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리더십

2014년 04월

솔직한 오픈으로 풍성해지는 소그룹

순장리더십 박종식 집사_ 강남교회

어렸을 때 우리 가정은 교회를 가지 않으면 혼나는 분위기였고, 나는 뜨뜻미지근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중3 겨울 수련회에서 하나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고, 나 또한 그분의 초청 가운데 법조인이 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
91년 법학과에 입학하고, 94년 제대 후 나는 인생의 반쪽인 아내 고희라 자매와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결혼을 반대하시던 장모님께서 승낙을 해주시면서 “사법시험 공부는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으셨고, 결국 나는 꿈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꿈을 저버린 내게 사회는 취업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졸업 전인 97년 11월 갑자기 대한민국에 IMF가 터졌다. 졸업 후 6개월 정도 실직상태에 있을 때, 국가에 실업자가 하도 많으니, 나라에서 공공근로라는 명칭으로 젊은 실직자들을 몇 달간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줬고, 그로 인해 결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결혼은 했지만, 삶은 평안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가면 갈수록 자꾸 하나님과 멀어져만 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교회에 가면 인본주의와 기복신앙적인 설교만을 강단에서 강요하는 목사님을 보면서 자꾸 그분을 비난하고 비판하며, 마음속으로 ‘당신이나 잘사세요’라고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내 삶과 신앙 상태는 그렇게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2004년 1월부터 교회를 옮기기로 아내와 상의하고 이 교회 저 교회 탐방을 다녔다. 그러던 중에 대학 동기인 임규호 형제가 강남교회로 나를 인도했다. 설교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 오늘도 이렇게 죄 많은 종이 주님의 말씀을 들고 섭니다. 저의 허물을 가리시고 온전히 주님의 진의만이 선포될 수 있게 하옵소서”라는 목사님의 기도가 먼저 내 맘을 울렸다.
설교를 듣고 나서는 마치 내가 진흙 구덩이에 있다가 샤워를 한 것 같은 개운함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바로 강남교회를 등록했고, 그 뒤로도 아내와 주일 설교 내용을 일주일 내내 얘기하면서 행복하게 교회를 다녔다.


소그룹을 통해 마음을 열다
우리 부부는 소그룹에 참여하기 위해 청·장년부에 나가게 됐다. 처음 참석했을 때, 다음 주 모임은 가정 모임으로 최성윤 리더님 집에서 모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라이프스토리를 15분 정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모임에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공교롭게도 아내가 그 주에 눈병에 걸려서 힘들어했는데도, 꼭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자 리더님 집에 다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면서 각자의 라이프스토리를 나누게 됐다.
고아와 같이 자라왔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리더님의 이야기, 이웃마을로 재가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사님의 이야기, 또 아버지 없이 지내며 어머니의 고생을 눈으로 보고 지내야 했던 집사님의 이야기 등 순원들의 라이프스토리를 듣는데, 내 안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다. “종식아, 너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란다.” 조금씩 마음이 열렸고, 백수였던 나는 당시 받을 수 있는 모든 셀 사역훈련을 다 받으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2년 동안이나 계속됐던 실직 상태는 여전히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구멍이었다. “하나님 그런데 왜 직장은 주시지 않는 거죠?”라고 질문하기도 수차례였다. 신앙은 회복돼 가고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일할 곳이 없다는 자괴감과 길을 걸으면 보이는 수많은 건물 중에 내가 일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회복돼 가는 신앙을 다시금 무너뜨리려고 했다.
이렇게 신앙적인 회복과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나는 서서히 제자훈련과 사랑방을 통해서 주님께로 조금씩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직상태였던 내게 청·장년부 사랑방 순장으로서 섬길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부족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 부부는 순장 사역을 하기로 결단했다.

 

첫 사랑방, 먼저 나를 오픈하다
실직자인 내게 첫 사랑방 순원들은 회계사인 형제와 대기업에 다니는 형제들까지 사회적으로 정말 쟁쟁한 이들이었다. 사랑방 모임을 준비할 때 너무 부담이 됐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모임에 임했다. 왜냐하면 사랑방 모임에 대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사랑방 모임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그 모임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과 둘째, 모임에서는 철저히 자신의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즉 사랑방의 순장은 우리 가정이지만, 순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과 사랑방 모임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삶에 집중하고 십자가 앞에 비춰 부족한 자신의 삶을 나누는 자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순장인 나부터 실직 상태인 내 모습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나누고, 이런 상황들을 말씀 가운데 조명하면서 기도를 부탁하니, 나와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는 형제들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직장에서의 어려움과 직장 내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누게 됐다. 그리고 항상 모임을 마칠 때는 서로의 기도제목들을 내어 놓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그 기도제목들이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에 품고 기도해줬다.
그러자 사랑방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갔고, 사랑방 내에서의 나눔은 더욱 풍성해져 갔다. 지난주에 있었던 부부싸움 얘기라든지, 아니면 지금까지 얘기하지 못했던 시어머니와의 갈등, 또는 장모님과의 갈등 등 솔직한 나눔들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랑방 내에 다음 순장 가정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권면했을 때는 자신 없어 하던 이들이 예비 리더훈련과 교회의 제자훈련을 통해서 순장 가정으로 세워져 갔다. 어느덧 순장으로서 섬긴 지 10년이 됐고, 그러면서 5번의 분순(사랑방이 부흥해서 2개로 나뉘는 것)을 경험했고, 부족한 가정을 통해서 사랑방의 많은 가정들이 좀 더 말씀 가운데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됐다.

