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11년 02월

설날과 기독교 문화

문화읽기 조성돈 교수 _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설날은 우리 아이들의 가장 큰 명절이다. 크리스마스가 그간 받고 싶었던 선물을 산타할아버지를 통해서 받는 날이라면, 설날은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께 인사하고 세뱃돈을 받는 날이다. 아마 우리 모두 어릴 적 받았던 세뱃돈에 얽힌 추억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명절은 아마 이렇게 우리들에게 어릴 적 추억을 만들어주는 귀한 날인 것 같다. 그간 보지 못했던 친척어른들, 그리고 사촌들이 모여서 우리가 한 핏줄에서 났다는 한 공통분모로 인해 서로를 반가워하고 살가워하는 시간을 갖는 축복의 날인 것이다.
그래서 명절에 먹는 음식이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설날이면 떡국에 만두를 넣어서 푸짐하게 먹던 기억, 추석이면 토란국에 밥을 먹고 햇밤을 까서 먹던 기억이 명절과 함께 살아나는 것은 바로 그것을 함께 먹었던 친척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집이라고 명절마다 그 많은 일가친척들을 다 손대접한 것이 너무 고맙다. 아버지 형제 8명에 그에 딸린 식구들까지 수십 명에 달하는 친척들이 그 좁은 집에서 끼이고 끼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차례를 지낸다고 몸을 포개가며 절을 하고,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놀이를 즐겼던 것이 참 아름다웠다.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한 가족이 다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어른들이 손아랫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네며 어른들께는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복된 명절이다. 이날에는 세배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새해인사를 통해서 세대와 세대를 잇고, 서로에게 축복을 나눌 수 있기에 참 고마운 날이다.

명절 의미의 변화
우리나라의 명절은 크게 설날, 대보름날, 단옷날, 한가윗날, 동짓날 등이 있다. 명절은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과거 이 사회에서 태생되어진 날들이 많다. 그것은 계절과 때에 따른 구분으로 한 해를 구분 짓고 축제를 통한 공동체의 단합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또한 노동과 여가의 시간이 구분되기 어려운 농경문화에서 계절을 따라 며칠을 쉴 수 있는 쉼의 날로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도 그렇겠지만 농사라고 하는 것이 어느 날을 정해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주일이라는 주어진 시간이 있어서 하루를 쉴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가족들 먹여 살리기도 힘들었던 시절, 남의 땅에서 겨우 농사짓던 시절, 그것도 못되면 남의 집에서 일을 보아야 했던 시절, 여가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았고,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이 명절이 되면 하던 일손을 놓고, 명절 핑계로 놀이도 즐기고 했던 것이다. 
산업화가 사회 산업의 근간이 되는 오늘날에는 농경문화에 근거한 많은 명절들이 잊혔고 단지 설날과 추석만이 의미 있게 지켜지고 있다. 이제 명절은 축제적 의미나 쉼의 의미보다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일 수 있는 모임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그래도 일 년에 몇 번 모일 수 있는 계기로서의 명절이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한 마을에 모여 살았을 형제와 사촌들이 이날 고향에 함께 모여 한 부모와 한 조상이라는 유대감 속에 정을 나누고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명절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의 명절 이해
그러면 우리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는 이 명절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명절이면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서 큰 축제를 열었다. 하도 많은 아이들이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게 누구 자식의 자손인지를 모를 정도로 큰 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들 이름이 헷갈려서 이리 불렀다, 저리 불렀다 해서 온 가족이 웃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가족이 줄어서 모일 수 있는 가족이 몇 안 된다. 내 경우도 2남 1녀의 형제 중 형님은 외국에서 살고, 누님은 시댁으로 가고, 혼자되신 어머니와 우리 가족만이 명절에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의 범위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절 당일을 좀 피해서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모이고 있다. 이날 보기 힘들었던 고모네 가족들도 보고, 사촌누이네도 보고, 큰아버지, 큰어머니까지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유일한 목사인 내가 기도하고, 어른들이 덕담을 나누어 주시고, 서로를 향해서 합동으로 세배도 드리는 날이다. 이 날만큼은 어른들이 손자들에게 옛날 얘기도 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어릴 때 얼마나 짓궂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날이다. 심지어 환갑이 얼마 안 남은 큰아버지가 어릴 때 할아버지 무릎에서 오줌 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명절이 되면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스트레스에 관한 것들이다.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이 뜻 깊은 날에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아서, 사랑이 아니라 분노를 품고 오는 사람도 있고, 큰 가족 대접하느라 여자들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명절에 해서는 안 되는 말 10가지 등이 발표되기도 한다. 심지어 명절이 지나면서 이혼도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가족이 모이는 복된 시간이 악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번 명절에는 서로에게 덕이 되는 시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둘째, 야곱의 축복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설날 우리는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기 전에 덕담을 해주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 어른들이 기도를 해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아버지가 자손들을 축복하는 전통이 있었다. 특히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 아들 둘을 데리고 가서 그 축복을 받았다. 그 아버지 야곱도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얻고자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일까지 벌인 적이 있다.
설날에 이런 축복을 주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다. 믿음의 어른이 기도하며 축복할 때 아이들이 머리 숙이고 복을 얻는 것은 세뱃돈보다도 그 어느 덕담보다도 귀한 일이 될 것이다.
셋째는 친척과 이웃들과 함께 떡국을 나누어 먹는 행사를 갖는 것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별미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는 고향의 추억을 먹는 것이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한 상에 둘러서 먹는 떡국에 대한 추억은 끼니와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설날 이 떡국을 못 먹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믿는 이의 큰 봉사라고 생각한다. 추억을 돌이킬 수 없고, 고향을 찾을 수도 없는 이들에게 가족과 고향을 맛보도록 돕는 것은 삶의 고난과 고통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위로를 주는 일일 것이다.
매해 맞이하는 명절이다. 올해는 좀 다르게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가족을 세우면서도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특히 집안의 어른이 축복의 권위를 세우고, 가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돈 교수는 독일 킬대학교 신학석사,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교회 다니면서 그것도 몰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