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클리닉 문근식 목사_ 성서교회
요즘 전도가 잘 안 되는 시대에 살다 보니, “전도가 어렵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중에서도 청소년 전도를 더욱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꽤 많아 보인다. 그러나 청소년 사역을 20년 가까이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청소년 전도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솔직한 말로 청소년 전도가 가장 쉽다. 어쩌면 청소년 사역만 오래 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나 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청소년들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그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 전도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요즘 아이들은…’ 하는 시선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모습을 품어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지금 눈을 감고 ‘청소년’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쾌활하고 발랄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니면 뉴스를 장식하는 불량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둘 중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뿐이다. 아이들이 순진하든 불량하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교 1등을 하며 품행이 모범적인 아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는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한 영혼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좀 불량하면 어떤가? 술, 담배를 못 끊는 아이들이면 어떤가? 폭력 전과가 있고 강제 전학을 다니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한 영혼일 뿐이다. 우리가 먼저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이 점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가끔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훈계하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어른들의 기사가 실릴 때가 있다. 나는 그 어른들이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는 학생들의 일탈 행위를 지적해줘야 한다. 십대들의 방탕과 문란함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적의 방식이 바뀔 필요는 있다. 나도 그런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대신 접근 방법은 좀 다르다. 아이들을 보고 지적부터 하는 게 아니라 인근 마트에 가서 귤이나 컵라면 같은 것을 사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그러면 99%의 아이들은 황송해하면서 얼른 담뱃불을 끈다.
당신도 해보라. 추운데 감기 조심하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라. 그중에 여학생이 껴있다면, 나중에 예쁜 아기 낳으라고 축복해 주라. 굳이 담배 끊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끊겠다고 할 것이다. 나중에 길을 걷다가 마주치면, 그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도 해줄 것이다.
똑같이 담배 끊으라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 텐데, 왜 어떤 이에게는 아이들이 대들고 어떤 이에게는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겠는가? 전자의 경우는 영혼보다 담배가 먼저 보였고, 후자의 경우는 영혼이 먼저 보였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한 영혼이 먼저 보이게 되면 굳이 전도해야지 하며 굳센 각오를 다질 필요 없이, 알아서 몸이 움직이게 된다. 나는 전도지로 전도해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사탕, 초콜릿, 빵, 컵라면 등이 전도지 역할을 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청소년 시절은 관계성에 아주 민감한 시기다. ‘저 아이를 전도해서 부서를 부흥케 하리라’ 라는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전도받는 대상이 먼저 눈치채고 거부감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네가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단다’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라.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육신하신 마음이 아닐까? 아이가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전도에 성공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주 모이는 곳으로 가라
전도가 목적이라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산이 아니라 시장으로 가야 전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우선 학교를 꼽을 수 있겠지만, 학교 전도의 노하우는 짧은 지면에 소개하기가 난감하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대신, 학교를 마친 후 아이들이 어디에 주로 모이는지를 찾아보라. 학원처럼 강제성을 띠고 모이는 곳이나 피시방처럼 자극적인 곳이 아니면서도 자발적으로 모이는 곳이 어디일 것 같은가? 정답은 ‘어른들이 잘 안 가는 곳’이다.
인근 초등학교 뒤편, 다리 밑, 건물 옥상 등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곳에 아이들이 즐겨 모이곤 한다. 야음이 깔리는 으슥한 시간이면 더 잘 모인다. 학원과 학원 사이의 어정쩡한 시간이나, 학원 파하고도 집에 가기 싫은 아이들은 늘 그런 곳에 모여 있기 마련이다.
사실 그런 곳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전도하기 쉽다. 학교는 출입에 제한이 있고, 하교 시간은 학원 가느라 바쁘고, 학원 마치면 자기들끼리 어딘가 몰려가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서는 진지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가기 꺼리는 그곳에는 아이들이 누가 됐든 언제나 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그냥 친구와 있는 것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은 항상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아이들이다. 그럴 때 조그만 간식을 들고 찾아가보라.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도 트기 어려울 테니, 그냥 주고 인사만 하고 오라. 그리고 며칠 후 또 가보라. 한 번 두 번 주다 보면 알아서 아이들이 먼저 알아볼 것이고, 또 어느새 소문이 퍼져서 그 아이 친구들까지 호감을 느끼고 당신을 대할 것이다.
주의할 점은 처음부터 너무 복음만 전하려고 하지 말라는 점이다. 오늘 하루 나가고 말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복음 전할 기회는 충분히 온다. 많이도 필요 없이 주 1~2회만 밤에 나가서 간식 주고 오면 된다. 한 달 안에 아이들과 얼굴을 틀 것이고, 그때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자세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면, 적당한 날을 잡아서 교회로 한번 초청하라. 아이들이 일어나기 힘든 주일 아침 시간이 아니라, 서로 한가한 시간을 잡아서 오라고 해야 한다. 초청해서도 굳이 순서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 그냥 간식 먹고 쉴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밥을 먹여주고 싶다면 가까운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다 줘도 충분히 황송해하며 먹을 것이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심심해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아이들은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그룹을 지어서 온 것이기 때문에 놔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수다 떨면서 놀게 돼 있다.
