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우은진 기자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이랜드’라는 기업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독교계에서는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 그리고 가장 모델적인 기독교기업의 선두주자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반면, 일반 기업계에서는 ‘저렇게 정직하게 경영을 해도 기업이 운영 된다’라는 새로운 상도덕을 세운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이미지를 튼튼하게 쌓는 데는 젊은 시절 제자훈련으로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을 정립한 한 사람의 경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이랜드 그룹 회장 박성수 장로(사랑의교회)가 그 불가능의 벽돌을 쌓아 올린 주인공이다. 신앙의 빛을 드러내기 쉬운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것도 투명성을 지키기 힘들다는 치열한 기업사회에서 어떻게 예수의 제자로서 삶을 올곧게 살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대학시절 만난 한 스승과 제자훈련에서 찾을 수 있다. 박성수 장로는 그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을 이랜드라는 기업과 그의 삶 속에서 온전히 재생산해 오고 있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미래를 만든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모의 기도가 중요함을 항상 강조한다. 오늘의 그를 만든 첫 번째 원동력은 헌신적인 크리스천이었던 부모의 기도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생활을 했지만, 한동안 단지 교회멤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신앙을 갖게 된 것이 1971년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를 통해서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 왔던 그는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일까’로 고민하다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결심하고 여러 큰 교회를 전전했다. 당시 대학교 모임 시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한 친구가 ‘나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술을 안 먹는다’고 선언하는 당당한 모습에 반해 그 친구가 다니던 성도교회로 오게 됐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친구보다는 선한 길로 인도해 주는 친구가 중요함을 알았다. 그곳에서 그는 유년부 전도사로 사역하던 옥한흠 목사를 만났고, 좋은 믿음의 친구들과 인생을 바꾼 제자훈련을 경험했던 것이다.
박 장로는 “그 친구들과 옥한흠 목사님을 만난 것은 모두 평소 부모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나 역시 두 자녀들을 위해 매일 좋은 목사님과 친구, 교회, 배우자, 이웃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평생 배우는 자세와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비전 얻다
처음 들어간 대학은 그가 원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 때 박 장로의 모습은 장발에다 미군 더블 바바리를 입고 승마용 롱부츠를 신고 커다란 스포츠 백을 메고 다닐 정도로 패션에 대해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성도교회 대학부의 일원이 된 것이다.
당시 한국 교회에는 대학부라는 존재가 아직 있지 않았고, 청년회란 이름의 예배 후 잠깐 모이는 모임만 있을 때였다. 이곳에서 그는 10명이 채 안되는 대학 1,2학년 그룹에 들어가 제자훈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간단한 프린트물로 성경공부를 했는데, 사람이 늘고 열심이 생기자 도시락을 싸와서 오후 시간까지 모였다. 오래지 않아 대학부 인원이 100명이 넘어서자 조그만 교회가 대학부 때문에 유명한 교회가 돼버렸다.
그는 “옥 목사님이 본래 자신이 맡은 부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 대학생들을 통해 제자훈련이라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교회현장에 접목시켜 혁신을 이뤘다”며 “당시 옥 목사님의 사택에 갈 때마다 늘 책을 펴고 지독하게 그리고 철저히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회고했다. 그는 늘 집중하며 배우려는 스승의 모습이 사랑의교회가 대형교회가 되었을 때조차 변하지 않은데 대해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스승을 통해 비전에 대해서도 배웠다. 자신은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돈을 모으는 것보다 바르게 쓰는 자세에 대해 배운 것이다. 당시 옥 목사는 성속 일원론에 대해 강조했는데, 그때 제자훈련을 받은 많은 청년들이 졸업 후 신학교보다 일반 직장에 가서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됐다. 그 역시 이때 비즈니스를 통한 세계 선교의 비전을 받았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박 장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으로 한창 젊은 청년 시기에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28세가 되어서야 그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 때는 이미 취업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후였다. 이때 대학 캠퍼스에서 무임 사역자로 2년간 일했는데, 자신의 영적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기간이었다. 가르치면서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그 뒤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가, 과외금지령이 내려지자 돈을 빌려 이대 앞에서 2평짜리 옷가게를 창업했다.
작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중에 더 멋진 길이 열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로 매달렸다. 그런데 이 옷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됐다. 위기는 기회가 됐다.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려 살면 위기도 기회가 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우연히 손님이 찾아와 경희대에 분점을 내고 싶다고 당시 의류업계에서는 처음이었던 프랜차이즈를 먼저 제안해 왔다. 지금은 이랜드 계열 대리점 수가 3,500여 매장에 이른다.
그는 “내게 장애물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기회였다”며 “그때 장애물이 없었으면 지금쯤 국내 다른 기업에 근무하거나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웃음 짓는다.
앞문 뒷문 다 막히면, 하늘 문이 열린다
그렇게 시작한 이랜드는 고객에게 신뢰를 주며 급성장했다. 광고도 스포츠신문이나 세상에 유해한 잡지에는 게재하지 않았다. 이런 광고비를 지출하는 대신 브랜드의 신뢰감을 높이는데 쏟았고, 비자금이나 접대비는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후 여러 서브 브랜드를 출범시켰고, 유통과 건설 등 여러 사업으로 확장했다.
이때 그가 중요시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고객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했듯이,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까’라는 황금율을 가지고 섬기자 성공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또 찾아왔다. 새로운 의류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고, 기존 브랜드들도 시장에서 하락해 갔다. 97년 외환위기가 오자 더 어려워졌다.
