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9년 03월

링컨과 오바마의 리더십

문화읽기 박영근 대표 _아담재

오바마 열풍이 거세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만 해도 충격적인데, 대통령 당선 이후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민주당 경선 당시 막강한 경쟁자였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부터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을 위한 배려 또한 충분히 감동적이다. 나아가 공화당 의원 가운데 세 사람을 입각시키기도 했다. 더구나 그의 취임식은 세계적인 경제 불황 가운데 치러진 탓에 문자 그대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바마는 이러한 그의 리더십을 링컨에게 배웠다고 전한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워라
링컨은 1861년 대통령 당선 이후, 변호사 시절부터 자신을 ‘긴 팔 원숭이’라고 무시하고 조롱해 온 정적 스탠턴을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시장관으로 임명했다. 링컨은 스탠턴이, 비록 자신을 멸시하긴 했지만, 정직하며 엄격하며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탠턴은 링컨의 기대대로 남북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승리를 얻어냈을 뿐 아니라 후에는 링컨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링컨과 오바마의 놀라운 용기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두 사람에게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은 나와 생김새가 다르고 이름이 다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는 데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진전이 없이 원점을 맴돌다 이내 깨어져 버리고 만다. 그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 친구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친구는 이상해” 혹은 “나하고 달라”라고 말하곤 한다. ‘다르다’, ‘틀리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것은 결단코 혼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이상하다면 나는 …정상’, ‘그 친구가 틀렸다면 나는 …맞아’ 그러니 ‘나는 정답, 그 친구는 …오답’이 되고 만다. 이런 심정으로 하는 대화는 결국 ‘대놓고 화내기’로 끝나기 일쑤다. 이상한 얘기, 틀린 얘기, 오답을 웃음으로 듣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화는 대부분 ‘대놓고 화내기’다. 여야의 대화, 노사 간의 대화, 그리고 부모자식 간의 대화도 ‘대놓고 화내기’로 끝나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끼리끼리’에서 벗어나 ‘모두 함께’ 하는 ‘광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사람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교회가, 직장이, 그리고 가정이 모두 ‘정신병원’으로 변하고 만다. 나 빼놓고는 모두들 이상한 사람들뿐이니 정신병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방에 벽을 세우고 ‘밀실’에 쳐박혀 사는 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는 ‘같을 동(同)’자를 너무도 좋아하는 까닭이다. 동향, 동창, 동기…. 온통 같은 사람끼리 어울리길 지나치게 즐긴다. 동시에 그 밖에 사람은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을 同’자끼리의 싸움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의 비극이 아직도 아물지 않는 이유는 동족끼리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따라서 크리스천이야말로 ‘끼리끼리’에서 벗어나 ‘모두 함께’하는 ‘광장’으로 나서야 할 분명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이제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먼저 봐야 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넌 나하고 달라. 안 놀아” 하면서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야” 하며 끌어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있어야 포용의 리더십을 펼친다
링컨과 오바마에게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자신감’이다. 자신감 없이는 정적까지 품는 포용의 리더십을 펼칠 수 없다. 자신감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열등감이나 우월감과 같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뜻에서 절대적 개념이다. 그래서 1등으로 달리면서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꼴찌를 기록하면서도 미소 짓는 사람도 있다.
결국 자신감은 ‘다른 사람보다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성경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이 자신감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우습게 여기면 움츠러들고, 추켜세우면 우쭐대는 사람은 변온동물이다. 그러나 사람은 365일 36.5도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것도 모두 36.5도, 즉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문제는 머리가 아니다. 가슴을 다른 사람에게 활짝 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리더다.
대공황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그 밑바탕에는 바로 이 두려움, 즉 자신감 결여가 자리 잡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불신앙의 결과다. 자신(自身)만을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자신(自信)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당파를 짓고, 편을 가르며 온갖 소란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서는 이들을 ‘머릿속에 나뿐인 사람들’, 즉 ‘나쁜 사람들’이라 부른다.

 

 


 

박영근 소장은 연세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남미시시피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임했다. 기독교방송에서 CBS저널과 CBS집중토론을 진행했으며, 현재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위해 아담재(我談齋) 대표 컨설턴트 겸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