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2009년 09월

행복한 고독, 즐겨야 할 고독

리더십 주정오 _ 시드니 열린문교회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목회자는 행복한 지도자다. 평신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그 사역의 열매를 함께 본다는 것은 목회자가 갖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1986년 10월 27일부터 4박 5일 동안 진행되었던 제2기 CAL세미나는 평신도를 깨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깨운 감동의 시간이었다. 심비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주님의 흔적이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주신 목회 현장에서 나름대로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셨다. 13년 전 이곳 시드니에 세워진 열린문교회 안에 이미 100여 명의 소그룹 사역자들이 또 하나의 작은 목회자로서 목양에 충성함을 바라보게 하신 것은 제자훈련 사역을 위해 달려왔던 지나간 날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너스였다.

 

 

제자훈련 지도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언젠가 우리 교회 소그룹 지도자 한 분이 병원 심방을 요청하여서 동행한 일이 있었다. 신혼 가정에 새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항상 하던 버릇대로 산모의 침상 곁으로 다가갔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나를 안내했던 그 소그룹 지도자는 나를 세워놓은 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아주 힘 있는 목소리로 그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매우 당황스런 일이었다. 이제껏 그런 일이 없었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환자를 위해서는 목사인 내가 기도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옆에 세워놓고 자신이 그 산모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이럴 수가…. 이젠 이런 것도 다 알아서 하는구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래, 그동안 가르쳤던 것이 바로 이것이지. 바로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 어느 해인가 한 소그룹 지도자가 아주 흥분한 모습으로 내게 와서 “목사님, 목사님, 우리 소그룹의 사람들이 제 생일이라고 옷을 사왔어요. 아주 예쁘지요?”라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제는 아주 목사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지. 기껏 키워놨더니 결국 나는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이렇게 되는 것이구먼’ 하며 잠시 심통이 났지만, 이내 사역의 열매를 함께 나누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기쁨이 저절로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전체 소그룹을 순회 방문하는데, 그런 경우에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소그룹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그저 한쪽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식사 교제만 하고 나온다.
하지만 그날은 예배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분도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고, 기도하는 분도 잠깐의 떨림도 없이 기도를 끝내더니 설교 요약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실제 설교자인 담임목사가 한쪽에 앉아있다는 생각에 조금 머뭇거리더니 그가 준비한 요약 설교를 담담히 정리해 내려갔다.
그런데 내 설교보다도 훨씬 더 일목요연하게 요약을 하는 것은 물론이었지만, 내가 설교할 때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어서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을 연발하는 것이었다(예배 때도 없었던 그 아멘의 소리).
잠깐 동안이었지만 ‘아니, 저분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나? 우리 교우들이 이 정도구나. 이젠 당당한 사역자들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이 나보다 더 깊이 있는 본문의 이해와 적용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보다는 자랑스러움과 행복감에 기쁨이 가득한 밤을 경험했다.

 

 

