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손봉호 총장 _ 동덕여대
태안반도의 기름유출사고로 환경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일어났고,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두 사건 모두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인재였다. 천재지변이 아니기에 조금만 조심했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사고들이다. 이런 사고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며, 어떤 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사회문제, 관심 없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을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늘나라와 세상 나라 두 나라의 시민이므로 우리의 관심은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비기독교인들이 세상 문제에 대해 100%의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리스도인은 그에 대해 원칙적으로 50% 혹은 그 이하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나머지는 하늘나라에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며, 나그네가 자기가 임시로 우거하는 지역의 문제에 큰 관심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물론 기름 유출이나 화재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좋게 하고, 결과적으로 전도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늘나라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 선교, 교회 봉사 이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므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갖는다.
사회문제, 적극 참여한다
그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입장은 그리스도인들도 대부분의 다른 시민들처럼 이런 사건을 보고 놀라고, 개탄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며 피해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응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아도 긍정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선량한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용의를 가질 수 있다. 구태여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단순히 한 시민의 인도주의적 임무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종교적 의무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성경은 명령한다.
사회도 하나님의 주권 영역이다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심도 이 명령에 근거한다. 기독교인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네덜란드 신학자 카이퍼(Abraham Kuyper)의 사상이 주로 강조하는 바이다. 그가 중심이 된 신학 사상을 신칼빈주의(Neo-Calvinism)라 부른다.
또 하나의 관점은 주로 하나님의 사랑에 무게를 두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보다는 십자가에, 주권보다는 사랑에 더 큰 무게를 둔 관점이다.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고쳐라
우리가 그 어느 관점을 채택하더라도 이번 대형 사고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소극적이거나 일반인들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악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부단하게 노력해야 하고, 그런 악 때문에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다. 사회를 의롭게 하고 개혁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민들과 기독교인들은 그 사후 처리에 주로 힘을 쏟는다. 피해자들을 구호하고 파괴된 부분을 복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우선적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우선 돌보아 주고 상처를 고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임무가 끝나서는 안 된다. 재발을 막아야 한다. 앞으로 아무도 강도를 만나지 않게 해야 하고, 강도를 아예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고들, 특히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와 관련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자원봉사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그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번에 일어난 두 사고의 원인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이다. 이를 고치지 못하면 이런 대형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물리적 힘을 갖게 되었는데, 그 힘을 다루는 사람이 조금만 방심하면 그것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변한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믿나이다!”를 외치면서 비합리적인 모험을 너무 많이 감행했다. 이런 모험심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데 공헌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 할 때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할 만한 돈을 가졌는지 비용을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눅 14:28, 현대인성경)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현실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믿음 없는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으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고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당하는 것을 막는 아주 중요한 길이다.
손봉호 총장은 서울대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M.Div.),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철학부(철학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샘물호스피스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