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플소식

2012년 11월

교회와 세상 * 새벽밥 주는 교회, 고시생의 마음을 두드리다

디사이플소식 백지희 기자

-노량진 강남교회 새벽밥 사역

 

각종 고시와 입시 학원들로 빼곡 들어찬 노량진. 이곳에서 수많은 수험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이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처럼 막막한 자신의 미래와 씨름하고 있는 학생들의 무거운 마음을 막 지은 따뜻한 새벽밥으로 응원하는 교회가 있다. 바로 강남교회다. 이미 강남교회의 새벽밥 사역은 몇 년 전부터 방송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어느새 12년째에 접어든 이 사역은 강남교회 청년부 부흥의 원동력이자 강남교회만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왜 새벽밥인가?
새벽밥 사역은 재정적인 부담으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하는 고시생들을 배려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고시생들은 지방에서 올라와 집에서 보내주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생활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경우가 흔치 않고, 먹더라도 대충 때우기 마련이다. 그런 그들을 섬기기 위해 강남교회에서 아침밥을 주자는 의견이 나왔고, 청년들을 위한 2부 새벽예배(6시)를 만들면서 새벽예배 후에 학생들에게 밥을 주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밥을 제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서너 달 정도는 빵과 우유를 제공했다.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고 점점 날이 추워지면서 학생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을 대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새벽밥 사역 초기 멤버인 안월옥 권사는 “당시 목사님의 제안을 듣고, 혼자서는 밥을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서 김은혜 권사님을 추천했어요. 그때부터 김 권사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고, 1~2년 후쯤 멤버들이 구성되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12년 전 본격적으로 강남교회의 새벽밥 사역이 시작됐다.

새벽밥 사역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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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식당에는 새벽밥 사역을 준비하는 10명의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아직 학생들이 와서 식사를 하기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 시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200~250명의 학생들이 와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준비가 만만치 않다. 전날 미리 장을 봐둔 재료를 다듬으며 식사를 준비한다.
a.m. 5  봉사자들은 1부 새벽예배를 참석한다. 30분 정도 예배를 드린 후, 내려와서 다시 본격적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a.m. 6:30  청년 새벽예배가 한창 진행 중인데 갑자기 청년 몇 명이 내려와 봉사자들을 거든다. 이들은 새벽밥 사역을 돕는 새벽지기 청년들이다. 새벽예배를 섬기고, 봉사자들을 도와 새벽밥 배식과 설거지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a.m. 7  밥과 반찬이 배식구에 하나둘 올라오고, 식당 밖에는 학생들의 줄이 점점 길어진다. 밥과 국이 다 되어 올라오면 봉사자들은 골고루 돌아가도록 직접 배식까지 해준다.
a.m. 8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식판을 반납하면, 새벽지기 학생들은 서로 도와가며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벌써 봉사자들이 다음날 학생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할 준비가 한창이다.