세상의 지도자들과 구별되는 고독
세상의 지도자들은 항상 고독을 느낀다고들 한다.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기 자리를 넘보며 뒤쫓아 오는 또 다른 추격자들로 인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달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중대한 결단의 순간에 언제나 혼자 결정하게 되고, 그래서 모든 책임을 한 몸에 걸머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오는 고독,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앞에 섰기에, 그리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항상 앞장서서 가야 하기에 외로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기 절정의 연기자나 배우가 모두가 떠나가 버린 텅 빈 공연장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또 다른 허전함일 것이다. 몸짓 하나하나, 대사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열과 성을 쏟아 놓았던 그에게 찾아오는 헛헛함을 말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목회자도 인간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고독과 외로움에 덧붙여 목회자로서 독특하게 경험하는 고독과 외로움과 씨름하며 목회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지도자에게 찾아오는 외로움은 세상의 지도자들의 이런 것들과는 구별되는 고독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스스로 서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그래서 자랑스러운 고독, 행복한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재충전을 위한 하나님과의 독대로의 부르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벌거벗겨 놓고 설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과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종종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을 보다 참되게 하며,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서게끔 인도하는 ‘쓴 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에 이야기되고 있는 리더십은 이전의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이고 문턱을 낮춘 리더십인 것을 생각할 때, 적어도 오늘날의 리더십, 특별히 성경적 리더십이 갖는 외로움은 옛날 전제 군주시대와 같이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고 명령하는 일방적인 지도자들이 갖게 되는 고독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와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제자훈련을 실천하는 지도자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경쟁의식에서 오는 고독
지도자들이 겪는 고독감은 때로는 다른 리더들과의 경쟁의식에서 올 때도 있다. 경쟁의식은 언제나 목회자들 간의 진정한 협력 관계와 유대 관계를 이루는 일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아픈 부분이다.
사울이 전해 들었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삼상 18:7)는 여인들의 노랫소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릇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만족하기보다는 자신보다 인정받는 새로운 예비 리더인 다윗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로 변하게 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이 멀어지는 것에서 오는 고통을 견뎌내지 못했다.
훨씬 후배인 어떤 사람, 제자훈련도 나보다 훨씬 나중에 시작한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사역에서 앞장서감은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주의를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 축하와 격려의 박수보다는 시기심의 불편한 마음으로 더 깊은 혼자만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쟁의식에서 오는 고독감을 극복하는 길은 성경적인 리더십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대접받기보다는 대접하고,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리더이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한 채 목회를 하게 되면 자신이 받은 달란트와 목회에 대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자족하며 “부한 데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한 데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됨을 확신한다. 물론 이미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곳곳에 갈등과 상처의 흔적들이 보이고 여전히 아픈 것도 사실이다.

 

 

적극적으로 고독을 받아들이는 리더
지도자는 항상 앞장서는 사람이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에 비해 앞선 사람이며 또한 선지자와 같이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사람들과는 어쩔 수 없는 간격이 있게 되고, 거기서 오는 이질감, 그리고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삶이 그러했으며,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시고 훈련시켰던 열두 명의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홀로 남으셨다.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 고독과 외로움을 친히 경험하셨다.
그런데 그 외로운 예수, 고독의 사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친밀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혼자 있는 그 고독의 시간을 지켜 나가셨다. 그 시간을 즐기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예수님을 좇아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 세상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성도란 세상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로움과 고독감은 반드시 더 이상 없애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더욱이 지도자인 목회자에게는 외로움과 고독을 리더로서의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고독을 즐기는 리더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독만큼 위대한 스승이 어디 있을까. 인간은 고독해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또 고독해야 그 앞에서 자신의 실상을 보기 때문이다. 곧 고독은 자아를 죽이는 연습이요, 또 삶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리더인 목회자로 하여금 진정한 공감과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는 안내 표시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만이 내 사정을 아시며, 그분만이 나의 모든 연약함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주인이시며, 그분만이 열방 가운데 공의를 하수처럼 흐르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왕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분의 보좌 앞으로 홀로 나아간다.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통해서만 나의 갈급함이 해갈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지도자에게 있는 고독, 그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도망가지 말고 즐겨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말한 것처럼 ‘고독과 대면하면 리더는 강해진다’는 말은 정당하다. 이제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재충전의 기회로, 보다 예수님 닮은 지도자로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예수님 닮은 목회자의 길로 여기는 사역자에게 있어 홀로 있음, 고독, 외로움은 더 이상 독이 아니라 득이 될 것이며, 그것은 피해야할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할 주님이 주신 기회이다. 그가 고독하면 할수록 그 공동체는 건강해질 것이다.

 

 


주정오 목사는 총신대와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총신대 일반대학원(Th.M 실천신학)을 졸업했다. 육군 군목과 후암장로교회 부목사를 거쳐, 현재 호주 시드니에 있는 열린문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