힘들어도 제자훈련을 해야 할 이유

교회와제자훈련 이정철 목사_ 필라델피아 제자교회

20년 전 필라델피아 제자교회로 부임했을 때, 교회 사정상 선교비 지원을 하다가 중단했던 선교지가 있었다. 다시 그 선교지에 “교회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중단했던 것을 용서하시고 다시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선교비를 보냈던 적이 있다.
그 편지를 받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미비아 조현신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보내 주신 주보와 선교헌금 잘 받았습니다. 선교가 지속된다는 기쁨보다 저희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기쁩니다. 그리고 주보에 보니까 제자훈련 하시는 목사님이신 것 같은데, 저도 오래전부터 나미비아에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교지의 성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학교도, 병원도, 고아원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힘듭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도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저를 목사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이곳에 온 지 꼭 10년 됐는데, 10년 동안 1명을 양육해서 얼마 전 잠비아로 보냈습니다.”
요즘 필라델피아에서 제자훈련 목회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현신 선교사님의 모습과 비슷하다. 다른 곳은 잘 모르지만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교회들의 형편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제자훈련 교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한국에서 신학을 하면서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목사가 되면 어떤 목회를 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당시 큰 교회의 목회자들과 큰 교회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 10여 개의 교회를 직접 방문해 예배에 참석해 보기도 하고, 또 교회 프로그램들을 배우고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설교를 은혜롭게 하는 목회자, 기도를 열심히 하는 목회자, 독서를 많이 하는 목회자, 인품이 좋은 목회자, 새로운 목회 방법을 도입해 도전을 주는 목회자 등, 나는 30여 년 전에 이런 목회자를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왔다.
나는 PCA 교단(미국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근처 산호세에서 10년, 동부의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20년, 이렇게 미국 목회만 30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해외 제자훈련 현장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제자훈련을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된다.
나는 1993년에 열린 미주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에 1기로 참석했다. 당시 나는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사람이 적은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온 후, 집에서 제자훈련 교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제자훈련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제자훈련을 할 수 있었고,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며 제자훈련을 하다가 필라델피아로 사역지를 옮기게 됐다.


