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의 법칙이 있다. 어쩌다 결석하면 휴강한다. 내내 놀다 시험 전날 남의 노트 슬쩍 본 것이 출제된다. 모처럼 예쁜 옷을 입고 나온 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다.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나 다음 사람이 타면 중량 초과가 된다. 이런 ‘우연’이 반복되면 ‘역시 나는 안 되는 일이 없어’라는 긍정적 생각이 자리 잡는다.
우연이 그냥 우연인 줄 알았다. 남편과의 만남이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출석하던 교회가 있었다. 유일한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다. 엄마에게 혼난 날, 혼자라고 느낀 날, 슬픈 날 나는 그곳을 찾았다. 차가운 예배당 바닥에 누워 뒹굴고, 놀고, 쉬다 보면 어느새 평화가 찾아왔다. 대학 시절에는 내 존재감을 확인해 주는 곳이었다. 설교하고, 성가대 지휘하고, 공과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내 능력을 발견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양심의 가책이 찾아왔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가르치고 있었다. 괴로움이 깊어져 모든 직책과 역할을 내려놓았다. 1년을 방황하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해 교회를 옮겼다. 고등부 교사직을 맡았다. 한 달 뒤 고등부 담당 교역자가 새로 부임해 왔다. 그 역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평생 섬겼던 교회를 사임했다. 그해 6월, 나는 그 교역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은 기적이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날 확률 1/2, 한국인으로 태어날 확률 1/200, 우리나라의 지역을 약 1000개의 시도읍면이라 해도 1/1000, 그리고 같은 교회에 출석할 확률은 1/50000, 같은 시간대에 있을 확률은 1/100000000….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가 나와도 계산할 수 없다. 우연의 연속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초 성격 차이로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우연한 만남이었기에 헤어지면 그만이라 여겼다. 며칠을 통곡하며 기도하는 중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우연이란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그 손길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했다. 답이 나왔다. 다르기 때문에 보완하라는 것이다. 갱년기 호르몬의 대반란으로 힘겨워할 때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했다. 사건에 대한 자동적 반응이 아니라 사건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게 됐다. 이후 나는 날마다 진짜 기적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다.