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실패담 오석준 목사_ 한우리교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 실패를 맛보지 않고 어떻게 성공의 맛을 알까? 성경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한 목사가 아닐까? 이런 생각 속에 지금까지 한길로만 걸어왔다. 부끄러운 사역의 길이지만 이 실패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줬기에, 나의 실패담을 나누고자 한다. 돌아보면 나의 실패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첫 제자훈련의 쓴 잔
처음은 경산 당리교회에서였다. 1996년, 마흔 살에 부임한 후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보려고 호기롭게 설쳤다. 당시 교회는 경산시에 속해 있지만, 시골 문화가 더 짙게 밴 풍토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교인들도 일반 직장보다 땅을 벗 삼아 특수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았고, 교인 대부분이 평생 훈련은 고사하고 예배만 드리는 신자가 많았다.
더욱이 바쁜 농번기가 되면 예배드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런 교회에 젊은 나이에 부임해 중직자들을 대상으로 호기롭게 제자훈련을 시작했으나, 1년이 못돼 주저앉고 말았다. 그 후 와신상담하며 다시 제직자를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시작했지만 6개월만에 나 스스로 폐강하고 말았다.
첫번째 실패 원인은 훈련생의 수준에 맞추지 못했다. 지금이야 지난날 실패가 목회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실패했을까? 내 문제일까? 수십 번 곱씹어 봤다. 경산 당리교회에서의 실패를 진단해 보면 ‘훈련생의 수준을 간과하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평생 땅을 벗 삼아 살았고,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살았던 분들이었다. 당시 중직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진 분은 한두 분 정도였고, 세상 지식이나 상식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세상 지식은 합리성과 사회성, 융통성을 가지게 하고 어느 정도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그것마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젊은 목사가 부임해 훈련한다니, 처음엔 그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시작은 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의 내용과 강도, 질이 높아지자 숙제의 부담, 암송, 큐티, 제자도, 신앙인격, 정체성, 사도성 등 훈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의 수준을 생각지도 않고 중직을 먼저 훈련해야 한다는 것에만 매이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 지쳐버렸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실패를 맛봤다. 이때부터 ‘훈련생들은 조금이라도 세상 지식과 상식, 그리고 성경 지식이 있는 분들을 훈련시켜야겠구나!’, ‘훈련생의 수준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되겠구나!’, ‘수준이 안 된 분들은 훈련을 바로 시작할 게 아니라 멀리 보고 천천히 양육(성장)과 훈련(성숙)의 과정을 밟아 나아가야 하겠구나!’ 등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유의사항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두번째 실패 원인은 지역적 정서를 파악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지금 시무하고 있는 통영 한우리교회에서 겪은 실패다. 이 지역 영적 문화는 냄비 문화다. 바닷가라 그런지 받아들이는 수용성은 토지 문화인 경산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여서 시작은 잘하지만, 지속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토양의 특성을 모른 채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눈물로 12명을 데리고 1기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꾸준히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지도자는 단 7명이다.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갔는가? 목회자 잘못인가?
살펴보니 냄비같이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지역적 특성,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쉽게 이동해버리는 고질적 습관에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이상하게 개척 교회가 많이 생기고 문도 쉽게 닫는 분위기가 있다. 뒤늦게 진단해 보면 이런 지역의 영적 정서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실패 원인이 됐다.
세번째 실패 원인은 훈련생의 수준에 맞추다 훈련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훈련을 얕게 하다 보니, 훈련이 끝나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지방 성도의 기본적 신앙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강도 높은 수준의 훈련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제자훈련이 요구하는 커리큘럼은 지키지만, 그에 맞는 수준의 훈련을 하다 보면 수료생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얕은 수준으로 훈련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훈련 때는 모르는데 수료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강도가 약한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바로 신앙 부재 훈련이라고 나 스스로 진단하고 있다.
1권 1과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초점을 인격 성숙에 맞추다 보니, 정작 훈련생들이 신앙은 생각지 않고 성숙만 생각하는 이상한 구조가 생겼다. 물만 중요하고 컵은 잊어버린 꼴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인격 성숙만 강조하다가 정말 중요한 신앙을 간과하게 돼, 신앙 없는 성도가 훈련을 받게 됐고, 이게 궁극적인 실패로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나의 시행착오와 실수로 나에게 맡겨주신 성도를 온전히 세워가지 못했다.
한 명만 있어도 제자훈련 한다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산 당리교회 장년 제자훈련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청년들에게 눈을 돌린 덕분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또 ‘틈새시장을 노리라’는 말이 있다. 제자훈련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다시 찾았고, 청년들과 새롭게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 나의 제자훈련 초석이 됐다.
9년간 말로 형언 못 할 세파 속에서도 통영 한우리교회에서 훈련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명만 있어도 제자훈련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패를 무릅쓰고 버틸 수 있었다. 올해도 남자 제자훈련 대상자는 한 명이다. 이 한 명 붙들고 일 년을 씨름할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
동양의 나폴리라는 조용한 어촌 통영. 관광객은 엄마 치마폭 같은 풍경과 먹거리에 취하지만, 나는 한 생명에 미치지 않으면 온전한 한 사람을 바로 세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의 제자훈련 실패담이 오늘 제자훈련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는 우리 조국의 동역자들에게 조그만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솔직한 글을 올린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그날까지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어 가 주시는 성령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석준 목사는 부경대학교 기계공학과,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리폼드신학교(D.Min.)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해운대제일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다가 부산예림교회를 개척하고, 경산당리교회에서 담임 사역을 한 후, 2005년 8월부터 통영 한우리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