고여 있는 물과 같은 지역 상황
필라델피아 지역의 목회 현장은 ‘마치 고여 있는 물’ 같은 느낌이다. 이민 연수가 30~40년 된 이들이 많고, 교회에 오래 다닌 이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한국 교회의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이곳에는 250여 개의 교회가 있으며, 교민은 3~4만 명 정도 된다. 대부분 교회에 교인이 20~30명 정도 되며, 100명이 넘는 교회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교인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기에 낮 시간대에는 제자훈련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근무 시간도 10시간 정도 되다 보니 저녁 수요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제자훈련 하러 오는 교인들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차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 제자훈련의 가장 큰 문제는 교인이 20~30명 되는 교회가 많다 보니 제자훈련 기수가 한 번 끝나면 다시 제자훈련을 받을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자훈련 할 사람을 전도해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각성전도집회도 해 보고 나름대로 힘을 써 봤지만,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정착하는 일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선 사람이 없다. 그리고 힘써 전도해서 데리고 와도, 교회가 작아서 부담스러워한다. 아이들 교육 시스템을 맘에 들지 않아 한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나열하며 정착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훈련하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이곳의 실정이다.
필라델피아로 와서 보니 산호세 지역에서의 제자훈련 때와 필라델피아에서의 제자훈련은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많았다. 한국도 지방마다 목회 현장이 다르듯, 미국은 워낙 넓다 보니 서부와 동부의 목회 현장도 다르다. 교인들이 많은 곳은 선별해서 제자훈련을 하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훈련생 선별이 다른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제자훈련을 하려는 교인들이 있었고, 시험도 보며 훈련생을 선별해 받았던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목회 현장에서의 제자훈련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교회는 1~2명을 데리고 제자훈련 하는 경우도 있다. 제자훈련을 마치고 다음 기수까지 1년을 기다리기도 하고, 5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몇 가정이 들어와 교회가 조금 부흥하는 것 같다가 어느 날 들어온 수보다 더 많은 수가 떠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작은 규모의 이민 교회 모습이다. 지금은 몇 년이 지나도 새로운 교인이 방문조차 하지 않는 교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개구멍으로 들어간 꽃 전시회
필라델피아에 부임했을 당시, 충성스럽게 헌신하던 60세 정도 된 안수집사 가정이 있었다. 그는 필라델피아 시청 근처에서 세탁소와 구두 수선 일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업체 심방을 할 즈음이었다. 우리 집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안수집사는 나더러 심방을 마치고 해마다 시청 옆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국화 전시회를 가보라고 권유했다.
며칠 후 업체 심방을 마치고 안수집사가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제복에 팔각 모자를 쓴 흑인이었다. 안수집사는 그 사람이 우리를 잘 안내해 줄 거라며 바쁜 집사 부부는 가게에 있고, 나와 집사람은 흑인의 뒤를 따라 컨벤션 센터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나오는 짐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후,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동네에 천막으로 만든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돈이 없어 주변을 돌다가 조금 허술하게 막아놓은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집사람과 내가 그렇게 꽃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당시 안수집사의 모습이었다. 큰돈을 권리금으로 주고 세탁소와 구두 수선하는 가게를 매입해 장사를 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제자훈련 시간에 기도제목을 올렸다. 당시 5층 건물 주인이었던 사람이 건물이 너무 낡아 새로 건축을 하기 위해 입주해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가게를 매입했던 부부는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었다.
얼마 후 건물은 철거되고, 부부는 일터를 잃었다. 마침 근처에 건물을 갖고 있던 딸이 1층을 정리해 가게로 꾸며, 부모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길 건너편에 혼자 사는 한국인 여성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가게를 열면 건너편 가게가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과거 목사 부부를 개구멍으로 꽃구경을 시켜 줄 시기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일들을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고려하게 됐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운 그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안수집사 부부는 건너편 세탁소를 위해 자신들의 가게를 포기하는 변화된 삶을 보여 줬다. 그들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빛이 되라고 했잖아요.”
우리 교회는 7년 전 3에이커 정도 면적의 지금의 교회를 구입했다. 교회 형편으로는 힘든 일이었지만 훈련받은 교인들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빚을 지면서까지 헌신했다. 그 모습을 통해 나는 제자훈련을 통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꽃꽂이 목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제자훈련을 잘하면 교회가 부흥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난 20여 년간 최선을 다했는데 생각한 것만큼 부흥하지 못했다. 가끔 부흥회를 가면 사람들이 교인이 몇 명 모이느냐고 묻곤 하는데,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지금은 제자훈련을 하겠다는 교인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곳에서 제자훈련 하는 목사 중에는 1명을 놓고 훈련하는 경우도 있다. 제자훈련 목회를 해도 교인들이 없어 교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목사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어도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어느 목사가 말한 것처럼, 이민 목회를 30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꽃꽂이 목회는 오래가지 않고, 목회를 지치게 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이민 교회는 장로, 권사, 집사가 교회에 등록하면 그들을 그냥 교회 일꾼으로 임명하고, 사역을 하게 한다. 그래야 그들이 정착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로라는 꽃이, 권사라는 꽃이 얼마 가지 않아 죽는데 그때 썩으면서 옆에 있는 꽃까지 죽이는 모습을 많이 경험했다. 그렇기에 죽지 않고 계속 자라나는 푸른 나무를 심기 위한 사역으로 제자훈련만큼 확실한 게 없다.
이민 교회 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 가운데에는 교회의 본질은 둘째 치고, 교회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고, 이로 인해 교회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더욱 이민 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이 필요하다.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민 목회가 한국 목회처럼 바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 관리를 잘못하면 나태해질 수 있는데, 제자훈련 하는 동역자들의 모임을 통해 목회자의 영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달이면 이곳 필라델피아 CAL-NET(제자훈련 목회자 네트워크)이 벌써 70차 모임을 갖게 된다. 10년 이상 2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제자훈련에 대해 함께 나누고 있는 동역자들과 사모님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제자훈련을 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제목과 바람이 있다. 작년 5~6월에 제자훈련을 할 교인을 보내 달라고 금식기도를 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훈련생이 없어 지금은 제자훈련을 잠시 쉬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기도제목이 내 마음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교인들과 함께 공적인 기도 모임 때마다 기도하고 있다.
그것은 ‘지역 목회자를 위한 제자훈련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자훈련이 필라델피아의 모든 교회에 잘 접목되는 것이 제자훈련 하는 목사로서 나의 바람이다.
우리 교회는 110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본당이 있다. 나는 교인들과 이 교회를 구입하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님! 교인이 늘더라도 교회를 재건축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를 크게 지어 더 많은 사람이 모여 훈련시키면 좋겠지만 제가 직접 제자훈련을 할 수 있는 인원의 교회로 남고 싶습니다. 교인들의 수가 늘어 예배당이 부족하면 기존 교인들을 작은 교회로 보내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인이 늘어나도 주일예배는 한 번만 드리겠습니다.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교회 버스를 구입하지는 않겠습니다. 1년에 한 번은 주일에 교회 문을 닫고 교인들이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미국에서도 아주 작은 한 지역에서 제자훈련 하며 경험했던 일을 쓴 것이기에 모든 이민 교회 제자훈련에 모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면 관계상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좀 더 자세한 이민 교회 제자훈련에 관한 내용은 이메일(pjcree@hotmail.com)로 연락을 주면 이곳 CAL-NET 회원들과 함께 경험한 얘기들을 나누도록 하겠다.




이정철 목사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CAL세미나를 미주 1기, 6기, 10기 등 총 3번 수료했다. 현재 필라델피아 제자교회를 담임하며, 필라델피아지역 CAL-NET 대표로 12년째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