사랑과 헌신으로 짓는 새벽밥
매일 새벽밥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모두 평신도들이다. 게다가 10년 넘게 봉사해온 10명의 봉사자들은 전부 나이가 지긋한 권사들이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월화수반, 목금토반으로 나눠 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봉사자들의 청년들을 향한 애정과 헌신은 남다르다. 명절 때 담당 목사가 쉬라고 말을 해도 “청년들이 밥을 먹어야 공부를 한다”면서 쉬지 않고, 행사가 있어서 식사 준비를 못하는 날에는 떡이나 주먹밥으로 대체해서 청년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한다.
청년부 디렉터 남수호 목사는 이들의 섬김 속에서 ‘살아 있는 믿음을 본다’고 말한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행함이 있는 사랑과 믿음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삼서에서 가이오가 순회전도단들을 온 정성으로 영접하며 섬기는 모습이 바로 권사님들의 모습인 것 같아요. 요한일서 3장 16절의 말씀처럼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이분들은 직접 실천하고 있어요.”
새벽밥 사역으로 섬기는 10명의 권사들은 목숨과도 같은 건강을 희생하며 청년들을 섬기고 있다. 매일 새벽 힘들 법도 한데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학생들을 섬기는 그들의 사랑은 교회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그들이 짓는 밥을 먹는 학생들에게도 흘러간다. 새벽밥을 먹는 학생들은 마치 자기 할머니, 어머니가 정성으로 지은 밥을 먹는 것 같다면서 감사해 한다.
하지만 새벽밥 사역에도 매년 어려움이 찾아온다. 현재 봉사자들은 다들 은퇴할 때가 되었는데 이들의 소중한 사역을 이어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매년 교회에 광고를 하며 섬길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 그렇다고 이 사역을 접을 수도 없어 담당 목사는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함께 새벽밥 사역을 섬기는 새벽지기 청년들의 헌신은 끊일 줄을 모른다. 새벽지기들은 다들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새벽을 매일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조를 나눠서 꾸준히 섬기고 있다.
이들이 없으면 사실상 2부 새벽예배와 새벽밥 사역의 진행이 힘들다. 왜냐하면 2부 새벽예배와 새벽밥 사역은 청년부 자체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감사하게도 새벽밥 사역을 통해 노량진을 복음화 하겠다는 동기부여가 청년들 안에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찬양을 하겠다는 의견을 내서 섬기기도 한다. 청년들이 이러한 섬김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역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새벽밥으로 맺는 아름다운 열매
새벽밥 사역은 궁극적으로 지친 학생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직접 복음을 전하거나 전도지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식탁에 복음에 관한 메시지가 담긴 문구판을 세워놓고, 가끔씩 특별 간식과 함께 청년부 소식지를 나눠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전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남수호 목사는 이에 대해 “순식간에 노량진을 복음화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회복하고, 교회가 순수한 목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떠올리며, 교회에 나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갖도록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실제로 강남교회에는 새벽밥을 먹다가 믿음을 회복하게 되거나 회심하고 교회에 다니게 된 경우들이 많다. 한 학생은 새벽밥을 먹다가 고마운 마음에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청년부 선교부 부국장까지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불교신자였던 한 학생은 새벽밥을 먹고 교회 등록을 한 후 제자훈련을 받고 가족까지 전도하기도 했다고 하니 열매가 증명된 셈이다.
김은혜 권사는 “새벽밥 사역을 통해 믿음이 없는 학생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가장 보람 있다”면서 사역의 원동력이 바로 학생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임을 전했다.
열매는 이뿐만이 아니다. 새벽밥 사역은 교회의 재정에 포함되지 않은 별도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재정이 마이너스가 된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새벽밥을 먹은 많은 학생들이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첫 월급을 타면 전부 다 후원금으로 기부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월급을 보내는 청년들도 있고, 십일조를 보내는 청년들도 있다. 혹은 직접 찾아와서 “권사님, 뭘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돕기도 하고, 20kg 쌀을 사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먼저 새벽밥을 먹은 학생들이 자신의 후배들을 섬기는 섬김의 동역이 이어지는 것이다.
안월옥 권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럴 때마다 감동과 보람을 느껴요. 또 청년들이 시집 장가가서 교회를 섬기기도 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반갑죠. 목사님들은 선물을 받으면 다 학생들에게 내주시곤 해요”라고 말했다. 교회와 세상 안에 서로를 섬기는 아름다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어떻게 세상을 섬겨야 할까?
강남교회 새벽밥 사역을 통해 노량진의 고시생들의 마음은 점점 교회를 향해 열리고 있다. 교회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세상에서 악평을 받고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본이 되는 아름다운 섬김이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교회가 밥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친구와 함께 강남교회 독서실을 이용하며 한 달째 새벽밥을 먹고 있다는 한 남학생은 “식비도 줄일 수 있고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남교회 새벽밥을 이용한 지 1년 정도 되었다는 한 여학생은 “이렇게 아침을 준비하고 치우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면서 봉사하시는 게 감사하다”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교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 같다”면서 자신도 가끔씩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강남교회의 섬김을 통해 각 지역에 속한 한국 교회들은 어떤 점을 적용할 수 있을까? 각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섬겨야 할까?
새벽밥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청년부 디렉터 남수호 목사는 결국 교회가 자신을 깨야 한다면서 “교회가 개교회주의를 깨야 사회에 감동을 주고 복음의 문이 열립니다. 요즘의 교회는 교회만을 위해 성장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역을 바라보고 그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성도를 모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목적을 고민하며, 재정적으로도 더 많은 부분을 헌신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강남교회가 12년 동안 꾸준히 새벽밥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찾고,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섬김을 감당했던 데에 있었다. 조급하게, 눈에 보이는 행사로 사역을 이어갔다면 절대로 지금의 새벽밥 사역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남수호 목사는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에 저절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섬김이 필요하다”면서 “다른 교회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역에 도전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강남교회는 새벽밥 사역뿐 아니라 지역의 특징을 살려 자습실(독서실)을 운영하기도 하며, 시간관리 프로그램(3P)을 지도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백지희 기자>


인터뷰 새벽지기장 이학민 형제(강남교회)
작년 11월부터 새벽지기장으로 섬기고 있는 이학민 형제는 20여 명의 새벽지기들과 함께 매일 청년 새벽예배와 새벽밥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로만 느껴지던 사역이 새벽지기들의 기도와 동역, 권사님들의 헌신을 통해 차츰 감사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이 사역을 통해 ‘한 영혼을 향한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지는 역사적 순간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험하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밥 먹는 청년들에게 찬양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학민 형제의 제안으로 매주 토요일 새벽에는 30분 정도 찬양 사역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복음을 전하는 일, 보내는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영혼을 살리는 큰 사역인 새벽밥 사역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당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