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5년 01월

“말이 통하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

문화읽기 박영근 대표 _ 아담재

금요일 회사 일을 마치자마자 귀가 길을 서두르는 김 집사는 약간 흥분되었다.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어 주일까지 이틀을 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노림수가 있는지, 다녀왔느냐는 아내 정 집사의 인사에도 “응” 하는 한마디만을 던지고 곧장 서재로 향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교회 홈페이지 접속을 서두른다. 익숙한 바탕화면 위쪽에 ‘함께 작성하는 설교’라는 표시를 클릭하자, “김 집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에 김 집사는 “야호!” 소리와 함께 손뼉을 치고는, “여보! 이번 주엔 내가 뽑혔어!” 하며 아내를 부른다. “그렇게도 좋아요?” 하는 정 집사에게, “그럼, 좋고말고! 당신 같으면 흥분 안 하겠어?” 하고 되묻는다. “평신도인 나도 목사님 설교에 한몫 거들게 되었으니.” “그건 그래요.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죠.” 정 집사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1년 전 한 목사님께서 “함께 작성하는 설교”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성도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한 달 전에 미리 설교 주제를 본문과 함께 교회 홈페이지에 공고할 테니 성도들 가운데 그 주제에 대해 색다른 아이디어나 재미있고 교훈적인 예화가 있으면 올려 달라는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는,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양이 꼴을 준비하는 일도 있나? 그건 목자의 일이야!” 하며 노골적으로 언짢은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그러나 “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어리석은 양에 불과합니다” 하는 목사님 대답에 더 이상 반기를 들기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별 호응이 없었으나 나날이 응모하는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은 누가 올린 소재가 채택되었는지 성도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어느 누구도 설교 시간에 졸지 않게 된 것이다. 채택된 예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뒷얘기를 듣느라 예배 후에 교회 식당의 분위기도 완연히 활기를 띠었다. 이렇게 활성화된 교회 홈페이지는 설교뿐만 아니라 교회 대소사를 함께 논의하는 ‘대화의 광장’으로 자리 잡았다.
“성도와 함께하는 교회”라는 구호는 한 목사가 이 교회에 부임하면서부터 강조해 온 목회 철학이다. 목사나 당회원만의 교회가 아니라며 하나님의 진리에 위배되지 않는 일이라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들 “그건 그렇지” 하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걸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당회의 결정을 통보받거나 추인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형식적인 제직회가 활기찬 토론의 장으로 바뀌면서 교회에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제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기탄없이 의견을 발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당회원들은 맨 마지막에만 발언하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집사 직분을 받은 지 오래된 김 집사도 처음에는 열심히 참석했으나, 참석해 보았자 발언기회도 없고 효과도 없자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나 주일학교 중등부 교사로 함께 섬기는 박 집사가 새롭게 변한 제직회 분위기를 전하면서 함께 가자는 권유를 해 와서 김 집사는 망설임 끝에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제직회를 시작하면서 목사님은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의 본문을 읽은 뒤에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에 분명히 기록된 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인 되신 말씀께서 교회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돌아다니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목사와 장로 사이의 담, 장로와 집사 사이의 담, 재직과 평신도를 구별하는 담,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담 등을 허물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뜻을 펼쳐 주시면, 겸손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말 통하는 교회’를 올해의 목표로 하자는 의견도 제직회에서 나왔고, 모두들 박수로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말 통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막힌 담 허물기 특별위원회’가 조직됐고, 줄여서 ‘막허위’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막허위’는 재직과 평신도의 비율을 같게 했으며, 나이와 성별, 전문분야를 고려하여 균형되게 구성키로 결정했다. 또 ‘막허위’ 아래 정보화에 맞게 교회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위한 ‘정보화 소위원회’도 따로 만드는 한편, 교인들의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한 ‘청취 소위원회’도 구성했다.
말길이 뚫리면서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관심도 한층 높아졌다. 연로하신 어르신들까지도 정보화 소위원회가 주최하는 인터넷 강좌를 통해 익힌 솜씨를 뽐내며, 홈페이지 게시판에 어려웠던 시절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지 옛 얘기를 올리게 됐고, 청년들이 이 글을 다른 사이트에 퍼 나르는 바람에 일약 유명인사가 된 분도 있었다. 밖으로 돌던 청년들도 게시판에 올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자 새로운 제안들을 쏟아냈다.
또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각종 서적과 음반, 그리고 영화 평을 싣는 난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 또한 높은 조회수를 보였다. 교회에 오면 장난치기에 바빴던 주일학교 학생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글로 쓰면서 훨씬 의졌해졌고, 자기 글이 올라있는 교회 홈페이지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도의 효과도 얻게 됐다.
“그전에는 주식시세 조회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젠 교회 홈페이지 보느랴 우리 부장님한테 야단맞았어!” 윤 집사의 익살에 교회 식당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아침 출근길에 휴대폰으로 홈페이지 접속해 큐티하는 재미가 상당해!” “우리 교회가 변하기는 확실히 변했어. 모두들 생기가 돌잖아.” “그럼, 말길이라는 것이 우리 몸으로 말하면 핏줄과 같은 것 아니겠어. 그동안 이 핏줄이 곳곳이 막혀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었으니 건강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인터넷 때문에 문제들도 많잖아?” “그렇지, 음란물이다 게임이다 하면서 아주 중독된 사람들도 많다던데!” “그게 모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막허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 집사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이 모든 것은 매체일 뿐이야. 매체는 원래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인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거든. 그런데 주체가 주체 노릇을 못하니까 매체에게 끌려 다니는 거야. 우리가 주체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기술은 그 다음 문제지. 우리 교회를 생각해 봐. 목사님께서 먼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성도들의 얘기를 친구처럼 귀 기울여 듣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부터 변하게 됐잖아? 모두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품고 살지. 그런데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때는 섭섭한 거야. 속으로 화도 나고. 그래서 난 인터넷도 좋지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제일 좋아.” “역시 ‘막허위’ 위원장이로구만! 그래그래, 말 통하는 우리 교회 정말 좋다!”
웃음과 박수 수리가 울려 퍼지는 말 통하는 교회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박영근 소장은 연세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남미시시피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임했다. 기독교방송에서 CBS저널과 CBS집중토론을 진행한바 있으며, 현재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위해 아담재(我談齋) 대표 컨설턴트 겸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