그렇게 교회로 발을 디딘 아이들은 그 뒤로도 알아서 자기들끼리 교회를 찾아오게 돼 있다. 이것이 몇 번 익숙해지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약속하고 조촐하게 성경공부처럼 모임을 시작하면 된다. 기간을 10주 정도로 잡고, 성경공부를 완주한 아이들에게는 방학 때 1박 2일로 MT를 데려가 준다거나 하면 눈에 불을 켜고 개근하려는 분위기도 만들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기들끼리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만큼 행복한 일이다. 자기들끼리 간다고 하면 당연히 집에서 허락받지 못하지만, 교회 목사님이 대신 허락받아 줄 것이니 모임에 충성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부서 예산을 감안해서, 차량과 음식재료비 정도만 제공하고, 숙박비는 자기들이 회비를 내서 제출하도록 유도하라. 나도 방학 중 3~4회 정도 MT를 치르는데, 항상 숙박비는 아이들이 내는 게 원칙이다).
오고 싶은 교회로 만들어라
이처럼 아이들을 만나서 교회로 데려오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밤에 간식 들고 돌아다닐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나온 아이들을 교회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일날로 국한해서 본다면 교회는 아이들에게 전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호주 어느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라 한다. 시내 교통의 요지에 세워진 그 백화점은 규모도 컸고, 각종 편의시설을 완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딱 좋은 곳이었다. 문제는 십대 청소년들도 함께 몰려와서 시끄럽게 떠들어서 다른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거였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신사숙녀들이 지갑을 열어줘야 매출이 올라가는데, 돈도 안 되는 청소년들이 진을 치고 떠들어 대서 고객들이 발길을 외면하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을 억지로 내쫓자니 지역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직원 하나가 기가 막힌 방법을 써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 방법이란 백화점 전체 매장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었는데,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청소년들 귀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클래식 음악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으니 금세 흥미를 잃어서 백화점 밖으로 나가더라는 것이다.
이 일화에서 나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듯했다. 우리의 교회들은 말로는 청소년들을 사랑한다지만, 정작 행동으로는 아이들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주일날 오전에 드려지는 예배는 안타깝게도 시간부터가 전혀 전도대상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오전 9시에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는 곳이 절반 이상으로 알고 있다. 30년 전에는 주일 아침 9시면 모든 아이가 다 일어나 있었지만, 오늘날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과연 몇 %나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미 가족과 함께 교회 나오는 아이들이야 부모님들이 알아서 깨워주겠지만, 전도대상자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나 있겠는가?
나는 주로 토요일 오후에 전도된 아이들과 모임을 갖지만, 토요일에도 교회와 심심찮게 마찰을 겪곤 한다. 다음 날이 주일이라 깨끗하게 청소해놓았는데, 교회가 뭔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들어와서 어지럽혀놓고 가니 관리, 집사님 입장에선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불량청소년들을 데려와서 교회를 양아치 소굴로 만드냐는 항의를 수도 없이 받았다. 그때 봤던 구절이 잠언 14장 4절이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아이들이 없다면 교회는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교회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교회는 아이들 때문에 더러워야 한다.
좀 친해지고 나니까 토요일이 아닌 평일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곤 했다. 문제는 늘 늦은 시간에 온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늘 밤늦게까지 교회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나 곤욕스러웠지만, 그 시간이 있어서 아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오고 싶어 하는 교회는 언제든 들어와서 심심하면 수다 떨고, 답답하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교회 안에서 그것 때문에 마찰이 생긴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설득해내든지 아니면 스스로 치우든지 해서라도 아이들이 마음 편히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라.
‘열정은 목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 전도에 은사가 있으신 분을 지금까지 여럿 만나봤다. 20대 청년 전도사님부터 50대 권사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고,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코드도 각각 다양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 ‘기다릴 줄 아는 분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눈앞의 열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분들이었고, 주변의 칭찬이나 항의에도 흔들림 없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전도 외에도 많은 교회 사역을 지고 있다. 일이 많아지는 시즌이 되면 어느 순간 피곤함에 지쳐버리고, 언제 열매가 맺힐지 기약도 없는 이 일에 왜 에너지를 부어야 하는지 회의감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자.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약속하고 있지 않은가. 눈물로 뿌린 씨앗은 반드시 언젠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밤부터 우리들의 집 주변이나 교회 주변의 아이들에게 줄 간식 들고 밤 나들이 나가보길 권한다.
문근식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 총신신대원 석사(M.div.)를 졸업했으며, 브리지임팩트사역원 교재출판팀장, 총회 계절공과 집필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서교회 교육디렉터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