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홍윤선 집사 _ 웹스테이지 대표
인간의 도덕성이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싶다. 그 중에서도 사이버 공간은 도덕성 부재의 상황을 종종 실감나게 연출하곤 한다.
인터넷 공간의 언어폭력이 처음으로 대두될 때만 하더라도 악플러들은 일종의 집착성향을 보이는, 내면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을 것으로 여길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댓글 달기가 지극히 일상적인 지금은 악플러의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폭력을 모방한다
악플이 전개되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한 네티즌이 포털 뉴스에서 한 탤런트에 대한 가십기사를 이리저리 클릭한다. 프로필과 팬 게시판을 둘러보고 그 탤런트가 선정적인 모습을 드러낸 사진 아래쪽에 성적으로 비하하는 댓글을 한마디 던진다.
이 네티즌은 사실 이 탤런트와 아무 상관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특별히 싫은 감정도 없다. 다만 그 사진을 봤을 때 느낌이 “별로”였던 것뿐이다. 또 다른 네티즌이 홈피에 와서 사진을 보고 아래쪽 리플을 읽는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느낌대로 한마디 더 거든다. 이제 방문객이 올 때마다 언어는 더 강하고 자극적이 된다. 마침내 욕설이 등장한다. 이제 리플은 없고 악플만 난무한다.
우리 인간들은 닮고자 하는 모방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경쟁적으로 모방하는 이 욕구는 어떤 때에는 성취동기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끝없는 불화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도 이러한 모방 욕구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방 욕구는 폭력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를 연구하고 실증적으로 밝힌 ‘지라르’라는 사회 인류학자의 견해를 빌려 보겠다. 어떤 사람을 악인으로 매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군중 중에 누군가 한 명이 그에게 돌을 던지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한 명이 돌을 던지면 두 번째 돌을 던지기는 쉽다. 첫 번째 돌을 던진 사람을 모방하면 되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마음에 분노를 느끼며 돌을 던지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나중에 이들은 실제로 그 사람이 악인이라고 생각하고 돌을 던진다.
이렇게 한 사람이 희생된다. 이러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정치적인 권력투쟁에 있어서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건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심지어 교실에서 일어나는 왕따 현상에서도 이러한 모방 폭력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눈치 챘겠지만, 이러한 대중폭력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큰 모티브는 부담스런 첫 번째 돌을 누군가 먼저 던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첫 돌을 부담 없이 던지는 인터넷 공간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동 양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댓글과 같이 순간적인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것도 매우 일반화된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동 원리를 개개인의 성격장애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찾아내고자 애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항상 총체성을 반영한다.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이를 당연한 환경으로 여기는 데서부터 일종의 함정이 있다. 사실 테크놀로지에 의해 구현된 인터넷 공간은 단순한 곳이 아니다. 여기서는 현실 세계와 달리 일종의 무의식적인 힘이 특정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힘의 실체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 이곳에 접속하는 순간 모든 이용자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사이버 공간은 접속하는 순간 그 사람이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곳이다. 별 생각 없이도 절대자 또는 초월자의 관점에 서게 된다.
둘째, 디지털 공간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반응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형태가 된다. 참을성과 기다림은 이곳에선 멸종이 임박한 천연 기념물에 가깝다.
셋째, 위의 자기중심성과 즉각성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감정적 태도를 양산하게 된다. 즉, 사이버 공간에 들어서면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경향을 지속하게 된다.
인터넷 공간의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이 사실상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공간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유발시키는 무의식적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당연히, 인터넷 공간은 누구나 별 이유 없이, 부담 없이, 그때의 감정에 따라 특정한 대상에게 첫 번째 돌을 던질 수 있는 곳이 되며, 이를 모방한 폭력의 전염은 빛의 속도만큼 빨리 확산된다.
21세기 최대의 유혹 공간 앞에서
그렇다면 폭력을 모방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나서는 폭력의 유혹을 어떻게 포기시키셨을까?
유대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 왔을 때는 위기상황이었다. 누군가 한 명이 돌을 던지면 사방에서 돌이 날아올 것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긴장된 시선을 완화시키는 행동을 하신 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누군가 한 명이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하나 둘 돌을 내려놓으며 자리를 떠났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성이 폭력을 적극적으로 모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역전시켰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무도 첫 번째 돌을 던지지 않고 내려놓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러한 폭력의 모방 충동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다.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것은 사실 애당초 나름대로의 목적과 필요성을 갖고 시작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적인 영역으로 편입된 지금까지도 하나의 도구나 편리한 문명의 이기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해 보면 컴퓨터 모니터 앞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유혹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은 하나의 미디어이자, 자기 자신이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서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며, 이성이 아닌 감정을 즉각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만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도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를 의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모방 하는 자(사탄)가 이처럼 속삭이기 좋은 곳도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 기술문명이 인간의 죄성과 결합하여 무의미한 욕구를 증폭시키는 구조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은 본질적으로 모방과 모사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 사탄이 권세를 부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악플이라는 현상은 우리의 죄성이 모니터 앞의 유혹에 얼마나 무감각하게 허물어지는 것인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사이버 공간에서도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다만 인터넷 공간이 내포하는 그 세계관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과는 전혀 다르며, 단순히 기술문명의 산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곳의 권세 잡은 자는 그곳의 권세도 잡고 있음을 현실적으로 늘 경계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늘 인지한다면 댓글의 유혹을 피해 그냥 지나치거나, 최소한 들었던 돌을 내려놓게 되지 않을까?
홍윤선 집사는 e비즈니스 업체인 웹스테이지 대표로 섬기고 있으며,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사랑의교회 집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