 

소그룹의 어려움, 순장 모임의 중보기도로 극복
사랑방 순장으로 섬기기란 항상 쉽지만은 않았다. 자주 겪게 되는 어려움은 사랑방 모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주변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모임의 분위기를 흐리는 지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의 특징이 모임 중에서 자신의 얘기를 오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도제목을 내놓을 때도 자신의 기도제목이 아니라, 아내의 기도제목을 내놓는다든지, 아니면 기도제목이 없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 지체들에게는 처음부터 모임에서의 나눔을 강요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자신을 오픈하기 힘든 지체들은 먼저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매주 1회 이상 꾸준하게 전화 심방을 통해서 그냥 일상적인 것들을 물으면서 사랑방 모임 전에 어색함을 없애 주도록 했다. 모임에 오면 절대로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했고, 어쩌다가 그 지체의 잘하는 부분들이 보이면 그 부분들을 칭찬해주면서 인도했다.
모임이 본질을 벗어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 4년 전에 같은 사랑방이었던 순원이 있었다. 남편은 철학을 전공한 중학교 도덕 교사였는데, 그 형제는 모임 중에 나눔을 할 때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즐겼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모임을 인도하는 순장인 우리 부부에게 따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임은 자주 본질을 벗어났고, 어떤 경우에는 모임을 어색하게 마치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이런 어려움을 청·장년부 순장 모임에서 오픈하면서 순장 모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를 받게 됐다. 그리고 그 형제 가정과 개별적으로 식사하면서 그 형제의 어렸을 때부터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고, 그를 조금씩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또 모임 중에서 그 형제의 돌발적인 행동이 나오면 사랑방 내의 다른 가정들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시켜 주는 등의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으면서 그 형제도 모임에 잘 정착하게 됐다.
3년 전 청·장년부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맡았던 사랑방에서는 신앙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다가 실족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던 형제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 형제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때 새가족 교사로 가르치다가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였다. 처음에는 너무 난감했다. 사랑방 모임 중에 그 형제는 자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했고, 그 형제의 부인 자매는 신앙생활 하나만 보고 결혼을 했는데 지금은 남편이 저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니 너무 힘들다고 했다.
사랑방 모임은 매주 살얼음판을 지나는 것처럼 이어져 갔다. 더욱 난감했던 것은 성경적인 지식이 많았던 그 형제가 사랑방 모임 중에서 본문에 대해 도움이 되는 지식을 모임 중에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순장인 내가 순장의 권위를 손상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내 감정을 모임 중에나 그 형제에게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이 경우에도 먼저 청·장년부 담당 교역자에게 보고하고, 청·장년부 순장 모임에 오픈하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사랑방 모임에서도 순원들 모두가 그 형제의 신앙적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던 그 형제는 그런 기도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신기하기는 했지만 계속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 형제의 가정과는 좀 더 개인적인 모임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 형제가 왜 그런 신앙적 위기에 이르게 됐는지 알게 됐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함께 사랑방 모임을 하면서 우리가 청·장년부를 졸업할 때는 그 형제가 다시금 하나님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는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청·장년부 순장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소그룹 인도 원칙을 세우다
모임을 하다 보면 교제 중심으로 모임이 변질되거나 나눔 중에 나오는 얘기들이 외부에 유출되는 등 모임이 힘들어지는 원치 않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꼭 사랑방이 편성되고 나면, 첫 모임에 사랑방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사랑방 십계’를 나누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모임에서 지켜져야 할 내용과 예배 및 신앙생활에 있어서 몇 가지를 나눈다. 그리고 제자훈련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영성 체크리스트를 매주 순원들이 스스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리스트를 표시하다 보면 신앙의 기본을 점검할 수 있어서 좋다.
또 사랑방이 새로 만들어지면 되도록 빨리 잠포(잠을 포기하는 모임)나 엠티를 가서 순원들 모두의 라이프스토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순원들이 서로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싹 트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방 모임 때마다 이 모임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꼭 선포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원들 모두가 모임 중에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내가 맡았던 사랑방에는 유난히 실직자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던 것 같다. ‘왜 그러셨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2년 동안 실직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지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기회를 주신 것 같다.
한 가정은 자녀가 3명이 있었는데, 차가 없어서 항상 주일 사랑방 모임이 끝나면 우리 가정 4명, 그 가정 5명이 함께 우리 차에 가득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2년 지나 자녀들이 커서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자, 우리가 차를 바꾸면서 그 차를 그 가정에 줄 수 있게 됐다. 별거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하심을 느끼는 기회들을 순장 사역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박종식 집사는 2004년부터 강남교회 출석했으며, 2005년부터 부부사랑방 순장으로 섬겼다. 현재 제3야곱 남전도회 회장과 새가족부 총무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