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8년 03월

부활은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문화읽기 김혜숙 목사 _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총무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세미나를 개최한다. 작년에는 ‘삶과 죽음-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준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어느 한쪽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면 어느 한쪽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대면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주로 크리스천들이 모이는 세미나인데, 죽음이란 주제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초청하기를 어려워했다. 죽을 것을 뻔히 알지만 죽음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죽음일 것이다. 당시 강사였던 정진홍 박사는 “죽음은 내 목숨이 끝난 자리에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꾸고 성취할 수 있는 마지막 삶의 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놓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죽음도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신의 존재를 기억한다
존 클레이풀은 『희망』(IVP)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음과 탄생은 실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세상에 대해 죽고 다른 세상에 대해 태어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로 이 같은 기쁨을 맛보게 하신다. 인생은 우리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목적을 다한 것을 놓아주면 훨씬 더 위대한 약속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 우리는 자궁에 대해 죽어 이 세상에 대해 태어나듯 우리는 뒤뜰에서의 그네타기와 모래 쌓기에 대해 죽어 학교라는 세상에 대해 태어난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대해 죽어 중학교에 대해 태어난다.”
  이러한 죽음과 태어남은 우리 인생의 전 영역에 걸쳐 되풀이되고, 그것은 죽음과 부활까지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죽음은 꼭 육체의 소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죽음을 말할 수 있고, 그 죽음 너머의 부활의 소망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의 존재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고등학생 때 큰 병에 걸리고부터이다. 병마가 나를 일깨우기까지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내 능력을 믿었으며, 얼마든지 내 앞에 펼쳐지는 인생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능력 밖의 일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나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에 부딪쳤고,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말씀은 내게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경험을 주었다. 이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보이는 세상이었다.

 

또 하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라
이러한 경험들은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얼마 전 한 잡지에서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으로 무남독녀를 잃은 한 미국인 부부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길, 그 가정은 딸의 생활에 모든 것을 맞추어 살았다고 한다.
  그들 모녀는 늘 문자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단다. 바빠서 문자를 보내지 못하면 그냥 ‘OK’라고 보내달라고 요청했었단다. 그것도 힘들면 ‘O’라고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단다. 그런데 그날은 문자가 오지 않았고, 나중에 딸의 노트북을 열었을 때 노트북에 있던 문구가 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오늘 하나님과 제가 함께 감당하지 못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압니다.” 그 문구를 통해 전해진 딸의 믿음은 이후 어머니의 고백이 되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딸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는 깊어서 날마다 하나님께 소리치며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이전의 세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올 수 있었다.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이었고, 즐겁지 않은 길이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내가 딸아이에게 가기에 앞서, 먼저 주님께 가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고난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과거에 살던 세상과의 이별을 의미하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심도 이 명령에 근거한다. 기독교인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네덜란드 신학자 카이퍼의 사상이 주로 강조하는 바이다. 그가 중심이 된 신학 사상을 신칼빈주의라 부른다.
  또 하나의 관점은 주로 하나님의 사랑에 무게를 두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보다는 십자가에, 주권보다는 사랑에 더 큰 무게를 둔 관점이다.
  우리는 해마다 부활절을 맞는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사흘 후 부활하심으로 인류는 이전의 세계와 이별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를 받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도 날마다 과거의 나에 대해 죽고, 새로운 미래의 나로 거듭난다. 가족을 잃거나 사고를 만나서 장애를 얻거나 병을 얻어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때,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8년 부활절을 맞으며 이 세상에서 죽고,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경험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경험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김혜숙 목사는 이화여대 사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이후 네덜란드 ISS(Institute of Social Studies) Women & Development(MA)을 졸업했다. 예장 통합총회 사회봉사부와 한국교회여성연합회 간사를 거쳐 현재,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총무, 월간 <새가정> 발행인, 삼각교회 협동목사로 시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