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2011년 12월

끊임없는 자기개발, ‘멈춤의 잠’에서 깨어나라

리더십 장영일 목사_ 대구 범어교회

리더가 남보다 앞서서 일하고, 그 리더의 자리를 오래 지속한다면 그는 분명히 지속적으로 자기개발을 통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을 것이다. 리더의 자기개발은 리더십의 유지에 기본적인 조건이다. 자기개발이 멈추면 결국 리더십은 끝나는 것이다.

리더십이 존중 받으려면

첫째, 공동체를 향한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리더가 공동체의 중심에 서서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멈춰 서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에겐 방향성 곧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그럴 때 구성원들이 그를 추종할 뿐 아니라 지지하며 뒤따른다. 그렇지 않게 되면 구성원들은 답답해하며 갈수록 불평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리더의 목적의식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그가 사역에 지쳐 있거나 타성에 젖어 이젠 구성원들에게 의지해서 떠밀려가겠다는 속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리더가 자기 변혁과 발전을 멈춘 채 현상유지 내지는 신분의 안전판을 찾고 있는 것이다. 리더의 이런 모습은 구성원을 실망시키게 된다. 결국 구성원이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으며, 그가 그 자리에서 내려올 날만을 기다릴 것이다. 

둘째, 걸림돌을 해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가 멈추어 서려고 하는 이유 중엔 걸림돌로 인한 것도 있다. 목적을 갖고 사역을 수행하다가 걸림돌을 만나면 연약한 리더는 그 목적을 놓치고 만다. 물론 리더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며 자기의 목표치를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민주적 리더가 지녀야 할 중요한 소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처음 가지고 출발했던 가치 곧 목적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가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그가 그 리더의 자리에 세워질 때, 구성원들은 그가 지닌 가치를 보고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 과정의 방법이나 수치의 변경은 가능하지만, 가치만은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리더십의 기본이다.
만약 그 가치(목적)를 왜곡시키려 하거나 무너뜨리려고 하는 걸림돌을 만나면 리더는 자기 자리를 걸고 싸워야 한다. 리더가 걸림돌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 가치를 붙잡고 세워나가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 그를 신뢰하고 따랐던 구성원들은 더 이상 리더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걸림돌이 가치(목적) 추구보다는 그것과 별 상관이 없는 일로 리더를 괴롭힐 때도 있다. 사실 걸림돌이 목적 왜곡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비본질적인 부분을 갖고 장난칠 때도 많다. 분규를 빚고 있는 교회의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리더는 그런 장난에 놀아나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리더는 부지런히 자기 내공을 쌓아가야 한다.
 
셋째, 가장 좋은 길은 곧 리더의 자기개발이다
걸림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리더가 꾸준히 자기개발에 힘쓰는 것이다. 자기 변화를 꾀하는 리더에게 대부분 구성원들은 존경을 표한다. 신뢰를 가진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구성원들은 리더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에 따라 걸림돌들이 더 많이 유발된다. 근래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당회를 하던 중 예배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를 당하였다. 예배가 조금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예배 준비에 쫓긴다는 말이었다(대구 범어교회는 주일 예배가 4부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오가는 차들로 주차장이 혼잡스럽다고 아우성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예배가 길다는 것은 곧 설교가 길다는 간접적인 항의이다. 설교자에겐 쓴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성령께서 얼른 깨닫게 해주셨다. 설교의 문제보다는 설교자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졌다. 즉 당회원들이 나에게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17년째 담임목회를 한 교회에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위기로 인식되었다. 나의 변화가 멈췄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분명 나에겐 상처가 되었지만 이 일을 나도 몰랐던 멈춤의 잠에서 깨어나는 도구로 삼을 것이다.
리더가 먼저 자기개발에 나서야 한다. 구성원에 의해서 강제적인 변화를 촉구받으면 결국 공동체에 상처가 된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부나 리비아의 카다피의 몰락이 그 전형이 아닐까 싶다.
목회자들도 이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강제 퇴위 못지않게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은 정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담임목사의 자리가 더 이상 철가방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끊임없는 자기개발이 촉구된다. 

