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옥성석 목사_충정교회
사전적 의미에서 리더(Leader)란 흔히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리더십(Leadership)은 ‘지도자의 영향력’을 뜻한다. 헨리 블랙커비(Henry Blackaby)는 리더십을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사람마다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는 하나 그의 책 『영적 리더십』에서 리더십의 독특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영적 리더는 사람들을 움직여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게 한다.
둘째, 영적 리더는 성령께 의존한다.
셋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께 책임진다.
넷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다섯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한다.
어느 공동체나 리더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리더와 리더십은 전혀 별개다. 모든 리더가 다 이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리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리더십이 모든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내로라하는 리더들이 많고, 또 리더라면 누구나 폭넓고 깊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영향력을 줄 만큼의 감화력 있는 리더십을 가진 리더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리더십 부재 시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리더 자신이 이상적인 멘토를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리더십을 소유하기 위한 훈련 또한 부족함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리더들은 자신의 조직을 서서히 와해시켜 버린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함정은 무엇일까?
1. 리더의 의자 자체가 곧 함정이다
리더는 공동체의 구성원과는 차원이 다른 의자에 앉게 되는데, 일단 그 의자에 앉게 되면 쉽게 말하고 명령하고 판단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남을 쉽게 정죄하기는 좋아했지만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 하지 않았다(마 23:2~4). 저들은 의자에 앉아 명령만 하면 자신들이 하는 말을 모든 사람들이 들으며 따를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리더십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런 거만하고 권위 있는 태도이다. 리더십은 고개가 아닌 마음을 끄덕이게 하는 영향력이다. 이 영향력은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요 13:4). 따라서 리더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의자가 아니라 무릎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리더는 ‘의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그럴듯한 책상,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의자가 곧 리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자에서 내려오는 것은 성육신만큼이나 힘들다.
하지만 감화력 있는 리더가 되려면 과감히 ‘의자에서 내려와 성육신’을 해야만 한다. 그곳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한다(롬 12:15). 리더가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마음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다른 사람을 이끌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 되려는 자가 아니라 종이 되려는 자여야 한다(요 13:16). 왜냐하면 리더의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세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리더의 마음 자체가 곧 함정이다
굳이 사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단 리더가 되어 집중을 받게 되면 자신이 모든 면에 있어서 남보다 낫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꽈리를 튼다. 이와 같은 교만은 리더에게 있어서 최고의 적이다(잠 16:18). 수많은 리더들이 교만으로 몰락했다. 교만은 살며시 들어와 리더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조심하지 않으면 교만은 리더에게 독약이 된다. 교만은 리더를 유혹해서 모든 열매를 혼자 독차지하게 한다. 그러므로 리더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먼저 마음을 지켜야 한다(잠 4:23).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는 미워하시기 때문이다(잠 16:5).
교만한 마음의 리더는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충고나 통찰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하나님의 음성조차도 듣기를 거부한다(시 14:1). 이때부터 그는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므로 리더는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교만의 유혹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충고에 열려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갈망해야 한다(시 40:1). 이런 ‘열림’과 ‘갈망’은 오직 겸손한 마음에서만 우러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리더는 모든 책임은 자신의 탓으로, 성공의 이유는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린다.
3. 리더에게 성적 범죄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목회자의 17% 정도가 성적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실제로 최근 미주 한인 교회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소식을 우리는 접하고 있지 않는가. 성적 타락과 범죄는 반드시 개인의 내적 무질서와 영적 무감각을 동시에 수반한다. 이 유혹의 쇠사슬에 한번 말려들면 영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보다 더 질기게 온몸을 칭칭 감아 버리기에,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때부터 리더십은커녕, 리더의 자리도 내놓아야 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때문에 현명한 리더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인격도, 믿음도 믿어서는 안 된다.
한때 내로라했던 세계적 영적 리더들이 이 덫에 걸려 평생 쌓아온 리더십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예들이 어디 한두 건이던가. 어제나 오늘이나 사탄은 이 방법을 가장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장담하지 말고 유혹을 당할 만한 그 어떤 기회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니 그 현장에서 도망치기라도 해야 한다(창 39:13). 현명한 리더는 성적 유혹에 대해 언제나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윗이 성적 범죄에 빠진 후 거기에서 빠져나와 원래의 위치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었는지 잘 알지 않는가. 머리 위에 새가 빙빙 날고는 있지만 얼마든지 내 머리 위에 앉지 않게 할 수 있다. 성적 죄악의 비참함과 그 결과를 알고 있다면 리더는 성적 유혹에서 분명 피할 수 있으리라.
4. 우선순위의 문제가 또 하나의 함정이다
리더는 일의 우선순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성공하는 리더는 우선순위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리더의 대부분은 내가 꼭 해야 할 일인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리더는 마지막 해답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리더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많은 일에 큰 비중을 두려는 유혹을 받는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리더가 구성원들을 신뢰하지 못할 때 결국 구성원들은 한결같이 수동적으로 되어 버린다.
‘황제경영’이라는 말은 결코 바람직한 경영 기법이 아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가장 잘하는 한 가지에 집중할 때 능률과 파괴력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문제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우선순위에 혼돈이 올 때 리더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쉽게 피곤을 느끼고, 좌절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리더는 팔방미인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를 붙잡고 결정타를 날릴 수 있어야 한다.
5. 리더에게 진퇴문제는 최후의 유혹이다
얼마나 많은 리더들이 자신이 떠나야 할 시기에 떠나지 않거나 새로운 리더를 세우지 못해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이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리더들은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리더십을 나누고 물려주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는 큰 아픔이요, 아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리더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모세는 당대에 최고의 리더였으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누가 감히 그 뒤를 잇는단 말인가. 그러나 보라. 그의 몸종에 불과했던 여호수아(수 1:1)에게 맡기니 모세 못지않게 질풍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때가 있다.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전 3:1).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진정한 리더가 취해야 할 태도다.
하나님은 벌써 버리셨는데 선지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백성의 장로와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여 달라”(삼상 15:30)고 애걸복걸하는 사울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화려하게 시작하기보다는 끝맺음이 멋있는 리더십을 소유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 비록 현재 내 눈에 그가 피라미처럼 보일지라도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할 때 더 놀라운 일들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만이 이 최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
리더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결코 가지 않았을 곳으로 그들 스스로 가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이런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유혹과 함정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의자의 유혹, 마음의 유혹, 성적 유혹, 우선순위의 유혹, 그리고 진퇴의 유혹이 그것이다. 최고의 리더십은 이런 실패와 좌절을 안겨 줄 수 있는 유혹 앞에서 얼마나 영적으로 깨어 대처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 어떤 유혹에 직면해 있는가.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 보다 더 나은 영적 감화력이 있는 리더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옥성석 목사는 고신대학교와 총신신학대학원(M. Div), 미국 풀러신학교를 졸업(D. Min)한 후, 현재 충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며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CTS 고양방송본부장, 고양시(합동)목회자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 야곱』, 『어처구니를 붙잡은, 삼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