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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유재희 집사 _ 영화평론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타락천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모든 것은 과거로 흘러간다.” 이 말은 모든 것이 과거가 돼버린다는 뜻이다. 영화 속의 벙어리 청년(금성무)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데이트 장소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이 이제 그녀의 과거가 돼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와 그녀는 언젠가 기억 속에 각인된 서로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를 때 과거가 현재와의 단절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과거로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역사로 남아 현재와 공존하는 것이다. 만일 과거와 현재 사이에 이러한 교류가 없다면, 삶은 단지 조각난 순간들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과거가 되고 역사의 일부로 남는 것이 외롭고 쓸쓸한 일일까? 스스로 과거가 될 때 누구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무대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것 자체가 과거가 되어가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깨를 딛고 올라가 새로운 세대를 창조한다. 그러니까 과거가 없다면, 현재는 창조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에게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면서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기막히게 그린 영화 한 편이 있다. 발레리나가 된 소년의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가 바로 그 영화다.
영화의 무대인 1984년의 영국의 던햄 지역은 탄광노동자의 생존권을 건 지루한 파업이 계속되고, 빌리 엘리어트의 아버지와 형도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조와 공권력,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뚜렷한 대립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