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송길원 대표_ 하이패밀리
한국장학재단 4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어느 날이었다. 이경숙 이사장님과 앉은 자리에서 하이패밀리가 최근 출시한 <해피엔딩노트>가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참석자 한 분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재미나게 풀었다.
맹모삼천지교의 두 가지 해석
전통적 해석으로 보면, 맹자의 어머니가 공동묘지(장의사 집) 근처로 이사를 갔더니 맹자가 장례놀이만 하고 놀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가 저자거리(시장) 쪽으로 이사를 갔다. 이번에는 장사치들 흉내만 내고 놀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제야 맹자가 예(禮)를 배우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임기응변식으로 이사를 다닌 것으로 보아 전혀 지혜로운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맹모삼천지교를 오늘날 의미로 재해석하면, 맹자의 어머니는 가장 중요한 것부터 교육을 시키고자 계획적으로 이사를 했다. 사람이 죽음을 모르면 뭘 배워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공동묘지(장의사 집) 근처로 이사해 죽음에 대해 가르쳤다.
인간의 생존현장과 거기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알지 못하고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무엇을 배워도 추상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으로 이사를 갔다. 이렇게 죽음의 의미와 치열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고 학문을 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맹자의 어머니야말로 교육공학자이면서 교육철학자이고 사상가였다. 그뿐만 아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인생의 진정한 코치였고, 멘토였던 셈이다.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오늘날의 싸나톨로지스트(Thanatologist) 제1호였던 셈이다.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
종종 설교시간에 인용되는 라틴어 중,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있다. 하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이 두 용어의 탄생배경을 알고 쓰는 걸까?
로먼 크르즈나릭의 『원더박스』는 그 답을 준다. 책에는 사랑, 가족, 돈, 여행 그리고 죽음의 방식에 이르는 12가지 항목에 걸쳐 처방이 제시된다. 가장 눈에 띄는 꼭지는 ‘죽음 방식’이다. 중세 시절 파리, 로마의 공동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터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교회 납골당에서 사람 뼈를 장난감 삼아 놀았을 정도로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죽음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중세인은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역설이다.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이란 지혜의 말은 그렇게 탄생됐다. 성직자들은 목에 피가 맺히도록 외쳤다.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 이 때문에 영어의 present(현재)가 present(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 앞에서 제자도를 돌아본다
정진홍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일상이지만, 죽음이라는 언어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대신 건강, 치유, 평균수명, 노년, 복지라는 언어가 그 자리에 등장하고 죽음을 주변화하고 있다. 심지어 죽음 담론을 전유했던 종교들도 서둘러 죽음담론을 폐기하고 있다.”
아내의 죽음 후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죽음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정 교수는 강의 중 이런 말도 했다. “성직자들은 귀하고 곱게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가르침과 삶의 실제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 성직자들에게조차도 두려움이 되어야 하는 그날 난 나의 제자 됨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했다.”
삶의 7가지 법칙
소득 2만 불 시대다. 구매력은 3만 불에 가깝다고 한다. 소득 2만 불을 기점으로 의식주를 넘어서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한다. 건미락(健美樂)이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의식주에 발목이 잡혀있는 듯하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의식주에 의미를 더하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건미락으로의 이동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또한 삶의 완성은 마무리(終)에 있다. 이를 일러 ‘일곱색(衣食住健美樂終) 레인보우의 삶’이라고 부른다.
웰빙(Well-being)에서 웰다잉(Well-dying), 웰다잉에서 웰리빙(Well-leaving/living)으로의 전환, 그리고 참살이에 이르는 삶의 7가지 법칙을 새롭게 정리해 봤다.
1. 의(衣), 배냇저고리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벽장에 옷이 너무 많으면 무엇을 입을지 망설이게 된다. 옷은 그 자체가 비움과 채움의 삶에 대한 실천이다. 명품을 걸친다고 명품인생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명품의 삶을 사는 데 답이 있다.
2. 식(食), 잘 먹고 잘 살아라. 밖에서는 사람이 음식을 다스리지만 몸속에서는 음식이 사람을 다스린다. 암(癌)이란 병든(?) 음식을 산(山)더미처럼 먹어(口) 생긴 병이다. 가려먹고 소식해야 한다. 레스토랑(Restaurant)은 원래 프랑스어 ‘De restaurer’(회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음식이 치료가 되게 하라.
3. 주(住),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를 꿈꿔라. House는 있는데 Home이 없다고 말한다. 다투는 여인과 궁궐에 사는 것보다 혼자 움막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낫다. 무엇보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저녁이 있는 삶, 삶이 있는 저녁’을 꿈꿔라.
4. 건(健), 변화(change)는 채인지(體·仁·智)로 온다.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명심해라. 운동이 하루해를 짧게 하지만 인생은 길게 한다. 건강 프로젝트를 갖고 살아라.
5. 미(美), 꽃에 분칠하지 마라. 꽃은 꽃으로 이미 아름답다. 내가 꽃인데 뭣 때문에 또 꽃단장을 하겠는가? 조화에는 똥파리가 날아들고, 생화에는 나비와 벌이 날아든다. 내면의 멋을 가꿔 향기로운 인생을 꾸며라. 하루에 한 번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6. 락(樂), ‘희희樂樂’으로 살아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어서 하늘로 가면 신(神)으로부터 받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여겼다. ‘네 인생에서 넌 환희를 맛본 적 있느냐?’ ‘네 삶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환희를 가져다 준 적이 있느냐?’ 죽는 날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게 행복한 인생이다.
7. 종(終),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다. 어디 화장실만일까? 가장 멋진 인생이란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끝내기를 잘하자. 인생의 끝자락에서 꼭 만나야 할 3F가 있다. Family-Friend-Faith가 그것이다. 그때 우리는 Happiness를 넘어선 Bliss(더 없는 행복, 천국의 기쁨, 至福, 天福)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철(鐵)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장에서 낭송된 그녀의 애송 시(詩). “우리가 처음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며, 끝내는 것은 시작하는 것입니다”라는 T. S. 엘리엇의 시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제자도를 임종의 영성으로 승화시켜 볼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송길원 목사는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사랑의교회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