한마디로 사막과 광야라고 말하는 박 장로는 전 중역진들과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다. 앞문과 옆문이 막히고, 뒷문마저 막힐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신다는 놀라운 역사를 이 때 경험했다. 은행에서도 돈을 빌리기 힘든 시기에 한 외국 투자자가 와서 이랜드에 투자해 기적적으로 회생했던 것이다. 이들은 다른 회사들도 당시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은 즉, 다른 기업들은 모두 이중장부가 있더라는 것이다. 이랜드처럼 정직한 장부가 없다고 했다. 그때 박 장로는 “보통 때는 정직하면 손해 보는 듯해도 결정적일 때는 오히려 정직하면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을 존중할 때 기대이상의 일을 해 낸다
제자훈련을 통해 그가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일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박 장로는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으셨다”며 “그러나 사람에 투자하는 것은 열매를 맺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알아도 실천하는 경영자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사람을 중요시하고 위임하며 존중해 줄 때, 그 존중 받은 사람이 기대 이상의 일을 해내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마치 옥한흠 목사가 성도교회 대학부 청년들에게 사역을 위임하고 존중한 결과, 신나는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듯이 말이다. 그는 이랜드가 돈을 벌어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이지만, 직원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사목을 두고 있으며 성경공부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하 직원 4명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변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는데, 나중에 그들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 귀한 일꾼으로 사용됐다.
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들보다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운 사람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훈련 받은 것이다. 그의 이런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이랜드를 퇴사한 직원들의 입에서도 종종 나온다. 편지를 보내 감사를 전하며 인생의 학교인 직장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에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교회와 세상의 성공원리는 다르지 않다
한편, 그는 미국에 출장 가 있었을 당시 귀국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격심한 노동의 기회를 주셨다. 아내와 함께 짐을 나르는 일을 하면서 그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수고를 깨닫고,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직원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고, 후에 회사에 돌아갔을 때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두 번째는 아내에게 감사하지 못한 점이다. 지금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정에 대한 그의 지침은 하루의 2분의 1을 집에 있자는 것으로, 저녁에 아내와 꼭 손을 잡고 이런 저런 기도를 하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한 가지 더 주신 선물은 그동안 기업의 후계자를 세우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귀국 후에 회사에 가보니 이랜드는 각 회사의 경영자들을 통해 오히려 전보다 더 경이로운 실적을 거두고 있었고, 직원들도 사기충천해 일하고 있었다. 제자양육과 경영의 성공여부는 지도자가 떠난 뒤에 알 수 있으며, 교회와 사회의 성공원리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그는 “내 인생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내 인생을 계획하신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인 결혼과 직장은 그 점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평생을 같이 해야 할 것이기에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좋아해야 하며, 남에게도 유익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직장을 생계나 자아실현의 장소로 여기는데, 크리스천은 직장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calling)으로 알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한복음 17장 4절 말씀을 좋아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제자훈련을 통해 비전 세 가지를 얻다
그의 이런 생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제자훈련을 통해 그의 몸에 체화된 신앙원리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경건의 시간과 기도 시간을 습관화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하루의 처음 한 시간을 기도로 시작한다. 이 시간에 지혜와 에너지 공급, 회개가 이뤄진다. 사실 신앙생활 20년을 해도 설교에만 의존하는 신앙인들이 많은데, 이는 1년을 20번 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서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기도훈련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 됐다. 이것 때문에 졸업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고, 하나님과 스스로 동행하려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두 번째는 세계 비전에 도전 받은 점이다. 그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비전이 주어졌다는 것과 그 비전은 세계비전이어야 한다는 옥 목사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뜻은 전혀 다른데, 한 교회의 장로로서만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이랜드에는 국내와 해외에 5천여 명씩, 1만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 앞으로 그들 가운데 세상에 가치 있는 기여와 영향력을 미치는 경영자 100명을 키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
세번째로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서 주인이 되신다(lordship)는 사실이다.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청지기일 뿐이다. 그래서 회사 기도실에 가면, 상징적으로 예수님의 의자가 있는데, 중요한 의사결정시 반드시 기도시간과 기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다.
비전을 구체화해 사람을 키워 실행케 하라
그는 구체적으로 K100, C100, W10을 놓고 기도 중이다. K100은 한국 고객 모두에게 일년에 이랜드 상품과 서비스를 100개씩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C100은 중국에 100개, W10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10개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비전이다.
또한 직업을 통해 선교와 사회사업을 하고자 한다. 사도 바울처럼 직업의 모든 과정에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하고, 사업을 통한 이익은 사회로 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랜드는 기업으로 벌어들이는 순익 가운데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반영구적인 기부 시스템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긴급구호, 장학사업 등을 실천하고 있다.
더불어 소명의식을 가지고 제자답게 사는 최고 경영자(CBO) 100명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핵심적인 경영자 그룹과 중역 그룹이 약 50명 정도 있는데, 이들 때문에 3조원 정도의 매출이 유지 된다”며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내부에서 키워진 인력으로 이 사람들을 만드는데 25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그 방법은 제자훈련의 사람을 키우는 원리와 동일하다. 제자훈련의 일부 내용도 그대로 하고 있다. 경영자 회의 맨 첫 시간은 기도실에서 30분 동안 같이 기도하고, 암송, 경건의 시간을 갖고 나누기, 회의 중간 중간 기도하는 등 회의와 제자훈련을 하나처럼 해왔다. 물론 참여자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리더들이 재생산된 것이다.
한편, 그는 결혼의 목적도 사랑이 아니고, 재생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와 결혼했으면 제자답게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재생산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성장한 증거란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듯이, 영적으로도 자기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즐거운 삶을 살뿐 다른 이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옥 목사님은 34년 전 언제 자라 가치를 나타낼지 모르는 대학 1학년생들에게 투자하셨다”며 “그 작은 투자 하나가 지금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아서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라서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게 되었듯이 나 또한 지도자 100명을 세우도록 앞으로 25년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증인의 삶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