리더의 자기개발의 길

첫째, 멘토를 찾으라
리더는 자기 앞에 아무도 없으면 오만해지거나 자기 착각에 빠지기 쉽다. 리더에게도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는 가까이 있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날 수 있는 실제적인 주변 인물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안 된다면 언제든 펼쳐 읽으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고, 먼저 간 인생 선배의 유지 혹은 유덕이 될 수도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리더는 없다. 언제나 자기를 점검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 도우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멘토를 거울에 비유한다면 거울 하나로는 자기의 한 면밖에 비춰볼 수 없다. 그러나 거울이 많으면 자기의 여러 면들을 입체적으로 살피며 조언을 얻게 된다. 물론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자기 기분만 맞추어주는 거짓 멘토)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된다(딤후 4:3).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독선가가 된다.
나에겐 3분의 스승이 계신다. 나를 목회자로 키워주신 故 김덕신 목사님(대구 동부교회 원로)과, 목회신학의 방향성을 잡게 해주신 故 이상근 목사님(대구 제일교회 원로),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영성의 세계를 보게 하신 故 엄두섭 목사님(은성수도원 원장)이시다. 이 목사님과 엄 목사님은 나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그분들의 설교와 책들이 나에게 그런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세 분 모두 이젠 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지금도 그분들은 나에게 멘토가 되고 있다. 
목회자의 멘토가 반드시 고명하신 목사님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에겐 또 다른 스승들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거창고등학교 설립자이신 전영창 선생님이다. 그분의 유고집 『그들에게 누가 갈 것인가』라는 책은 늘 잊혀지지 않는 책이다. 민족 사랑과 복음 정신으로 교육의 지표를 삼아 학생들을 기독교 가치관에 철저한 사람으로 키워 세상에 파송하려는 그분의 교육철학은 나의 목회철학에 늘 도움이 되고 있다.   

둘째, 동류(同類)들을 보고 배우라
이뿐 아니라 요즘 주변에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신다. 각기 받은 은사를 통하여 특수 사역을 하고 있거나, 공부를 많이 해서 학문이 깊은 분들도 있다. 부럽기도 하고 때론 라이벌 의식을 갖기도 한다. 이처럼 도전하는 선배 혹은 동류를 많이 얻어야 한다. 동류 중 도전의식을 느끼게 해주지 못하는 자들은 가능하면 피하라. 세월을 아껴야 한다. 그러나 교만하면 안 된다. 동류에게서 배울 게 별로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스스로 몰락한다. 옛말에 아이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고 했다. 그런 자세를 가진 리더는 도리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요즘 수많은 목회 세미나들이 개설되고 있다. 신중히 골라서 참석하면 큰 도움이 된다. 배움은 평생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더 이상 배움을 얻으려 하지 않으면 그의 진보는 멈춘 것이다. 물론 소위 세미나 중독증 환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세미나 참석이 자기개발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배움을 향한 열린 마음이 꼭 필요하다. 학위를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개발을 위한 배움이어야 한다. 배움을 찾는 리더에게는 그를 따르는 팔로워들도 많을 것이다.

셋째, 한적한 곳을 찾으라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며 돌보시고, 회당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다가도 새벽 미명에는 대부분 한적한 곳을 찾아가셨다. 당신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과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예수님은 일에만 빠지지 않으시고, 홀로 머물 곳을 찾았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셨다.
목회자들이 사역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일을 회피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의 홀로 멈춤도 필요하다. 목회자의 자기개발은 물리적인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사역자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개발을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자”(엡 4:13)고 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힘쓰라고 했다. 이런 신령성의 개발은 홀로 주님 앞에 멈추어 서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학교에서도 이 영성 개발 커리큘럼이 부족하다. 사역자들은 먼저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한적한 곳을 자주 찾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자가 되길 원하시지만, 더 원하시는 것은 주님과 데이트하는 것이다. 모세도 출애굽의 사역에서 40주야를 호렙산에서 친구처럼 여호와와 대면하며 데이트를 했다(출 33:11). 그 후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야 할 정도로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했다.
한적한 곳이 반드시 기도원일 필요는 없다. 교회의 목양실도 좋고 아니면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좋다. 할례, 곧 세상과 끊는 순간이 생기면 다 한적한 곳이 된다. 목회자는 세상과 끊는 할례를 계속 시행해야 한다.

감히 내가 자기개발이란 주제를 다루었다. 사실 나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부족한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 젊은 신진 목사로 통했는데, 이젠 50대 한가운데 와 있다. 그러다 보니 신진이 더 이상 아니다. 벌써 사역의 주름이 많이 생겼고, 걸림돌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적도 없지 않다. 갈수록 자기개발에 대한 부담감과 싫증이 내 마음속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나이 탓만이 아닌 것 같다. 바울의 말씀대로 공중권세 잡은 자의 공격 같다. 다시 눈을 떠서 대적을 직시해야겠다.
리더는 “이젠 되었다”고 속이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이 싸움에서 지면 사탄에게 조롱당할 뿐 아니라 도태되고 만다. 리더의 자기개발은 신앙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되기때문에 끊임없이 자기개발에 힘써야 한다. 리더의 자기개발 없이는 교회가 부흥할 수 없다. 교회는 리더의 변화만큼 변화되고 그의 키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장영일 목사는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 Div.), 미국 리폼드신학교 신학석사(Th. M.)와 선교학박사(D. Miss)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신대 선교학 교수, 교갱협 대구경북 대표회장, OM선교회 대구지부장, 대구 범어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