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컨설팅

2012년 01월

인도자의 현명한 자기 오픈, 어느 선까지 말해야 할까?

제자훈련컨설팅 정희진 목사_ 화은교회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설렜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여전히 새 기수의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면 그 설렘을 느낀다. 하지만 설렘이 있는 것과 제자훈련이 잘되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신비로워야 한다?
내게는 목회자라는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품위를 유지하면서 성도들을 훈련시키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훈련생들 앞에서 나 자신의 투명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경험한 것 가운데 하나는, 내 마음을 닫고 나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면 그들이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효과적인 제자훈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 자신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오픈해야만 한다.
사실 제자훈련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내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마음을 여는 것이 뭐 어렵고 힘드냐고 말할 분들도 계실지 모르지만, 문제는 수위조절이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느냐이다. 나의 일상생활만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의 실수와 실패와 연약한 부분까지 말해야 하는가?’, ‘내가 이 부분을 말하면 훈련생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면 그 파장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처음 나를 오픈하기 시작했을 때, 나 자신이 완전히 까발려진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목회자라면 어느 정도는 신비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내 생활을 다 이야기해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에 굉장히 마음 졸이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목사님의 경우, 동네에 있는 목욕탕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그때만 하더라도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던 때였다. 그러니 나의 생활을 자세히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자기 오픈, 예수를 따라 하자
사실 ‘믿음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받아들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이것을 경험해본 분들이라면 각자가 겪은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하나도 숨김없이 다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득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익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를 완벽한 사람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연약한 부분들을 함께 나눌 뿐이다. 가정 이야기, 나의 삶에 관한 일상적인 부분들, 나의 약점, 실수, 연약한 부분, 고질적으로 고쳐지지 않거나 잘 회복되지 않는 부분들까지 나눈다. 언제나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하는가? 사실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문제일 것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다하지는 말아야 한다. 반드시 수위조절이 필요하다. 사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절제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훈련생들까지 후련할까? 그것은 의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고, 자기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생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들이 인도자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찬다필라의 말대로 예수님께서는 성육신하셨고 동화되셨다. 그렇다 하더라도 열두 제자에게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다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동거하시면서 보여주셨다. 하지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나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동행한 제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뿐이었다.
말을 해도 이해를 못 할 것이고, 보여주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제자들만 동행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변화산의 사건을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처음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고 3년의 세월이 지난 후, 십자가 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3년이나 훈련시킨 후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자기 내면의 깊은 감정을 나누셨던 것이다.
사실 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훈련생들이 빨리 자라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정말 빨리빨리 자라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다. 그래서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대로 속성으로 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더딘 것 같더라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젖을 먹고 우유를 먹고 이유식을 통해서 조금씩 밥을 먹게 되고, 나중에는 매운 것, 신 것, 짠 것, 뜨거운 것, 질긴 것도 먹게 되지 않는가! 처음부터 밥을 먹거나 고기를 먹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공유하자
제자훈련 교재 1권 간증문을 쓰는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다. 훈련생들이 써온 간증문을 읽다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수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붉은 글씨로 체크해서 되돌려주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간증문을 되돌려받으면서 잘 못하겠다고 말하며 굉장히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두 번 세 번이라도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간증문을 작성했을 때 두 번이나 다시 썼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훈련받던 선교단체의 리더가 간증문을 다시 써오라고 빨간 펜으로 체크해서 되돌려준 것이다. 그때도 목사의 신분이었다. 나는 세 번째에야 간증문 작성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분은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두 번째에 통과했다.
나의 실수나 실패 혹은 연약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훈련생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기도에 관한 내용을 나눌 때마다 기도가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하곤 한다.
기도가 쉬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속적으로 기도생활하는 것은 정말 전쟁이다. 그러면 ‘기도는 목사인 나에게도 여전히 힘들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면서 새벽기도 끝나고 강단에서 코 골며 졸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 돌아가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눈뜨고 예배당 안을 쳐다본 이야기 등을 해준다.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또 나는 가정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부부 싸움한 이야기, 아내가 나의 설교에 대해 도전했던 이야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솔직하게 나누는 편이다. 목사 가정의 이야기는 훈련생들이 좋아하는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목사 집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저들에게는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제자훈련이 거의 끝나갈 때쯤 되면 목회자의 비전, 감정, 남자로서의 힘든 부분까지 솔직하게 나눈다.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 회복되지 않는 부분, 나도 모르게 돈을 탐하게 되는 부분도 나눈 적이 있었다. 남자들과 훈련할 때에는 성적인 부분도 솔직하게 나눈다. 남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도 나눈다. 이때는 훈련생들도 인도자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자가 처음부터 성적인 부분을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됐을 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은 우리 교회에서 집사로 섬기는 어느 자매가 실제로 “나는 목사님이 화장실도 잘 안 가는 줄로 알았어요”라고 했다. 그 자매는 목회자를 정말 신령한 존재로 여겨 화장실도 잘 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황송한 말인가? 똑같이 더럽고 냄새나고 어떤 때에는 성도들보다도 더 악한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한 사람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인도자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목회자인 우리 자신들이 성도들에게는 참 괜찮고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어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가면을 쓰고 성도들 앞에 설 수 있기에 유혹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은 실수도 없고 잘못한 것도 별로 없고 뭐든지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자녀까지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험에 의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말들에 대해 은혜로 받기보다는 부담이 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색안경을 끼고 목사를 바라보게 된다.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까지만 이야기하되, 관계가 깊어지고 신앙 안에서 세워져 가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을 넓히고 깊이 있는 이야기도 하는 등 수위를 점점 높여가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도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말한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 교회 장로님으로 섬기는 한 형제가 오래전에 나 자신의 실패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목사님! 그런 것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참 용기가 있으시네요”라고 했다. 이 말이 내게는 너무 큰 힘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다 보여준다.
인도자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연약한 부분까지 나눌 수 있는 한 제자훈련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용기가 필요하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믿고 마음을 열고 말하라!


정희진 목사는 칼빈대학교와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했다. 이어 캘리포니아 유니온 대학교에서 문학사, 리버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화은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