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깨운다

2016년 01월

인간 영혼의 선지자 도스토옙스키

문화를깨운다 신국원 교수_ 총신대학교

오직 한 권의 책만 소지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택할 것이다. 실제로 4년간 오직 성경만 가질 수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죄인들이 우글거리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성경을 수없이 읽었고, 삶이 변화됐다. 『죄와 벌』(1866)을 비롯해 수많은 걸작 소설을 남긴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인간 영혼의 선지자’라 불린다. 대개 위대한 예술이 그렇지만 그의 기독교 문학도 치열한 삶의 열매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가 죽기 직전에 완성한 가장 완숙하고 기독교적 예술성이 잘 배어 있는 작품이다.
 
가난과 고난의 문학
모스크바 국립도서관 앞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전철역도 있다. 그만큼 그는 러시아인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다. 도스토옙스키는 영혼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종교적인 소설가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삶은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는 낭비벽과 도박으로 평생 돈에 쪼들리며 살았다. 그리고 공상적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사형 집행 직전에 간신히 생명을 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두가 그의 예술과 문학을 이루는 귀한 초석이 됐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소설은 25살 때 쓴 『가난한 사람들』(1846)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가난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헤쳐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부모로부터 검소와 절약을 강요당하며, 부유한 친구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린 경험을 그려 낸 것이다. 그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도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돈이 사람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돈 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부모까지 죽이기도 하는 애환을 누구보다 깊이 그려 낼 수 있었다.
그는 반체제 지식인들 모임에서 불온 문서를 낭송했다가 반란죄로 체포됐다. 황제는 작은 죄에도 극형을 선고하고 집행 직전에 사면함으로써 위협과 자비를 동시에 구사했다. 두건까지 덮어쓰고 총살을 위해 기둥에 묶였다 풀려난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간질 발작으로 평생 고생한다. 그의 작품에 간질로 고통당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와 연관한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이런 도스토옙스키를 기독교 작가라고 할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기독교 문학을 논하려면 『부활』과 같이 명시적인 기독교 주제로 소설을 쓴 톨스토이를 주목하는 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톨스토이는 평생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말년에 산상수훈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소유를 구제로 내어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뿐 아니라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제만 보더라도 그것을 기독교 문학으로 꼽아도 될지 의문스럽다. 이 소설은 제목과 달리 가족과 형제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콩가루 집안’의 살부극(殺父劇)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와 유산을 놓고 다투는 것도 부족해 한 여성을 놓고 치정 싸움을 벌인다. 그가 아버지 살해범으로 체포당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복동생 이반은 아버지뿐 아니라 신에게 도전하는 극단적 사상을 펼친다. 결국 살인은 그의 사상에 사주된 하인으로 살아온 숨겨진 사생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 작품에서 소설 속 소설인 ‘대심문관’ 이야기에는 독신적 내용이 가득하다. 예수가 15세기 스페인에 다시 나타나 기적을 행하다 이단 재판관에게 체포돼 고초를 겪는 이야기다. 대심문관은 대중에게 빵보다 자유를 택하도록 권하는 예수를 질타하며 화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한다. 패륜적 부친 살해에 독신적 언동과 추한 인간사로 가득한 이 소설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이는 구원에 대한 갈망과 소망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도스토옙스키를 뛰어난 심리 소설가일 뿐 아니라, 기독교 작가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성경적 시각에서 자신뿐 아니라 인간 심연을 깊이 성찰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줬다.
 
기독교 문학의 요소들
이 소설의 초점은 누가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는가 보다는 과연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이 가족 중 그 누구도 부친 살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부친에 대한 둘째 아들 이반의 증오는 그 뿌리가 사신신학으로 뻗어 있다.
그가 내뱉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정말 신이 없다면 니체의 말처럼 그 어떤 행위를 금할 이유와 근거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이미 한 세기나 앞서 갈파한 도스토옙스키의 혜안이 번뜩인다.
그러나 이 가정에도 구원의 가능성은 있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수도원의 조시마 장로의 수제자다. 그는 극심한 비극 속에 남겨진 구원의 불씨다. 알료사는 장로의 유언을 따라 수도원을 떠나 동네로 내려온다. 유약한 알료샤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고,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소망을 품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등장인물 누구도 우상화하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에게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 작품 내내 성인처럼 존경받던 조시마 장로는 중반을 넘지 못해 죽는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성인 역시 인간일 뿐임을 역설한다.
기독교 문학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성경을 주제로 하거나 신앙인이 썼다고 해서 무조건 기독교 문학이라 할 수는 없다. 작품 자체가 기독교적 주제를 드러내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얼마나 명시적이어야 하는지는 간단하지 않다. 예술의 본질이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창작을 통한 세계관의 투영이라면, 이 작품은 분명히 성경적 관점을 잘 반영한다. 위대한 예술은 작품에 비춘 세상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고전적인 기독교 문학의 대표로 꼽음에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